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브런치 글을 보는데, 후배의 인스타 스토리에 빛나는 인바디 사진이 있었다. 원래도 별로 살 찐 체형은 아니었는데, 작년에 마음고생을 하면서 조금 쪘다가 파워옵럽(본인 표현이다)으로 살을 14kg나 뺐다고. 안그래도 요새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들이 사랑으로 가득하고 훨씬 안정적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회사와서 얼마나 쪘지? 하고 재 보니까 음. 나는 딱 14kg 살짝 안 되게... 반올림하면 그 정도 되게 쪘다. 딱 내가 찐 만큼 뺀 후배를 보며, 나에게는 사랑의 힘이 부족한 걸까 생각했다가, 그냥 힘이 부족한 걸로 결론 내렸다. 입사하고 교통사고에 알러지에 간염에 무릎 나가고 어깨 나가고, 온갖 데에 혹도 생기고 코로나도 걸리고. 살이 안 찌기가 더 어려운 상태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전부 변명인 건 아닐까, 내가 나한테 변명해도 되는 걸까?
2.
최근에 야근 후 옷을 좀 샀는데, 내 눈에서 커 보이던 옷들이 다 작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몸무게는 입사 초반 수준인가보다. 인터넷으로 옷을 사도 치수를 보고 사면 내가 알던 사이즈가 아니다. 힘을 주면 쉽게 들어가던 배가 점점 느른하게 풀어져 있기 일수다. 다른 하나는 조금 치욕스러운데, 속옷이 작아져서 셀프로 고문을 받는 기분이다. 계속 새로 샀는데도 또 작아졌다. 어제는 바지 버클이 터져서 집 와서 수선했다. 이제 고무줄바지만 입어야 하나 싶다.
3.
주변 친구들의 결혼이 늘었다. 서른 언저리, 코시국 끝무렵. 다들 이때다- 하고 날짜를 잡는가 싶다. 덕분에 간만에 약속이 마구 잡히고 있는데, 입을 옷이 없다. 들어가는 옷이 없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든 여자든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그저 묵직해져서, 편한 옷만 찾고 있다. 결혼식에는 뭘 입어야 하나는 둘째치고, 가벼운 여름 옷을 꺼내니 외면할 수 없이 보이는 울퉁불퉁한 팔다리, 육중한 몸뚱이가 꼴 보기 싫다. 대학생 때 18kg을 빼고 나니 친한 남자 선배들이 농담이랍시고 하던, '호호야 예전엔 사람 아니었지'하던 멘트들이 다시 오버랩된다. 나는 거의 그 때 만큼 다시 쪘고, 젊음도 건강도 많이 잃었는데, 그럼 나는 다시 사람이 아닌가? 그 선배를 다시 볼 일이 없어서 다행인건가.
4.
사실 내가 부러운 건 그들의 외모인지 그들의 상태인지 모르겠다.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상태인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언니랑 살면서도 이렇게 트러블이 많고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데, 남편과 산다고 해서 그게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나는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이고 혼자 있을 때 평화를 느끼는 사람인데 과연 그러지 않고 함께 살 수 있을까? 반대로 완전히 사람 없이는 또 외로워서 버틸 수 있을까? 외롭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과 부딪힘 없이 슬기롭게 어우러져 살 만큼 나는 어른인가? 사춘기에도 별로 해 보지 못한 탐구를 서른이 다 되어 해보고 있는데, 머리가 아파서 길게는 못 하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위해 뚱뚱한 내 모습을 남들 앞에 드러내는 게 가장 싫다. 나는 예쁜 사람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편이라 스스로도 잣대가 높은 데다가, 아직도 내 주변은 외모 평가를 스스럼 없이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지금 드레스를 입으면 욕 먹을 것 같아서 회피하고 싶다. 세상에 예쁜 사람 정말 많아. 나는 아니야. 나 못생겼어. 쪽팔려.
5.
글만 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존감 또 어디로 갔지. 요새 꽃 구경을 한다면 사진을 좀 찍다가 한 번 더 충격을 받고, 살을 빼긴 해야겠다-고말을 꾸준히 하면서 내리 찌고 있다. 과연 이 말을 이번이라고 다르게 할까 싶지만, 영영 하지 않을 것 같던 요리도 브런치와 함께 그럭저럭 해 내고 있어서인지 용기를 내서 적어 본다. 물론 뭘 써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소소하게 잘 한 거라도 적어봐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