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Moments - Micah Edwards
https://www.youtube.com/watch?v=PFG8VCQ9pG0
YMCA 백일장에서, 뮤온에 관한 글을 써서 수상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 물리 시간에 졸았어도 뮤온을 기억해서 다행이야! 하면서 첫 번째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와 그 안에 타고 있던 강아지, 라이카에 관한 글도 언젠가 써야지.. 했었습니다.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대학교 3학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도서관에서 읽었어요. 소설 속 스미레가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고 하는 부분에 이입돼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이 책을 완전히 잊고 지내다, 올해 초 책 데이트를 하면서 발견하고 바로 사버렸어요 :) 어제 새벽에 다시 완독 했습니다.
그때는 스미레가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는 부분이 크게 보였었는데, 어제 다시 읽으니 고독함, 사람과의 관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느낀 것은 비유할 수 없는 깊은 적막감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틈엔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몇 가지 색이 영원히 사라져 있었다. 그 텅 빈 감정의 폐허, 초라한 산꼭대기에서 내 인생을 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공상 과학소설에 실려 있는 삽화에서 보았던 무인 혹성의 황량한 풍경과 비슷했다. 그곳에는 어떤 생명체의 기색도 없었다. 하루가 엄청나게 길고, 대기의 온도는 너무 덥거나 추웠다. 나를 그곳까지 운반해 준 비행체는 어느 틈엔가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그곳에서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스미레를 잃고, 그녀를 생각보다 더 사랑했음을 깨달은 주인공이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산 꼭대기에서 그리스의 환상적인 풍경을 보는데, 이렇게 큰 고독감을 느껴요. 아담하고 느낌이 좋은 호텔, 석양의 산들바람, 평평하고 따뜻한 바위. 이런 건 다 상관이 없고, 무인 혹성 같다고 느껴버리죠.
(...)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스미레와 내가 가지고 있던 미묘한 우정 같은 관계는 아무리 현명하고 온건하게 고려한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기껏해야 길게 늘린 골목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스미레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원했다. 어디에도 갈 수 없다고 해서 그 마음을 간단히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 작은 불꽃같은 것이다. 주의 깊고 운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유지하여 커다란 횃불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 불꽃은 꺼져 버리고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스미레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귀중한 불꽃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241p.g-
이 부분을 읽다가, 요즘 완전히 빠져서 듣고 있는 Moments가 생각났어요.
I know someday I'll have to say goodbye.
I'm losing time, All the moments that I get to share with you
As I watch you slip
Between a momentary consciousness and somewhere in your dreams
I feel the weight of a moment spent without you
언젠가 당신을 떠나야 하는 걸 아는 사랑노래, 그리고 slip between a momentary consciousness and somewhere in your dreams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순간적인 의식과 꿈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당신' 이 부분이 소설 속 스미레와 닮아 있습니다. '이쪽'에는 스미레를 잃은 주인공이 남아있고, '저쪽'세계에는 스미레가 있고 잃어버린 쪽의 뮤가 있죠. 하지만 주인공은 '저쪽' 세계로 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이건 하루키의 비유적인 표현이고, 풀어보면 주인공이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스 작은 섬에서 사라져 버린 스미레를 찾지 않고, 도쿄로 돌아갑니다.
이해는 항상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해는 항상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 본 문장이에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넋두리할 때 '그 사람 좋은 사람인데, 나한테 그런 식으로 행동한 건 이해가 안 돼.' 하기도 하고, 연인이랑 싸울 때 '나는 네가 이럴 때마다 이해가 안 돼!' 하잖아요. '너를 사랑해도, 오늘 행동은 이해가 안 돼!'라는 번외 편도 있습니다. 또, 정말 위로가 필요한 사람 앞에서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할 때, '나는 너를 다 이해해!' 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해도 항상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니 네. 오해라는 큰 동그라미 안에 이해가 있더라고요. 맞는 말 같아요. 이해는 항상!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저는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나 지금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왜 저런 게 좋다고 계속 보고 있지? 할 때가 많아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클 때면 나는 외로움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하다가도 혼자 자전거 타고, 빵 구워 먹고 행복해하면 나는 내가 제일 좋아! 내가 최고! 나랑 있는 게 제일 행복해! 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양면성이 분명히 있고, 그런 양면성을 깨달으면서 성숙하고 늙고 죽어가는 것 같아요. 누구나 속에 양 극단의 인간성이 있고, 그 양 극단은 서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될 필수 불가결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편견을 잘 갖지 않는 것 같아요. 이해한다고 말해도, 그 이해조차도 이해한다는 오해일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건 쉬운 일이죠. 하지만 그런 지적받을 만한 행위를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나도 원하고 있을지 몰라요.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를 얻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어지고 사라지고 하는 거죠. 하지만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사람들은 서로를 느끼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기까지 하면서 서로를 확인해요. 인간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과정이고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성!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좋다! 를 깨닫게 됩니다. 적어도 저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있어요.
'그렇다. 자아의 발견과 확인이야말로, 자연법칙의 진정한 이해야 말로 진정한 나를 깨닫고 발전시키는, 너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소중히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삶의 등불인 것이다.'
99년 판, 옮긴이의 말 말미의 내용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YZYN7tQctA
누구는 특별한 노래를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을 앙큼하다고 하던데, 저는 귀여운 편입니다. Micah Edwards는 경영대학교 3학년이고 야구팀에 있다고 해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마지막에 피아노 끝내고 짝짝짝짝 손뼉 치는 게 정말 귀엽습니다. 아침에 들으면 행복해져요! :)
1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영어로 traveling companion입니다. '여행의 동반자'라는 뜻이죠. 왜 러시아 사람들이 우주에서 외로울 인공위성에 묘한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가 소설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companion의 확장된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남겨놓습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을 때, 아 이거 맞나? 나 왜 고독하지? 싶을 때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추천해요!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혹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으로 삼아 회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지금도 지구의 궤도를 돌고 있을 수많은 인공위성을 생각했다. 지평선은 아직 어슴푸레한 빛으로 띠를 두르고 있었지만, 포도주 같은 깊은 색으로 물든 하늘에는 몇 개의 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인공위성의 빛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포착하기에는 아직 하늘이 너무 밝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 채로 지구의 인력을 단 하나의 연줄로 삼아 쉬지 않고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을 생각했다. 고독한 금속 덩어리인 그들은 차단막이 없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영원히 헤어져 버린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243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