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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Feb 19. 2022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 Onthedal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Zbm8I81aTvI

Onthedal - HYE


가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책을 덮고 영화가 끝나도 계속 생각이 나는 등장인물이 있어요. 저는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면 계속 생각하는 편이라, 왜 그때 이런 대사를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할 때나,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을 계속 돌렸던 주인공을 이해해보려고 영화를 몇 번이나 봤던 적도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작년에 자주 꺼내 읽었던 책은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입니다. 9개의 소설이 들어있는 소설집이고 그중 너무 한낮의 연애를 많이 읽었어요.  '양희'의 마음과 한순간 사라져 버린 '필용'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요. 그러다 Onthedal의 HYE를 듣는데, 아 양희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본인 같았겠다 싶었어요.


오늘 소개할 책은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입니다.

같이 들으면 좋을 노래로는 Onthedal의 HYE를 추천해요!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소설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집의 가장, 필용이 문책을 받아 시설 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나며 시작합니다. 지하실로 책상이 옮겨지고, 사람이 아닌 기계만 봐야 하는 생활이 지속되자 필용은 종로 맥도널드에서 매일 햄버거를 먹습니다. 그러다 양희를 떠올려요.


양희는 필용의 과 후배였는데, 종로의 어학원에서 같은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됩니다. 둘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같이 먹어요. 양희는 현재라는 것만 있는 특별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 현재가 분명 있지만 안개처럼 부옇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물 하나의 나이에 옷도 잘 바꿔 입지 않고, 머리는 숏컷, 화장기 없는 얼굴로 어학원과 집만 왔다 갔다 해요. 필용에게 이천원을 주며, 선배 늘 먹는걸로요 하고 햄버거를 사달라고 하고, 부족한 돈은 필용이 계산하는 식이었습니다. 둘은 2시간 정도 필용만 말하는 대화를 하거나, 종로를 걷고 인사도 하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곤 해요.



둘의 관계는 느닷없는 양희의 사랑고백으로 특별해집니다.

그날도 필용이 자기 이야기에 도취해 한창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양희가,  선배 사랑하는데, 했다. 양희는  말을 감정의 고저 없이,  , 이천 원을 쥐어주며 햄버거 주문을 부탁하던 톤으로 했다. 필용은 당황해서 어어, 하고는 웃어버렸다.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요?"

양희가  그런  물어보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지."
"그런  뭣하러 생각해요."

저는 정말! 이런 고백을 어디서도 읽은 적이 없어요. 그냥 선배 나 사랑하는데, 고백하고 갑자기 고백받은 사람은 말랑말랑한 마음이 생겨서, 어떻게 할까? 하는데 그런 걸 뭣하러 생각해요, 하는 고백이요. 보통 고백은 오는 마음을 바라고, 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양희의 고백은 다릅니다.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그 고백을 들은 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이런 고백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나요? 저는 아 장난하나? 내 반응이 재밌어서 보려고 하나? 하는 마음도 조금은 들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양희의 말은 공감합니다. 내일 감정은 내일의 나만 아니까요!


필용은 모욕감을 느끼고 양희를 그대로 두고 나와버립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둘은 맥도널드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필용은 매번 양희에게 오늘도 나를 사랑하는지 물어요.


"오늘은 어때?"
필용은 한 시간쯤 지나 그렇게 묻고 말았다.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아니, 그러니까 네가 어제 말한 그것 말이야. 오늘도 지속되고 있느냐고?"
"그렇죠 오늘도."
양희는 어제처럼 무심하게 대답했는데 그 말을 듣자 필용은 실제로 탁자가 흔들릴 만큼 몸을 떨었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양희가 사랑 고백을 하고 나서 필용의 생활은 엉망이 됩니다. 미국 유학 준비를 하려고 학원을 등록해놓고, 양희가 오늘도 나를 사랑할까? 만 생각하는 대학생이 된 거죠. 하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양희는 그렇게 마음을 전하고 나서 태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옷도, 머리도, 이천 원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뭔가 뿌연 사람처럼 종로를 걸어요. 계절이 바뀔 무렵 둘의 이상한 애정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도 정말 재밌어요.


다른 날과 다름없이 햄버거를 먹으며 앉아 있는데 양희가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한 것이었다.
"안 해?"
"네."
"왜?"
"없어졌어요."
(....)
"없어? 아예?"
"없어요."
"없는 게 아니라 전만큼은 아니게 시들한 거지. 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냐?"
필용은 무심하게 냅킨을 쥐었지만 손은 약하게 떨고 있었다. 마음 한 편에 불길함이 일고 있었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그래, 쓰나미, 실연의 쓰나미!

필용은 사랑이라는게 그렇게 바로 없어지는  아니야! 하며 설득하지만 양희는 확고합니다. 없어요 사랑, 하니 상처받은 필용은 양희에게   상처를 주죠. 본인이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경멸해왔던 양희의 유니크한 , 글을 쓰는 점이 모두 평가받을 것이 되어 버리고 거침없이 나쁘고 흉한 말을 해요. 양희는 나가버리고, 상처를  필용은 뒤늦게 후회하며 크게 아픕니다. 양희는  이후로 학원에 나오지 않아요.


필용은 양희를 그리워하다 혼자 마음을 키우고 이게 사랑인지, 그리움인지, 괴팍함인지알 수 없지만 양희를 찾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양희가 사는 문산까지 가려고 차를 운전하며 필용은 양희와의 연애와 사랑, 속박, 약속, 의무, 잠자리에 관해 생각하고 그 짧은 시간에 양희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다고 결론 내요. 양희의 스키니 한 몸과, 식욕 없음과, 무기력, 허무, 그리고 내일 없음까지 모조리 사랑한다고요.


하지만 그 사랑은 양희의 집을 보고, 양희의 부모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좀 헤매다가 동네 사람의 안내로 양희의 집을 찾았을 때 필용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양희의 집은 - 그런 걸 집이라고 할 수 만 있다면 - 집이라기보다는 굴에 가까웠다. (...) 오리는 있었다. 농장이 아니라 개울 한쪽에 철조망을 치고 오리 몇 마리를 가둬 기르고 있었다. 오리가 꽥꽥 울었다.

"양희야, 양희야, 니 통장에 얼마나 있냐?"
양희의 아버지가 돌아앉으며 물었다.
"삼십팔만 원쯤 있어요."
"돈이 어떻게 그렇게 많냐?"
"그냥 어떻게 있어요."
"오리 그물 고치려면 얼마나 들까?"
"십만 원은 안 들겠어요?"
양희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러면 양희야, 남은 걸로 쓸데가 생겼다."
"네네,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양희의 집은 스물한 살의 양희가 모은 38만 원이 큰돈일 만큼 어둡고, 어렵고, 그 안에서도 양희는 평온한 얼굴이었기에 필용은 할 말이 없어집니다. 단둘이 있는 순간을 위해 문산까지 왔지만 막상 둘이 되니 할 말이 사라지죠. 양희는 필용을 동네 어귀까지 데려다며 선배는 여기 왜 왔지? 부끄러워서? 합니다.


이 다음 대사를 저는 정말 좋아하고, 김금희 작가도 작가의 말에 언급해요. 누군가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고 물으면 문산의 나무처럼 서있겠다고요.


"미안하다. 심한 말 해서."
필용이 사과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수피가 벗겨지고 벗겨져 저렇게 한없이 벗겨져도 더 벗겨질 수피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필용은 양희 뒤에 서서 양희에게로 손을 뻗어보았다. 앞으로 한 걸음만 더 옮기면 손이 닿을 수도 있었지만 필용은 그러지 않았다. (....) 문산까지 오는 동안 필용이 전율했던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뻥 뚫린 것처럼 없어지고 말았다. 필용은 울었다. 울면서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좀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고 무언가가 아주 사라져 버릴 수 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문산으로 가는 길에 허무함도 사랑하고, 너의 내일 없음도 사랑한다는 필용의 사랑은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않고, 변형되지도 않고 아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필용의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분이었다고 생각해요. 필용의 사랑이 기분이었다면 양희의 사랑은 감정이었죠. 단순한 기분으로 자신에게 오늘은 어때? 오늘도 나를 사랑해? 하는 필용을 보며 HYE의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의 마음에는 빈방 하나조차 없구나, 양희는 괴로워했을 것 같고요.


Onthedal은 목소리도 좋지만, 노래 가사도 너무 좋아요. 나에서 우리로 가는 걸음이 이렇게도 힘든 건가요, 라던지 아마 이 세상에 사랑받을 사람들은 정해져 있나 봐요, 하는 가사들이 자꾸만 양희를 생각나게 해서 얼마 전에 한낮의 연애를 다시 꺼내 읽었어요!




나는 여기 없는 기분이고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감정과 기분을 잘 구분해서 갈무리하려는 편입니다. 긍정적인 기운! 행복이나 기쁨은 감정이든 기분이던 상관없어요. 좋으니까요. 항상 텐션을 5~7 정도로 유지하려는 편이라, 제가 늘 조심하는 건 부정적인 기운입니다. 슬플 때 이게 감정인지 기분인지 꼭 생각해보고, 감정이라면 하루를 내버려 두지만 기분이라면 빨리 다른 걸 하려고 해요.


오늘은 상처를  사람도 없는데, 괜히 혼자 상처를 받아서 울었습니다. 뭔가에 집착하지 않는  정말 어렵고, 보상을 바라고 일하는  좋지 않지만, 정해져 있다고 믿고 힘들 때마다 어느 정도 집착했어서 오늘 약간 슬펐던  같아요. (작년 버틴 내자신 응원해) 그래서 오늘의 슬픔은, 단순한 기분인  같았고! 2월에  번밖에 없는 금요일을! 슬픈 기분에 빼앗길  없잖아요? 그래서 산책을 나갔다가,  길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특별한  사겠다고 결심했던 황인찬 시집을 샀습니다.  달러 쿠트  백화점 100  판매 기념 특별판 책도 샀어요 (무려 작가 사인본!). 집에 와서 와인도 마시고, 선물 받은 박준시인의 산문집완독 하고,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니까 금방 기분에서 빠져나와서  감정이랑 기분을 구분하는  정말 중요해! 했습니다.


제가 혼자서 견디는 방법은 대개 이렇습니다. 잠깐의 슬픔이 하루를 망치게 두지 않고, 나를 위한 선물을 내가 사줘요.  외로운 마음에 누구를 만나러 가지 않고, 날씨가 좋고 구름이 예쁘다고 일렁이는 기분에 연락을 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는 , 보고싶고, 명확한 감정이야!   어느 정도 절제된 상태로 누구를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요. !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의 시를 읽는 것도 견디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 귀여운 똠양꿍 시도 찾았어요 :0 ~~~


여러분만의 혼자서 견디는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은 일 같아요. 없다면, 생각해보는 하루가 돼도 좋을 것 같고요!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사람인 '양희'가 나오는 책 <너무 한낮의 연애>와 onthedal의 노래 HYE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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