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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Dec 02. 2024

선물

[네가 선물이지]


지난 금요일 반차를 내고 예전 직장동료를 만나기로 했었다.

눈이 많이 내린 목요일.

그녀로부터 약속을 연기하자는 연락이 왔다.

눈 때문에 결근을 해서 다음날 반차를 내기가 눈치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자고 대답은 했지만 갑자기 생긴 반나절의 여유를 어찌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그냥 집에 가서 쉬면 되었으나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별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친구 두어 명에게 연락을 했다.

하필 김장이니 뭐니 바쁘다며 거절을 했다.

마지막으로 요양센터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톡을 했다.

이 친구와는 속마음을 거의 드러내는 사이라 편하기는 하지만 주야간 교대 근무라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 1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 한다.

그런데 반가워하며 만나자는 답이 왔다.


친구와 함께 한 지난날을 떠올리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연민은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난을 겪은 우리가 지금은 또 비슷하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카카오 스토리를 정리하다가 그 친구와 연관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15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다.

내 생일에 주었던 선물.

오만 원권 한 장을 접고 또 접어서 생일카드 봉투에 넣어서 부끄러워하며 내 손에 쥐어 줬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친구에게 보여주며 기억하고 있냐고 물었다.

한 푼이 아쉬웠던 그때에 5만 원이 50만 원보다 더 요긴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이런 때도 있었냐며 웃더니 내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돈 없다는 얘길 했더니 패기 있게 은행에 데리고 가서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서 줬었다고 했다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과 혼동하는 거 아닌가 싶다)

돈을 찾고 나서 잔액을 보니 나도 돈 없기는 마찬가지였다며 무척 고마웠다고 했다.

이 사진을 보면 그때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난했기에 누릴 수 있는 우정의 풍성함이다.


평소에 나들이를 많이 하지 않는 친구를 위해 분위기가 있는 카페를 검색했다.

석촌호수가 보이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았다.

후기도 좋고 사진도 예뻐서 잠실역에서 친구를 픽업해서 찾아갔다.

3층까지 올라갔는데 내부가 기대에 훨씬 못 미쳐서 정말 실망스러웠다.

오렌지색 분위기가 낭만적이라는 후기와 달리 그냥 오렌지색 식당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왔으니 차나 마시자 했는데 


"한 시간밖에 시간이 없는데 괜찮으세요?

단체 예약손님이 있어서 나가셔야 하거든요."


하는 직원의 말을 들으니 좀 짜증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기도 했다.

의자도 편하지 않은 이곳이 나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출차를 하려니 발렛비 3천 원을 내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일들이 자꾸 짜증을 불러왔다.


"3천 원 줄까?"


친구의 농담에 눈이 마주치니 웃음이 났다.

나를 잘 안다는듯한 표정.


'성질 아직 안 죽었네.'


이렇게 감정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 준다는 믿음이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친구다.

우리는 그날 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즐겼다.

안 그래도 갱년기 이후로는 휴일이 되면 외로움이 사무쳐서 힘들었다며 이번 휴일은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나를 만나게 해 주셨다며 내 톡을 받고 할렐루야를 외쳤단다.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약속이 취소된 것, 다른 친구들에게 까인 것... 우연이 아니구나.


친구는 내가 하는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반응해 주며 자주 깔깔대고 웃어 주었다.

이타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그 친구를 만나면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이기적인 나와 모든 것이 다르기에 우리가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이기심을 그저 '성격'이라고 넘겨주며 오히려 그 성격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는 날까지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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