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여백 Feb 12. 2022

기록하는 방법에 대하여

글을 그리면 그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림이나 기록에 대해서 묻곤 한다. 기록에 대한 원동력이나 영감은 그날그날 모든 순간에 숨어있다. 그래서  기억해두고  포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날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갈  있기 때문이다.  


기록하는 습관은 제일 간단하고 원초적인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잊어서이다. 이제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고 있다. 의미 없는 낙서들이라 생각을 하다가도, 무엇이든 채워두고 쌓아두면 때로는  자체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시간이 쌓이고 공간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


기록의 형태는 다양하게 고, 그 형태의 제일 많은 빈도는 폰 안의 메모장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모든 것을 붙잡아두는 곳. 그렇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힘을 믿는다. 그림과 글의 모호한 경계에서 나는 살아간다. 그래서  기록의 형태이자 기록하는 몇 가지 방법과 이야기에 대해 가볍게 써본다.


나는 금방 망각해나가는 존재라서, 그때마다 절실하게 기록의 힘을 깨닫고 있다. 쌓여가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기억이 되기도 하고, 결국은 내가 되기도 한다.





01

기록의 덫


'일기를 쓰시나요?' 이런 질문들을 종종 받지만,  굳이 말하면 사실상 안 쓰는 쪽에 가까운 듯하다. 일반적으로 일기를 쓰고, 열심히 꾸미기 위해 일기를 쓰기 위한 시간을 투자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그날그날의 필요한 일정을 간략하게 (그리고 너저분하게) 적어두는 1. 스케줄러 이렇게 글이든 그림이든 낙서든 채울  있는 2. 무선 노트를 사용할 뿐이다.



요즘 사용하는 왼쪽의 무선 노트와 오른쪽의 얇은 스케줄러

무선으로  노트들은 마음대로 채울  있고, 날짜형이 아니어서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다. 일기보다는 그냥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 일련의 이벤트나 사건들을 기록하거나 그날  지출금액이 되기도 한다. 급작스레 떠오르거나 흘러가는 생각들을 붙잡기 위해 재빠르게 폰의 메모를 열기도 한다. 중구난방으로 여러 군데에 덫을 심어두듯이. 모든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한 나의 기록을 위한 덫이다.







02

각기 다른 노트를 사모으면



같은 디자인사이즈의 노트를 꾸준히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돌아다니다 마음에 들면 어느새 계산대에 이르러있는 나를 발견한다. 변덕스러운 취향과 성격이 반영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책장에 가지런한 높이와 일렬로 촤르르르 꽂혀있는 그런 상상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알록달록 천차만별의 스케치북이 가득 차있다. 그때그때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무지 노트를 만나면 사두는 편이라,  노트를 펼치려고 책장에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나름대로 고르는 재미도, 사는 재미도, 써가는 재미도, 결국에는 채우는 재미로 이어진다.


책장의 한칸은 곳곳에서 모으거나 사둔 전부 새 노트들이다.






03

의식의 흐름대로, 강박에서 벗어나기


노트에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채워야 한다는 그런 강박들을 가질 필요없다. 그래서 내 노트는 넘겨보면 여백이 많다. 붙이고 싶으면 스티커를 붙이거나 종이를 붙이거나 오늘  상품 스티커를 붙인다거나. 펜이  나오는지 슥슥 계속 휘갈겼다가. 색연필 색상을 확인하거나. 옆에 갑자기 해야 할 일을, 일정을 적거나. 무엇이든 기록이 된다.


일기나 다이어리를 쓴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이라 부르기도 모호하다.  그대로 의식의 흐름 따라 낙서가 곳곳에 뜬금없이 채워진다. 학생이었을 때가 교과서에 필기보다 낙서가 많다는 수식어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정말 쉬지 않고 뭔가 끄적거리는 사람이다. 전화를 받거나 대화를 하거나 회의할   앞의 종이는 정말  의식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저 어쩌면 나를 채우는 한 권이 된다.


다만 개인적으로 제일 지키고 있는 팁이자 법칙,  모든 기록들에 날짜들은   귀퉁이에 적어두는 것이 훗날을 위해 좋다는 것.





* 부록 1 ㅡ 몇 가지 기록 영상 모음

https://www.instagram.com/p/CFDW_ugJBgP/


https://www.instagram.com/p/CAQDI0zpuIz/






04

여행지에서 사모은 노트들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돌아다니면서 동네 문방구들을 들락날락거린다. 예쁘장한 기념품 가게나 편집샵보다 동네 숨은 가게들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노트를  여행지에서  채워가는 식으로 여행하는데, 어떤 페이지는 가계부가 되기도 하고 여행 루트가 적히기도 하고. 티켓을 붙이기도 하고. 영수증도. 이동 중에 시답잖은 낙서들이 가득해지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제일 의미 있는 한 권이 된다.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기록이 완성된다. 개인적으로 여행할  추천하는 방법이다. 더불어 연필이나  한 자루도 사모으는 재미도 있다.









05

재미있는 레이아웃



일반적으로 무지 노트를 사용하지만, 이렇게 위의 사진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실험적인 레이아웃이다 싶으면 사모으기도 한다. 되게 도전적이게 만드는 그런 노트들을 종종 만나면  위에 그림 그리고 기록할 맛이 난다. 쓰다 보면  손이 안가게 되면 스크랩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레이아웃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시작이 된다. 주로 라인, 그리드, 도트 혹은 무선으로 시작하여, 이런 여러 분할된 칸이나 레이아웃에 활용도를 스스로 부여하는 방법도 재미있을 것이다.







06

연필을 사용하는 , 자신에게 맞는 재료 찾기



주변에 보면 샤프나 연필을 쓰는 사람을 보는 일이 드물어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내게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쓰던 게 연필이고 익숙한 게 연필이라. 각자의 취향이자 스타일이지만. 아날로그를 좋아해서 연필에 거뭇하게 묻은 손날을 확인하고 닦아가는 행위나, 칼이나 연필깎이로 깎는 일련의 과정들이 나는  자체만으로도 좋다.


여행지에서 엽서나 자석 모으듯이 나는 연필을 모은다. 부피도 작고, 그리 비싸지도 않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디자인이나 느낌이면 사두면 값진 책상 위의 보물이 된다. 나는 디테일한 표현에는 약하고, 질감의 차이로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연필은 그런 러프한 느낌을 살릴  있는 최고의 도구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된다. 펜이나 잉크, 캘리그래피, 마카 . 일반적으로 펜에서도 젤 펜이나 유성 잉크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에 따라 그림체나 필체, 표현이 변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07

타임랩스와 스캔


기록을 저장하는 방법. 영상으로 짤막하게 찍어두거나 컴퓨터 상에 스캔을 해두는 것. 한 권을 비로소 다 채우고 타임랩스를 찍으면서 스르륵 돌아보면, 그 순간들로 빠져든다. 또는 스캐너로 스캔해두고, 취향과 필요에 따라 수정하고 콜라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아두거나, 변형의 여지가 있으니 또 재미난 작업이 된다.



* 부록 2 ㅡ 몇 가지 기록 영상 모음

https://www.instagram.com/p/CIf5J1eJa9M/


https://www.instagram.com/p/CHDMvqZprrC/







08

마름가는대로



그림을 그린다할 때 보통은 밑그림을 평소에는 따로 그리지 않는다. '대충' '슥슥' 특기인 나는 크게 정성 들여 꼼꼼히 하는 타입이 못 되는 듯하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편이에요. 간혹  마음을 먹고 중요하게 그릴 때면 그랬던 적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냥 말 그대로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쉽고,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고 아니다 싶은  아주 박박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래야 깔끔하게 미련도 없고.


가끔 공들여야 하는 작업이 되거나, 그리는 것이 '일'이 되는 경우에 불안함에 밑그림을 그리거나 미리 다른 곳에 그림을 몇 번 그려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덜덜 떨리는 두려움은 늘 있는 것 같다.


https://www.instagram.com/p/B60WvM_J-9F/





09

실전편 ㅡ 몇 가지 기록의 방법을 제안합니다.





실전 01 좋아하는 것들 채워가기


가볍게 시작해보자. 내 가방은 이렇게 생겼지. 가방에 이런 게 들어있는데. 내 눈앞에 있는 것들. 책상 위에 보이는 귀여운 것들. 오늘 산 것들. 장봐 온 과일과 채소들. 꽃병에 꽂힌 꽃이나 그런 오브제들. 모든 게 대상이 된다. 관찰이 곧 시작이다.




실전 02 나의 공간을 기록하는 

 공간이 점점 소중해진다. 어느새 자취 10년 차쯤에 접어든다. 초중고는 5분 거리, 대학교 1시간 통학으로 시작해서, 기숙사에서 1.  이후에는 세 명이서 같이 살기도 하고 이제는 혼자서 열심히 살고. 월세에서 전세로도 이사하고. 집의 변화나 내가 살았던 공간, 동네에 대한 기억,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인생에서 많기 때문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 같다. 또한 여행다니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역으로  많이 깨달았.  공간이라는 . 내가 지내온 공간을 기록해두는 .  의미도 남다르다.



실전 03 집에서 좋아하는 것들

주위를 둘러보면, 책상 위의 물건, 필기구, 오브제들, 스탠드, 화병, 의자, 선반 위의 시계나 향수, 냉장고에 붙어있는 것들, 좋아하는 피규어나 장식 소품들. , 과자, 거울, 가구  이런 것들도 대상이 된다.


무심결에 눈에 들어와 기록이나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것들. 돌아보면 꽤나 집안 곳곳에 많다는 것을   있다.


침대 위에 놓인 것들




실전 04 좋아하는 노래 담아두기

노래 가사에 꽂히면 그 가사를 적어두는 일이 아주 잦다. 앨범 커버 디자인이나, 가사에서 느끼는 이미지나, 이런저런 가사에서 노래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기록들을 많이 적어둔다.


PDLIF 앨범 커버




실전 05 변화의 기억, 그리고 기록

큰 마음먹고 올해 태어나서 제일 짧게 댕강 자르러 갔던 날. 워낙 즉흥적이고, 머리를 열심히 매번 괴롭히는 편이라. 이 변화가 스스로도 생소하고 낯설어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머리가 달라졌다거나, 다이어트나 운동으로 일어난 변화라거나, 집 구조의 변화, 혹은 키우는 반려 식물이나 동물의 변화 등 기록해두면 그 드라마틱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머리 자르기 전의 사진과 자르고 나서 찍은 모습을




실전 06 여행하며 그리기

추운 날의 도쿄. 길에서  앞에 걷는  여자가 비슷한 스타일의 귀여운 옷차림으로 나란히 걷는  모습이 귀여워서 열심히 빠르고 간략하게 그렸다. 여행지에서 그리는 그림이나 기록들은  영원해지는 듯하다.


이제는 내가 세계여행을 다녀왔을까 싶을 정도로 멀어져 가는 순간들이 그때 채웠던 스케치북이나 노트를 펼치면, 다시금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지금  시국은 이런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 간절히 더욱 꿈꾸게 만든다. 다시금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10

무리 요약편 



1. * 작고 얇은 중철의 노트를 준비합니다.


2. 이는 가볍게 휴대하기 좋고, 둘째는 금방 한 권이  채워져 성취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3. 차근히 습관을 길러 물리적인 노트의 두께를 키워나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4. 기록은 작게는 낙서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합니다. 전화하면서 끄적거린다거나, 오늘 할 일을 혹은 해낸 일을 한번 써 내려가 보거나. 무작정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5. * 그날 있었던 일을 일일이  일기 쓴다고 생각하면 버겁기도 합니다. 대신 하나의 사건이나 문장, 하나의 감정만을 써보세요. 한두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6. 글이 어렵다면 그림으로 이모지나 이모티콘으로 요약하거나 상징 하나만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려야 한다는 부담 자체를 버리면 됩니다. 자신이 알아볼  있게 표현이 되는 것이지요.


7. 이왕이면 그림과 글을 함께 기록하는 겁니다. 그림과 글의 경계가 내겐 조금 모호하지만, 그렇기에 둘 다 남기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나 생각과 감정을 편에 적어둔다거나. 글로는 아쉬운 표현을 간략하게 남겨보거나 말이지요. 글과 그림은 서로의 보완점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8. 요즘은 사진을 많이 찍으니 사진첩을 열어 그려보고 싶은 것들을 따라 그려보는 겁니다. 장면이나 물건이든 뭐든 좋습니다.


9.  권이 채워졌을  넘겨보면 주제가 있는 책일 필요가 없습니다.  한 권 그대로 온전히 나를 기록해둔 셈이 되니까요.


10. 자신이 남기는 기록은 모이고 쌓여  자신이 됩니다.















 


모이고 쌓여  자신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