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리면 별똥별이 떨어지던
- 나는 너희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너희가 여기서 일을 하고 싶다 해도 나는 너희와 일하고 싶지 않아. 그냥 약속한 날까지 숙소에서 있다가 가.
- 이번 여행은 그냥 놀면서 지내기 위해서 온 게 아니야. 다른 농부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싶어서 하고 있는 여행이야. 네가 우리랑 공유하고 싶은 게 전혀 없다면 우린 내일 아침에 떠날게.
호스트 레이와의 소통은 원활한 편이었다. 한국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보니 이번 여행은 공동체, 특히 퍼머컬쳐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방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커웨이, 우프, 헬프엑스를 샅샅이 찾아봐도 스페인에는 공동체와 퍼머컬쳐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곳이 거의 없었다. 혹시나 싶어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옆 나라 포르투갈도 찾아봤지만, 역시나 검색 결과로 나오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있어봤자 5개 미만이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공동체’가 아닌 아이 둘과 커플로 구성된 가족을 공동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구글링을 했다. 구글링 중 정말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 환락의 섬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이비자가 퍼머컬쳐와 연관되어 검색됐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곳들은 아닐까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까베도 그렇게 알게 됐다. 까베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비자에 있는 곳은 봉사자를 받지 않지만, 안달루시아에 있는 곳은 봉사자를 받는다고 했다. 그 외에 자세한 정보는 없었다. 안달루시아 까베의 경우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최소 몇 개월은 아무것도 올라오지도 않고 태그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퍼머컬쳐 공동체를 찾았다는 사실이 기뻐서 우선 메일을 보내 얘기라도 나눠보자 싶었다.
스페인 이비자는 마약과 파티로 유명하다. 유럽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파티를 즐기러 가는 곳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히피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동체와 퍼머컬쳐라는 개념이 발달하게 된 것 같다. 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들이 택한 것은 시스템 밖에서도 살 수 있게 하는 자급자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베 역시 이비자에서 시작됐다. 90년대에 만든 공동체로 지금까지 한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웹사이트에 있는 봉사자 신청 메일로 왜 방문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얼마의 기간 동안 방문하고 싶은지 등을 써서 보냈다. 기대하진 않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레이라는 이름의 호스트에게서 봉사자 신청 양식 서류에 맞춰서 다시 한번 신청을 해달라는 답신을 받았고, 스페인어로 쓰인 양식을 채워서 바로 보냈다. 며칠 후 화상 통화를 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영어로 직접 대화를 하려니 살짝 떨렸지만, 어떤 수단으로 올 수 있는지, 비자는 받고 오는 건지, 왜 오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농장에서는 여자도 남자랑 똑같은 무게를 들고 똑같이 일해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얘기 중간중간 레이는 내가 히피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시아에서 히피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서는 히피를 그냥 마약을 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며 히피는 절대 사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스페인의 퍼머컬쳐 농장을 보고 같이 일하면서 배우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서너 번은 족히 말하고서야 긴 통화가 끝났다.
도착 첫날은 일요일이라 정확하게는 데이오프(쉬는 날)여야 했지만, 시내에 평소와 다르게 큰 차를 가지고 나온 김에 친구로부터 받기로 한 가구 재료를 옮겨야 된다고 했다. 키 170 정도 되는 사람도 가려질만한 두툼한 나무판자 몇 개를 테이블과 의자가 나와있는 도심의 골목들을 가로질러 공용 주차장까지 나르기를 몇 번, 서랍과 테이블 등 가구를 또 몇 번에 걸쳐서 옮겼다. 첫 만남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갑자기 옮기다 보니 어깨랑 손목이 시큰거렸지만, 차에 모두 싣고 나서는 뿌듯한 마음으로 농장으로 향했다.
까베에 도착하고 레이는 먼저 숙소를 소개해줬다. 몽골에서 직접 자재를 공수해 만들었다는 유르트(Yurt)에는 말의 것인지 아니면 말먹이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불쾌한 냄새라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유르트 안에는 여러 사람이 쓰도록 벙커베드가 3개 놓여있어 6명까지 지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르트 안 난로였는데, 호스트가 전날 시내에서 밤을 새운 탓에 피곤해해서 난로 사용은 다음날 알려주기로 했다.
짐을 내려놓고 주변에 있는 시설들도 같이 둘러보았다. 유르트에서 몇 걸음 걸으면 보이는 생태화장실은 대소변 분리를 하지 않고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었다.* 두 명의 고정 거주자와 두어 명의 봉사자가 있을 때 6개월 정도 사용한다고 했다. 화장실 변기 아래 놓인 버켓의 용량이 다 차면 위의 구조물만 옆의 구덩이로 옮겨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6개월의 사이클로 발효시키고 퇴비화하면 다시 구조물을 옮겨오는 간단하면서 영리한 화장실. 우리 밭에 있는 생태화장실에도 적용해보고 싶었다. 화장실 외부 벽에는 수도꼭지와 개수대 그리고 거울이 있어서 손을 씻거나 양치질을 할 수 있었다. 거울에 보이는 내 얼굴 뒤에는 건조하고도 큰 수평선을 갖는 언덕과 노을이 보였다. 이런 거울이라면 매일 보고 싶을 것 같았다.
* 생태화장실은 대소변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소변은 (공기에 노출시키지 않고 발효하는) 혐기성, 대변은 호기성이기 때문에 둘을 따로 모아 발효시켜 사용한다.
생태화장실에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팔레트를 활용하여 벽을 만든 샤워실이 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는 샤워실이라 한쪽 면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큰 유리창으로 되어있었다. 마침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는데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곳에서 처음 샤워를 했을 때, 밖에서 누가 볼까 봐 걱정이 돼서 계속 창 밖을 두리번대며 쪼그려 앉아 물을 끼얹었다. 창 너머로 샤워실을 볼 만한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튿날부터는 그냥 편한 마음으로 경치를 즐기며 씻을 수 있었다. 산 능선에 걸쳐진 해를 바라보며 그 햇빛이 나에게 닿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그 자연 속에 들어간 나도 어우러져 즐거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샤워를 할 때마다 새삼스레 떠올랐다.
까베의 샤워실은 수도가 바로 연결돼있지 않고, 샤워실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물탱크에서 물을 받아와서 사용한다. 물탱크는 태양광으로 데워지기 때문에 흐린 날에는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야 할 겨울인데도 기후변화로 인해 비가 오지 않고 해가 떠 있어서 따뜻한 물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레이는 말했다.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슬픈 얘기였다. 스페인 남부인 안달루시아는 원래도 더운 지역이긴 했지만 최근 10년은 가뭄이 심해서 기존에 하던 올리브나 아몬드 농사를 짓기 힘들어지고 있다. 워커웨이로 연락했던 다른 호스트들도 다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올해 아몬드 농사가 망했다고. 스페인에서 땅 값이 비교적 저렴해서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을 하려던 사람들이 꽤나 찾아온 안달루시아인데, 이제는 하나 둘 떠나고 공동체들도 문을 닫고 있었다. 이곳에는 더더욱 물의 흐름을 고려해서 농장과 숲을 디자인하는 퍼머컬쳐가 점점 중요해지겠지. 그런데도 퍼머컬쳐를 하는 공동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쉬웠다.
샤워실까지 살펴본 후 우리는 공용 공간으로 갔다. 꼬르띠히요(cortijillo)라고 부르는 작은 공간인데, 스페인어 꼬르띠호(cortijo)에서 작다는 의미로 이요(illo)를 붙여 꼬르띠히요라고 부른다. 작은 테이블과 냉장고 그리고 요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저녁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서 만들어먹으라는 말과 함께 호스트는 자신의 숙소로 떠났다.
불을 때지 않고 잔 첫날밤은 정말 추웠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떤 형태의 숙소에서 지낼지 확실하게 모르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침낭을 가져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침대 위에 침낭을 놓고 그 안에서 잤는데도 중간중간 온몸에서 느껴지는 추위에 깨긴 했지만. 다음날 레이가 유르트의 난로 불 피우는 법을 알려줬다. 여행 직전에 야외에서 고구마를 굽기 위한 로켓매스히터를 간단하게 만들고 사용해 봤지만, 실내를 오래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난로를 사용하는 건 처음이어서 긴장이 됐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난로 뚜껑을 열어 불을 계속 확인하는 바람에 처음 불을 피운 날엔 유르트 안이 연기로 가득해졌다. 춥지만 가스에 질식해서 죽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늦게까지 환기를 시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연기의 원인을 잘 추측한 덕분에 그다음 날부터는 연기가 거의 안 나게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정말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맞딱뜨리다 소소한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이런 생태적인 삶에 필요한 건 화려한 최신 기술이 아닌 평범하고 안 배워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인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특히 나와 같은 MZ 세대) 사람들은 막상 하려고 보면 시작부터 감을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농사여행을 하면서 '내 힘으로 생존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레이가 권장한 하룻밤 사용할 땔감의 양은 큰 나무통 1개와 불쏘시개로 쓸 그라스 및 얇은 나뭇가지들 한 줌 정도였다. 그렇게 불을 피울 경우, 밤에 잠에 들기 전에 불이 거의 꺼지고 잔열만 살짝 남게 된다. 난롯불은 처음 한두 시간 정도 반경 30센티 정도 뜨뜻하고 그 외의 공간은 데우지 못했다. 불을 피웠지만 유르트 밖과 안의 온도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자다 보면 덮고 있는 이불까지도 차가워서 깨게 될 정도였다. 히트텍을 입고 잠옷과 경량패딩까지 입은 후 침낭 속에 들어간 채로 이불 두 겹은 덮어야 비로소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잘 수 있을 정도라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깨달음이 있었달까. 시골에서 주택살이를 시작하면서 추위 때문에 가을부터 난방을 하고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시골 겨울의 기름값'을 체감하게 됐다.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기름차를 불러야 샤워도 하고 춥지 않을 정도로 집을 데울 수 있었다. 1년 차 퍼머컬쳐 농사 공동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용할 에너지의 한도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는 까베의 방식이 긍정적인 인상을 줬다.
땔감뿐 아니라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까베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법들로 행동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물도 바로 수도로 연결되지 않아서 자연스레 아껴 쓰게 되고, 내가 쓴 물의 양을 매번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기호식품 중 하나인 유제품은 아몬드를 수확해 직접 넛밀크로 만들어먹고, 찬장에는 작년에 수확한 올리브나 토마토를 담은 저장식품이 가득했다. 식수는 20분가량 떨어진 마을에 가서 길러온 후 도자기에 담아두고 먹는다. 태양광 물탱크는 스페인의 중고거래 앱을 통해서 저렴하게 얻어 온 온수기 탱크를 개조했고, 건물들도 폐팔레트를 아름답게 재활용했다. 내가 땅을 사고 내 집을 짓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애쓰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동선과 행동이 디자인된 집을 짓기 위해서. 레이도 아직 자신이 원하는 집과 농장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할 일이 많다고 했지만, 자신의 땅이기에 차근차근 되는 만큼 해나가면 된다며 웃었다.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였다.
자신의 땅에 자신의 집을 짓고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생활비가 필요한 건 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는 쿠바에서 왔는데, 스페인에 살게 되면서 우연히 이비자 까베를 알게 됐고 거기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까베에 살면서 생태적 삶을 위한 기술들을 배웠는데, 이런 공동체들에서 열리는 축제들에서 어쩌다 보니 디제잉하게 됐고 그렇게 디제이로서의 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비자가 축제와 환락의 도시이다 보니 디제잉 일이 많아 레이는 여름철에 수입을 모으고 까베로 돌아와 나머지 계절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안달루시아 까베는 시작 단계라 농장과 부지가 잘 준비되기 전까지는 이런 삶을 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온기, 나 그리고 레이 모두 덜 벌고 덜 소비하는 삶,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돈을 쓸 일이 없는 삶을 위해 계속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방법과 정도는 다르지만 공통점을 느껴서 역시 퍼머컬쳐 공동체를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직전에 불을 피워야 잠에 드는 순간이 따뜻하기 때문에 저녁 먹고 나서 자기 직전까지는 꼬르띠히요에 있거나 유르트 밖에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졌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해가 있던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 채워졌다. 맨눈으로 별자리가 보였다. 여행 메이트인 온기는 매일 바뀌는 천체를 보고 어떤 별자리인지 맞추는 게 새로운 취미인 듯했다. 같이 나와서 몇십 분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가장 반짝이는 별인 목성, 별 세 개가 나란히 있는 오리온자리와 W 자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카시오페아가 나에게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밤엔 별똥별이 보였다. 온기에게 저 쪽 하늘을 보라고 부르면서 돌아본 맞은편 하늘에서 또 별똥별이 보였다. "나 두 번이나 연속으로 별똥별 봤어! 운이 좋으려나 봐." 온기에게 다시 이야기를 하려는데 또다시 별똥별이 보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몇 번이고 별똥별이 떨어졌다. 내가 살면서 이런 광경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유르트 앞에서 별을 보는 그 순간이 더욱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마을이라도 가려면 차로 10여분은 가야 하는 고립된 곳, 우리 말고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외딴섬처럼 서 있는 언덕, 한도가 정해져 있음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며칠을 지내면서, 이런 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5일째 되던 날 우리는 별이 쏟아지던 언덕을 뒤로하고 대도시로 나왔다.
12월 11일
시내에서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길부터 레이는 참 말이 많았다. 몇 시간 못 잔 상태라 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 운전이었다. 비포장의 거친 길들을 지나고 염소몰이하는 이웃도 만나고 돌멩이 가득한 협곡 같은 곳을 지나 거의 산 꼭대기 같은 곳에 도착했다. 큰 개 세 마리가 보이고 철망으로 된 문이 보였다. 여기부터가 까베라고 했다. 철망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경관이 펼쳐졌다. 광활한 산과 언덕 그리고 사막같이 건조한 토양. 잘 정돈되고 잘 준비된 사막 같달까?
12월 12일
일을 마치자마자 밤에 피울 나뭇가지와 풀을 모으고 씻었다. 태양광 패널로 데워진 물이 아주 뜨거워서 화상을 입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저녁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오늘도 별이 많아서 별구경을 했다. 유르트에 처음으로 불을 피웠더니 연기가 한가득이라 잠을 잘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눈이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