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우리 같은 사람들 - 이고도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PqdAchjnlnA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평생을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정도로 백인 경찰관들에게 구타당하고, 그로 인해 일어난 LA 폭동 때 평화를 호소하며 로드니 킹이 했던 말입니다. 동글동글한 외모와 선천적 반, 후천적 반으로 획득한 나름! 발랄한 성격 덕분에 잘 가려지긴 하지만 사실 저는 어느 정도 반골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험담과 공격적 열등감,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상명하복, 눈치와 체면, 작은 여자애면 이래야 해! 하는 유교사상이 남아있는 한국이 가끔 지긋지긋해요.
그래서 그런지, 교복 입을 때를 생각해보면 저는 운이 좋아 그냥 넘어갔지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야자 2차 빼먹고 고작 가는 데가 카페야? 열여덟에 야자를 쨌으면 서울숲에서 따릉이는 타야지! 하고 열댓 명을 모아서 따릉이 타고 나가다가 걸려서 징계 맞기 직전까지 가본 적도 있고, 괜히 학교를 몇 번 더 빠지고 싶어서 부산대 백일장 같은 지방대학교 백일장은 필참 했습니다. 이외에도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호감형이 아니었다면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아마..?) 징계감이었던 일들이 있었어요.
또, 제가 속해있는 작고 큰 무리에서 다수에 의해 소외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이유가 뭔지 꼭 짚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심하게 눈총을 받거나, 제가 같이 소외당하는 일이 생겨도요. 다수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특출난 휴머니스트도 아니고, 기억나는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원고지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집단 논리에 휘둘리기 싫었습니다. 그 내면을 더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럴까? 아무리 내 생각이 이래도, 다수의 의견에 맞춰서 그냥저냥 휩쓸려서 살기에도 힘든데 왜 굳이 소수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말에는 사과를 받아내고, 냉소적인 친구들을 가만 두지 못했을까, 고민했던 일기들이 많습니다. 최근 이 고민을 해결해줄! 정말 좋은 책을 찾았어요. 문유석 판사님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입니다.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는 <우리 같은 사람들 (People like us)> 이고도의 노래를 추천해요!
나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꿈꾼다.
간부들 모임에서 만나, 간간히 근황을 확인하는 친구에게 추천받은 이 책! 현 서울 중앙 지방법원 부장판사인 문유석 판사님의 책입니다. 읽다가 빵 터지는 구절도 많고, 인덱스 태깅도 20쪽이 넘게 했을 정도로 공감 가는 구절도 많아요. 합리적 개인주의야 말로 저성장 국면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세대에 꼭 필요한 거구나 싶었습니다.
우선 작가가 말하는 '개인주의자'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닙니다. 튀는 사람은 눈총 받기 마련인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 라는 말은 어딘지 주홍글씨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건 개인주의라는 단어에 가지고 있는 오해예요. 개인주의는 개선보다는 혁명을, 전통을 거부했던 계몽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면서 서구사회의 주 밑바탕을 이뤘습니다. 어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이어야 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죠.
고민의 출발점은, '그럼에도 왜 우리는 불행할까' 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성취하여 평화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싫어 이민 가고 싶다고들 하지만 세계지도를 놓고 정말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열몇 곳을 빼고 살기 좋다 할만한 곳이 별로 없는 인류의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난 친구들이 삼성 핸드폰을 쓸 때나, 초대받았던 프랑스 친구 집의 가전제품이 LG일 때, 이탈리아 두오모 성당의 공사 외벽을 삼성 광고가 차지하고 있을 때 애국심이 불타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해지고 한국을 떠야 해!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어! 했던 날들도 있어요. 부모님의 기대, 친구들과의 스펙 비교, 나는 아마 서울에 못살고 덜 외로운 신도시를 찾아야겠지, 근데 나는 결혼은 하고 싶은데!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나? 하는 마음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양극화, 빈부격차, 취업난, 불평등, 저성장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제가 느낀 마음들은 지구 전체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작가는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 특유의 체질이 증세를 점점 악화시켜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말해요.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 지루하게 배우던 루소, 밀, 몽테스키외, 지금의 서구식 민주주의 근간을 이룬다는 그 개인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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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 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 본 경험 없이 탈 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 사회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과 억압이 생긴다!입니다. 나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집단의 눈치를 보다가 솔직하지 못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아요. 작가는 학창 시절 반장이었을 때, 야자시간 떠들던 친구들을 때려야 했던 일화를 적습니다. 편의를 위해 교사의 체벌권을 위임한 교사와, 완장을 하나 달았다고 사춘기 친구들을 때려야 하는 자신. 개인의 의사와 감정을 무시당했지만 그게 당연히 용인되는 풍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고요. 88학번인 작가와 저는 약 30년의 시간 간격을 두지만 제가 공감하는 일화이니, 한국 사회는 아직도 집단주의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독재를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사회는, 개인의 자유만을 본질로 삼는 구자유주의도 정말 정말!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시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NOPE)
저는 이걸 대학생이 되어서 깨달았어요. 가정이든, 학교든, 심지어 작은 동아리에서도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고요. 여기서 제 반골기질이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말이라도, 더 이상 두 자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없어져야 할 집단주의가 끼어있다면 거부하고 싸웠어요. 집에서는 말로, 신체적으로 상처받았고, 말이 안 되는 집단 분위기라면 동아리를 탈퇴했습니다. 연합동아리를 직접 만들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잘 놀았어요.
저는 제 의사, 감정, 취향이 중요했고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제 시간과 선택이 중요했습니다. 돌아보면 언행이 바르지 않고 험담만 늘어놓거나, 혐오는 혐오로 덮어야 한다거나, 책 같은 거 읽어봤자 도움도 안 되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의 집단에서 거리를 두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이러다 혼자 남게 되는 거 아닌가! 불안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말 잘한 선택들입니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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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합리성이다. 이와 동전의 양면처럼,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는 개인의 이익이 지속 가능하지 못하도록 '반대 인센티브 (불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합리성이기도 하다.
저는 어차피 정답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정답이야! 너넨 다 틀렸고 내 말이 맞아! 하는 사람의 뒤는 어딘가 구리고, 그걸 믿는 사람들은 그만큼 절박하다고요.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우생학이라는 과학적 증거를 들이밀며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나 뚝 떨어진 정답이 있다고 말하죠. 건강한 사회나, 집단은 개인을 존중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며 합의점을 찾습니다. 흑백논리는 바보들도 쉽고 빠르게 정답을 찾았다고 믿게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 저는 20대 초반 개인주의자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나름의 합리도 챙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프라하에서 샌드위치 나눔 봉사를 하거나, 라오스 봉사를 하면서 느낀 감정들, 분명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이야기에 울고, 먹먹해지고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명백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수치라는 걸 기억하면서요.
우리 같은 사람들
언젠가 내가 틀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전에도 썼지만, 저는 취향이 어느 정도 명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가치관이 명확하면 좋지만, 아직 우리는 나이도 어리니 가치관이 없는 게 당연하니까 취향 챙기기! 하면서 전시회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하고, 서로 책을 추천해주고 빌려 읽는 것도 좋아해요. 사람의 행복은 돈이나 물질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개인주의자 선언> 에도 나옵니다. 책을 덮고 고맙게도 제 옆에 있어주는 친구들을 떠올려보니 다 어느 정도 합리적 개인주의자인 것 같아요.
당장 내일 제가 아~ 나 인턴 관두고 돈 모은 걸로 프랑스에 장기 봉사 가니까 한 1년 뒤에 보자! 해도 갑자기? 근데 잘 갔다 와~ 편지 써줘! 할 친구들 기준입니다.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고, 일 년에 많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제가 딱히 편견이 없어서 그런지 친구들도 다들 다른 분야에서 멋있게 자리를 찾아가고 있어요. 아직 방황이 당연한 나이라, 멋진 방황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요.
제 모든 대학생활을 알고 있고, 다음 주 캐나다로 떠나는 친구는 취미가 모델 활동이고, 학교를 갑자기 자퇴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예술을 꿈꾸는 친구도 있습니다. 뮤비 조감독부터 코딩 책을 내서 인세를 받는 친구, 대학원 조교를 하면서 좋은 책을 빌려주고 글로 늘 영감을 주는 친구도 있어요. 다들 멋지고, 하루하루를 촘촘히 살아가는!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주의인 저를 잘 보듬어주는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대들도 개인주의인 것 같아요.. 말하면 이거 빌려줄게 읽어봐..)
이고도의 '우리 같은 사람들'을 들으면서 같이 저성장 시대에.. 함께 살아가야 할, 저를 늘 응원해주는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각자 다른 향기가 있고, 속삭이는 입들을 쫓아가지 않는! 친구들이라 제가 합리적 개인주의로 살아도..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줄 걸 압니다.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해줘서 고맙기도 하고요! 내가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 맞다는 메시지를 주는 책을 만나면 힘이 납니다. 더 다양하게, 열심히 읽어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책의 한 구절을 읽고, 아 나도 개인주의자였나 보다! 싶으시다면 <개인주의자 선언> 완독을 추천합니다. 이고도의 노래를 들으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