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김수현>, 수잔 - 김사월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Xylb6kAitf8
만약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삶의 앞마당에 있는 사소한 행복에 예민해지고 살아있는 삶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합니다. 방황이 많았던 스무 살 초반부터 지금까지 많이 좋아하는 에세이 집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메마르지 않으려 노력할 것'에 나오는 구절인데 그다음 문장은 저한테 정말 큰 영향을 줬어요.
감정을 견뎌야 하는 노동과,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경쟁 속에 감정은 메말라갔고, 즐거움은 지루한 일상을 견뎌낸 보상이자 강렬한 자극으로 정의되었다. 이는 감정이 메마른 사이코패스들이 극도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감정이 메마른 이들은 사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기에, 점점 자극적인 즐거움을 찾게 되는 거다. 하지만 자극적인 일상은 더 무료해지고, 생은 활기를 잃는다.
즐거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며 가능한 어릴 때 부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와 방법을 익혀야 한다. -253p.g-
나는 사이코 패스가 아닌데! 내가 즐거움을 바라는 모습이 사이코패스와 같다는 게 서늘했었습니다. 이 문장 전에는 우연히 대화를 나눈 호주인이 좋아하는 놀이는 버드 와칭 (bird watching), 새보는 거였고 또 다른 호주인은 크리스마스에 할머니 댁 저녁 식사 거리에 얼마나 많은 음식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이 모이는지가 즐거움이었다고 해요. 당시 저에게 즐거움이라는 건 토익 900 넘기, 자격증 따기, 1등 하기! (과탑 하기) 더 좋은 학교로 편입하기! 등 성취와 관련된 거였어서 이 문장이 충격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스무살에 읽었으니,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고 제일 어렸던 그날에 돈을 들이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와 방법을 찾아야겠다! 결심했었어요. 말이 스무 살이었지 2월 정도였으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였어서 그날로 매일 일기를 쓰자, 나는 쓸 때 제일 마음이 좋으니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6년동안 열네 권의 다이어리를 썼어요. 대략 4개월에 한 권씩 썼습니다. 친구들이 아는 사람에게 저를 소개할 때, 얘는 민지고~ 매일 다이어리 써! 할 정도로 꾸준히 다이어리를 쓰고 있습니다. 신기한 게, 돌아보니 지금 저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다른 것들도 다이어리를 쓰면서 함께 왔다는 거예요. 교환학생이나, 라오스 해외봉사, 프랑스어 공부까지 큰 결심이 필요한 것들도 매일 일기를 쓰면서 차근차근 결정했고요.
다이어리를 쓰면서 따라온 대표적인 즐거움으로는, 마스킹 테이프!!! 가 있습니다. (스티커도 있지만 너무 어려보이니 PASS~)
마스킹테이프와 스티커야 말로 큰돈을 들이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 (소비) 중에 하나입니다. 기분도 상하고 감정도 상한 것 같을 때 산책하는 LONG~루트가 있는데, 마지막에 오천 원도 안 하는 마스킹 테이프나 스티커 소비를 하면 기분이 정말 좋아지거든요! 다이어리를 꾸미면 더 좋아지고요 :) 그렇지만 좁은 제방에 자꾸만 마스킹 테이프가 증식하고 있어서 이대로 괜찮을지는..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일기 쓰기가 가져와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그럼 매일매일 일기장에는 뭘쓰나! 정말 별걸 다 씁니다. 노래 가사도 쓰고, 시도 필사하고, 책 구절도 적고.. 하지만 한쪽씩 채워간다는 느낌으로 뭔가를 쓰고, 그게 쌓이니까 꽤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초반에는 일상 기록 용도로 많이 썼어요. 오늘 찾아보니 UMF 갔을 때도 있는데, 인생 첫 페스티벌이라 입고 갔던 옷까지 그려놓고.. 티켓이랑 다 붙여놨네요. 방방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코로나라, 페스티벌을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일기의 순기능! 이때 왔던 뮤지션들도 다 확인할 수 있어요.
패키지로 동유럽을 여행했을 때 일기입니다. 이 일기는 정말 중요한데, 이때 프라하에 처음 가고 아! 나는 여기서 꼭 살아봐야겠다! 결심했거든요. 오를로이 (천문시계)는 한 달 정도 매일 봐야 20대에 후회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날 하루 종일 너무 행복하고, 프라하가 안전한 것도 확인하고는 엄마 몰래 교환학생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체코 비자를 받을 때나, 체코어도 모르는데 여길 가는 게 옳은 결정일까? 싶을 때마다 이때 일기를 보고 아.. 프라하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야! 했어요. 결론적으로 7개월을 프라하에서 살았고 그때 기억으로 지금 버티고 있습니다.
일상 기록 + 필사 용도였던 다이어리를 시간 기록용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하루하루 시간 관리를 시작했거든요. 코로나 초기, 집에만 있어야 하니 알바도 없이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된 기념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결론적으로 학교 공부도 하면서 프랑스어도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귀찮아서 시간 기록은 안 합니다. 이때 할 일이 정말 없었던 것 같아요.
20년 2월부터는 프랑스어 공부 기록! 용으로 다이어리를 썼습니다. 저렇게 동사 / 형용사 / 명사 섹션을 나눠놓고 오늘 분량 채우기 전에는 안자~ 하면서 혼자 스파르타 식으로 공부를 했는데, 누가 시킨 공부가 아니라 다이어리를 꾸미는 거야~ 하는 마음이었어서 너무 재밌게 공부했어요. 정말로!
정말.. 즐겼어서 2020, 2021년 두 해는 프랑스어 일기를 따로 쓰기도 했습니다. 다이어리에 공부하고, 일기 써서 프랑스 친구한테 검사 맡고 일기 쓰기! 를 매일매일 했어요. 덕분에 작년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DELF A2를 땄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어와 권태기여서 잠시 쉬고 있지만 여전히 샹송도 좋아하고, 프랑스어 구절이 들릴 때마다 아! 이건 즐겁게 쓴 다이어리 덕분이야, 해요.
독서노트로도 쓰기도 하고, 그림도 가끔 그립니다! 자주는 안 그리지만, 오른쪽 화약탑처럼 꼭 남겨두어야겠는 게 있으면 그려놔요. 여러모로 소중한! 습관이고 적은 돈으로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루하루 소소하게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넌 혼자 남는 걸
오늘 소개할 노래 '수잔'의 한 구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혼자 남아야 하고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게 해 준 노래예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체코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나고, 떠났던 사람도 나 혼자죠. 학원 없이, 프랑스어를 독학하겠다고 매일 밤마다 단어를 외우는 일도 저 혼자 남아야 가능했습니다. 중요한 선택이나 결심도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어요. '너를 보여줄수록, 진실돼 갈수록 넌 혼자 남는걸'이라는 구절도 참 좋습니다.
김사월의 1집 '수잔'은 2015년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한 인디씬에서 명반입니다. '수잔' 이 좋으셨다면 '접속'을 듣고 전곡을 들어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
2018년, 2019년 '수잔'을 들으면서 참 많이 위로받았었는데 공감되는 한 대중음악평론가의 평론을 읽었어요.
앨범이 발표되고 나면 또 수많은 자신만의 수잔이 새롭게 생겨날 것이다. 듣는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수잔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각자의 '수잔' 모두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만은 분명하다. 이 앨범 '수잔'이 그런 것처럼.
노래를 들으면서, 그때 당시에는 정말 불완전하고 불안했었는데 오늘 다시 들으니, 어느 정도 나만의 수잔이 완성된 느낌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소중한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인 것도 같고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뭐를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수잔'과 함께 읽으면 좋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입니다. 이 에세이집은 스무 살에 읽기 시작해서, 걱정이 많아질 때 혹은 내 선택이나 결정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매번 꺼내 읽은 책입니다. 100만 부 이상 팔렸고, 260주 연속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 인만큼 많은 분들이 아는 책일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다시 읽고, 제일 좋았던 구절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것' 챕터의 구절이에요.
복잡하게 생각하기 피곤했던 나는, 삶을 향유의 대상으로 여기기로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생을 느끼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 실제로 그건 꽤 좋은 삶이다.
내 삶의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냈고, 하루에 몇 번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날들을 보냈다. 외면했던 문제에 직면하며 해결했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통념, 사회가 규정한 정답에서 한발 멀어지니, 삶은 명료하고 가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되었다.
작가는 삶을 향유의 대상으로 여기기로 결심하고, 결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기를 택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짓누르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그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해요. 하지만 하루하루 행복해도 잘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계속되자 원점으로 돌아와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많은 질문 끝에,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건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요! 하지만 위트 있게, 이 말은 희생하며 살라는 게 아니라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회에서 존재감을 느껴라!라는 것도 강조해줍니다.
나의 경우는 세상이 조금 더 괜찮은 곳이었으면 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가 허락되기를 바랐고,
가난해서 힘들지라도 비참함을 느끼지는 않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끝나지 않던 질문, 아니 언제나 끝나지 않을 질문. 내 나름의 답을 얘기 하지면 우리 좋은 삶을 살자. 너무 복잡할 것 없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노래와 좋은 책과 함께 하며,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을 쬐는 것.
나는 그 일상의 따스함이 좋은 삶의 전부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와, 좋은 책과 함께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을 쬐는 것! 이것도 챙기면서 사회적으로 돈도 벌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하는 게, 좋은 삶인 것 같아요. 김수현 작가 책 너무 좋아요. 김사월도 너무 좋아!
저는 매해 12월 31일마다, 내년 더 좋은 내가 되기 위해 이뤘으면 하는 것들을 다이어리에 적습니다. 올해의 경우 여유가 생겼으니 첫째로, 책을 100권 이상 읽고 둘째로 브런치에 글 쓰기를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그 전에는 못해봤던 거니, 나를 고른 애나 누가 골라준 애 말고 내가 고른 애로 연애하자! 였는데 후자는 아니지만 전자 두 개는 제 마음대로 되는 영역이라 둘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두개 모두 큰돈 들이지 않는 즐거움이자, 어찌 보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목표니까요!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직 없다면, 200쪽 이내의 에세이집 읽기는 어떨까요? 때로 공감가는 문장 하나가 많은걸 바꿔놓기도 하니까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에세이집을 완전 추천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