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일보다 더 힘든 것
- 안달루시아 까베는 공동체로 만들 생각이 없어. 이비자는 공동체지만 여긴 아니야. 나는 지금처럼 2주만 봉사자를 받는 게 좋아. 아무리 못 견디겠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2주면 가니까. 여긴 내 공간이고 내 농장이야.
마치 천국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라고 하기엔 아주 큰 개) 세 마리와 아기 고양이 두 마리는 첫날부터 우리를 따라다녔다. 고양이들은 고로롱대며 낯선 우리의 무릎에 앉아있거나 야옹야옹하며 말을 걸었다. 한 3일 정도는 날도 따뜻하고 맑아서 낮에 반팔만 입고 있기도 했다. 오염이라고는 없는 깨끗한 하늘과 겨울에도 푸른 잎과 열매를 맺은 나무들이 좋았다. 생태적인 삶을 살기 위해 디자인하고 있는 곳이라서 나와 온기에게는 정말 거의 천국에 가까웠다. 하지만 딱 호스트 레이가 없을 때만 그랬다. 반쪽짜리 천국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5일, 120시간 정도.
까베의 업무 스케줄은 가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기 어려웠다. 대략 5-6시간을 일한다는 내용이 화상 통화 후 건네준 봉사자 가이드에 쓰여있었지만, 농사라는 게 그때그때 날씨나 시기에 따라서 스케줄이 좀 달라지기 때문에 가이드의 내용도 명확하진 않았다. 식사를 세끼 다 제공하는 건지 아니면 점심만 제공하는지에 대한 것도 확실히 알기가 어려웠다. 일주일에 데이오프(쉬는 날)가 며칠인지도. 워커웨이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연락했다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인데, 직접 메일을 보내서 연락하다 보니 물어보기가 다소 껄끄럽기도 하고 호스트 레이가 말하는 ‘히피’ 같아 보일까 봐 걱정돼서 물어보질 못했다. 스페인 퍼머컬쳐 공동체에 꼭 가보고 싶었으니까.
도착하고 보니 봉사자에게는 주 1회 쉬는 날이 있고, 하루 5시간 일하며, 점심은 보통 레이가 차려주고 나머지 식사는 주방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여 알아서 챙겨 먹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플랫폼을 통해서 도울 때보다는 일하는 시간이 좀 더 길긴 하지만, 퍼머컬쳐 공동체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싶었다. 하지만 첫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이비자 까베는 공동체지만 이곳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중에라도 이곳은 공동체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120시간 후 우리의 탈출은 예정되었던 것 같다.
까베에 머물면서 주로 하게 될 일은 아몬드 선별 작업과 올리브 수확이었다. 스페인 하면 올리브를 으레 떠올리기도 하고, 나는 주로 우유 대용으로 아몬드유를 먹기 때문에 일하는 게 기대가 됐다. 그중 올리브 수확은 올리브유를 짜내는 시설이 있는 몰리노(molino)와 약속을 잡고 해야 하는데, 같은 지역 같은 작물의 수확기는 대부분의 농부가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올리브유를 짜고 싶을 때 주변의 다른 농부들도 짜고자 한다. 그래서 몰리노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에 예정된 몰리노와의 약속을 위해 며칠 후에 올리브 수확을 하기로 하고, 우선 이미 수확해 둔 아몬드 선별에 들어갔다.
10월쯤 수확한 아몬드가 자루에 나누어 담긴 채 올리브 나무 밑에 쌓여있었다. 그 옆에 돗자리를 펴고 한 번에 두 자루씩 아몬드를 쏟아 선별 작업을 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자루에 담겨있었던 터라 상태가 좋지 않은 아몬드도 있었고, 껍질이 너무 안 벗겨지는 아몬드도, 이미 껍질은 없이 알맹이만 있는 아몬드도 있었다. 작업은 껍질을 까서 알맹이만 새로운 통에 담는 것이라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3일 내로 모든 아몬드를 다 선별해야 해서 잠시 쉴 틈도 없이 아몬드를 까고 새 자루를 다시 붓고 또 까는 일의 연속이었다. 가끔 바람이 너무 불어서 고개를 들면 광활하게 펼쳐진 메마르고 이국적인 풍경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자연이 공들여 만든 사막 같았다.
스페인에서는 끼니를 보통 한국보다 늦게 먹는다. 그래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보통 2시 정도에 식당이 가장 붐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까베에서 아몬드 선별을 처음 하던 날, 이번 이베리아 농사여행을 진짜 시작하던 날도 그랬다. 문제는 소통이 부족했던 탓에 여기서는 몇 시에 밥을 먹는지 먹기 전까지 몰랐다는 점이었다. 나와 온기는 한국에서 농사짓던 대로 몸이 맞춰져 있어 11시 반이 넘으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초반에 같이 작업을 하던 레이는 다른 일 때문에 어딘가에 갔다가 다시 오곤 했는데, 12시가 넘고 1시가 넘어도 이렇다 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작업이 너무 더디다며 이걸 오늘 내에 끝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왜 밥 언제 먹냐는 한마디를 못했는지 답답해 보일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봉사자들이 최소의 일만 하고 이득만 얻으려 한다'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나중에는 우리가 최소보다 못한 정도로 일을 하고 있다고 호스트가 생각한다 느껴져 말을 떼기가 어려웠다. 온기와 대화를 할 여유도 없이 아몬드만 선별하고 있었는데, 레이는 왔다 갔다 하면서 속도가 느리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런 레이가 너무 급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가 정말 너무나 느린가 싶어서 배고픔을 누르고 산처럼 쌓인 아몬드를 치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봉사자가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검열하게 하는 곳이 퍼머컬쳐 농장이 맞나 회의감이 들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자 레이는 '지금이 몇 시지? '하며 시계를 보고는 한 번도 안 쉬고 5시간을 내리 일했다고 놀라며 점심을 차리기 위해 꼬르띠히요에 갔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빠르게 만든 후 레이는 이번엔 우리 둘만 봉사자로 왔으니 더 신경 쓸 사람도 없어서 지내는 기간 동안 식사 스케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맞추겠다고 했다. 5시간을 쉬지 않고 내리 아몬드를 깐 걸로 '히피'가 아니라는 증명이라도 된 것이었을까. 아무튼 우리가 일을 잘할 수 있는 스케줄대로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일한 후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다시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3일 후 다른 봉사자가 오면 또다시 일정이 변경될 수 있다고 해서, 그럼 중간에 배가 고프지 않도록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태여행을 하다 보면 호스트의 일상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식사가 그렇다. 보통은 한국처럼 12시에 점심, 6시에 저녁을 먹는 식인데 종종 이렇게 엄청 다른 식사 시간을 갖고 있는 곳들이 있다. 그래도 뭐, 그 시간에 맞춰 나를 적응시키는 수밖에 없다. 방법을 찾아가는 게 생태여행의 매력이니까.
아몬드 선별은 3일간 이어졌다. 매일 매 시간 우리는 '작업 속도가 느리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일했다. 거의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레이는 본인이 올 때만 속도가 빨라진다며 우리를 돈 주고 고용한 노동자 취급을 했다. 아무리 고용한 노동자라도 이렇게 대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되지 않을까. 그동안 다녔던 다른 나라들의 호스트는 이런 식으로 봉사자를 대한 적이 없었어서 놀라웠다. 게다가 여러 봉사자를 호스팅 하는 큰 워커웨이 장소에서 일하고 우리 농장에서도 직접 워커웨이어들을 호스팅 하면서 느낀 건 아시안 여성이 보통 일이 빠르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우리가 느리다면 그동안 어떤 봉사자들을 호스팅 해 온 걸까 궁금했다. 레이 본인도 아몬드 수확을 올해 처음 해보는 데다가 아몬드 선별을 했던 봉사자가 이전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느리다고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와 있을 때마다 그전 봉사자들에 대한 불평과 비난을 해서, 이 말들이 정말 하소연인지 아니면 우리를 향한 것인지 헷갈렸다. 점점 이곳에 머물며 까베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시시각각 작아지고 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우핑을 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꾼을 '사서' '쓰는' 것처럼 대하는 호스트였고, 우리가 알레르기가 있다고 여러 번 말했던 재료를 듬뿍 넣은 점심을 내줬던 곳. 그때도 그 농장이 우프 호스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타지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니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런 취급은 생태여행을 하는 어떤 워케웨이어, 우퍼, 헬퍼, 봉사자도 받아서는 안된다.
까베에서 일을 시작한 지 4일 차, 올리브 수확을 시작했다. 이틀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이라서 나, 온기와 레이 그리고 레이의 동생인 레이날도까지 모두 같이 일을 했다. 올리브는 빗 같이 생긴 도구로 열매가 달린 가지를 빗으면 열매가 바닥으로 후두둑하고 떨어진다. 미리 바닥을 커버해 둔 네트 위로 떨어진 열매를 모아 트럭에 옮긴다. 레이와 내가 올리브 나무 기둥을 중심으로 네트 두 장을 깔아 두고, 온기와 레이날도가 도구를 이용해 열매를 떨어뜨렸다. 네트가 무거워지면 트럭에 옮겨 담는데, 아주 무겁기 전까지는 열매가 담긴 네트를 다른 올리브 나무 아래로 옮겨서 다시 열매를 받고 옮기고 받고 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평지였다면 그래도 조금은 쉬웠을 텐데 경사가 많이 진 곳에 올리브 나무들이 있어서 네트를 옮기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발이 지나치게 앞쪽으로 쏠렸다. 다리 긴 레이가 성큼성큼 가면 나는 따라가느라 경사에서 네트 양 끝을 어깨에 둘러메고 뛰어야 했다. 발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신발을 벗고 발을 확인하기도 했다.
전날 갑자기 레이는 자신의 스케줄 상 앞으로 봉사자의 휴일을 주 1회에서 2회로 바꾸고 당장 이번주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한 주에 일 해야 할 시간은 30시간으로 같기 때문에 이번주의 남은 날들은 2시간, 2시간, 1시간씩 더 일해줘야겠다고 통보했다. 스페인의 퍼머컬쳐와 대안적인 에너지 사용에 대해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어서 우선 알겠다고 했었는데, 막상 그 얘기를 한 다음 날 뙤약볕 아래서 올리브 가득한 네트를 이고 경사면을 뛰어다니다 보니 커피를 여러 잔 마신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7시간을 일하기로 한 날이어서, 6시간 반쯤 됐을 때 레이가 이제 옆 라인만 마무리하고 가자고 했다.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한 라인을 30분 내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레이는 자연스레 다음 라인으로 이동하려 했다. 온기는 7시간을 다 일했는데 왜 다음 라인으로 가는지 물었다. 레이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치더니 너희는 그럼 네트랑 도구를 내려두고 밥 먹으러 가라고 했다. 자신과 동생이 나머지를 하겠다고 신경 쓰지 말라하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꼬르띠히요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1시간쯤 후 레이가 들어왔다.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내 마음은 이제 산산조각 났어." 레이는 말하며 퍼머컬쳐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밖에 모르냐며 실망했다고, 올리브를 짤 날이 코앞인걸 알면서 차가운 말투로 7시간 다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와 일을 하고픈 마음이 다 사라졌다 했다. 자신은 원래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첫날 우리를 픽업해줬다며, 자신은 기본보다 훨씬 많이 해주는데도 우리는 기본 이상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픽업나와 준 건 분명 고마운 일이고 레이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지만, 본인이 베푼 친절만 귀하고 봉사자가 쉼 없이 5시간 7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건 당연하다는 그의 태도가 못나보였다.
나는 경사면을 뛰다가 다리가 삐끗해서 오히려 정해진 시간을 채운 후 휴식을 잘 취해서 다음날 더 좋은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 봉사자인 내가 해야 할 우선순위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5일 가까이 있으면서 함께하는 시간마다 들었던 봉사자 전반에 대한 볼멘소리가 마치 우리를 향한 것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더욱 우린 좋은 경치만 '즐기러' 온 그런 류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얘기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서로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레이는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경험도 나누고 싶지 않고 같이 일하고 싶지 않지만, 약속한 일정이 있으니 그날까지 그냥 가만히 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인 듯했다. 하지만 한국에 우리 밭을 홀로 두면서까지 퍼머컬쳐와 공동체를 배우고 농부들과 교류하기 위해 온 나와 온기에게 그냥 가만히 경치나 즐기며 지낸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떠나겠다고 했다. 120시간의 첫 농사여행은 생각지도 못한 갈등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유르트로 돌아가는 길은 홀가분했다. 나 자신을 계속 검열하고 상한 마음을 모른 척하고 지냈던 며칠을 더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때문이기도 했고, 그런 결정을 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게 꽤나 용기가 필요했었는데 결국 해냈다는 게 뿌듯했다.
그날도 올려다본 하늘엔 별똥별이 반짝였다. 마치 남은 여행에 좋은 일들이 많을 거라고 알려주는 듯이.
12월 14일
당연한 건 없다. 그게 까베에서 농사여행을 하며 배운 점이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소중히 여기고,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같을 수 없다는 걸 마음에 잘 새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진 게 너무 소중하다 느끼는 사람은 남이 주는 것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는 걸 느꼈다. 워커웨이 호스트로서 나와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