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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Dec 03. 2024

일상중에

[그녀가 궁금하다]

엊그제 만난 예종은 30년 전 앞집 반지하에 살던 여인이다.

5년 만에 만났을까. 정말 오랜만이다.

본디 이웃과 별로 소통이 없는 내가 종과 친해진 것은 호경 덕분이다.

예종이 사는 반지하 건물 2층에 아들의 유치원 친구 엄마인 호경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예종과 호경이 대화를 하고 있었고 호경은 인사나 하라며 나를 예종에게 소개했다.

그 후에 예종과는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날씨 이야기를 하는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호경이 만남을 주선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되었다.


현재 예종은 이혼녀다.

앞집 반지하에 사는 동안은 남편이 있었다.

집에서 부업으로 미싱일을 하는 것을 열린 창문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아이는 없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예종의 전부다.

모임이 만들어진 후 남편의 주사로 인해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을 물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예종의 성격상 대답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예종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서로 알아 간지 30년이라는 세월도 있지만 예순을 넘나드는 나이에 뭘 얼마나 숨기고 싶을 것인가.

원래 말이 별로 없고 듣기만 하던 예종이 묻는 말에는 술술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예종은 남편의 주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마지막 가출을 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는데 생뚱맞은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부모에게 버려져서 되찾으러 올 일이 없는 아이가 있으면 데려다가 키우고 싶어."


입양을 하고 싶어도 이혼녀라는 약점이 있으니 할 수가 없다.

(이런 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생부 생모가 있어도 학대로 죽어 가는 아이도 있는데...

양친부모가 꼭 있어야 되는가 말이다.)


그녀는 유산이 몇 번 된 후로 난임을 겪었다고 했다.

유난히 아이를 예뻐하는 그녀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척 슬픈 일이었다.

요즘도 만나면 그 당시 코흘리개였던 내 아들이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다며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

얼마나 아이 갖는 걸 그리워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자녀를 결혼시켰고, 손주를 본 친구도 많다.

꽃사진을 주로 찍던 중년의 친구들은 앙증맞은 손주들 사진을 찍어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다.

귀엽고 예쁘기가 자식때와 비교불가라는 것을 친정엄마에게 들어서 알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만나서 손주 자랑을 하면 다른 친구들이


"손주 자랑 하려면 밥이라도 사야지~"


라고 말을 하니 이제는 의례히 밥이든 커피든 사고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라도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 손주인가 보다.

과년한 딸과 아들이 아직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는 나는 휴대폰에 있는 손주 사진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별로 편하지 않다.

차라리 길거리에 지나가는 아가들은 너무 예뻐서 자꾸 돌아보게 되지만 대놓고 자랑하는 친구들 손주 이야기는 재미없다.

그러니 예종도 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자녀 이야기는 듣기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종은 나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오히려 내가 치우쳐 있다는 것을 예종을 통해 보게 된다.


요즘 사는 게 행복하지만 때로 외롭다는 예종.

외로움이라는 게 옆에 누가 있고 없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외로워도 죽지는 않을 거야."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여전히 마음속에 많은 상처들을 드러내기 두려워한다.

잘 웃고, 잘 듣고...

그러나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나서 안부 카톡을 했다.

안... 읽.... 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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