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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여백 Jan 29. 2022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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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와 원인이 제일 가까이에 있고 해답은 가까이에 없다.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도망치는 것이 곧 발악이자 와해. 부정과 반항을 앞에 내세웠고 침묵과 체념으로 일관한 시간은 모두를 끝으로 내몰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수동적인 형태.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며 하루의 끝에 눈을 감는 것. 새벽이 밝아오면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졌다. 갖가지 껴안고 있던 의미들을 잃어버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나도 모두에게도 배려하지 않는 것. 건강하지 못한 그리고 넉넉하지 않은 마음의 부피가 여실히 드러난다. 비좁다.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는 항상 부끄럽게 나의 그림자가 된다. 미성숙하고 부실한 파편이 여과 없이 흘러내린다. 사족이 늘어나는 것은 미련의 형태이자 합리화의 도구였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라고 물어왔다. 그러게 나는 무엇을 기다리나. 목적어가 비었다. 기대와 희망일까 절망이었을까. 혼란스러운 물음표가 떠다닌다. 사랑이었을까. 거울 앞에 서면 표정과 감정을 잃은 곪아버린 얼굴을 하고서 서있다. 어느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을 하고서 있는 나를 마주한다. 그 안에 절망이 있다.


끝끝내 숨겨야 하는 것들은 기어이 닫아둔 채로 애써 버틴다.  사이에 묻어놓은 비밀. 마만큼의 속도로 다가가고 있는 건지 멀어지고 있는 건지 가끔 어지럽다. 거리가 생겼다. 부작용을 알면서도 기꺼이. 반증이라고 말했다. 결국 깨닫는 것은 사랑과 애정. 미련하고도 애석한 마음을 악을 써가며 겨우 버티고 있다. 여러 변명으로 뒤덮어가며 숨겨야 하는 것의 무게가 버겁고 무겁다. 맺지 못한 것들은 어떤 결말이 될까. 선택하려는 결말은 분명 희망이다.


부질없는 것들에 아등바등 버티는 꼴이라니 건강하지도 못하다. 분명 책임이 크다. 말을 하는 법도 질문을 하는 법도 실없이 웃는 법도 심지어 불과 얼마 전의 기억들까지도 금세 다 잊는다. 많은 것을 잃었고 잊어버렸다. 참 이상해졌다. 배려와 다정은 언제나 낯설고도 닿기에 멀다.


얼마 전 누군가의 무해하고도 환한 웃음을 보고서. 그 안에서 멍하니 둘러싸여 그들을 바라보며 의미를 되찾는다. 존재하는 의미이자 이유. 힘과 위로. 바보같이 흘려버리고 늘 놓친 것이 많지만 그만큼 얻었고 손에 또 마음에 쥐고 있는 것이 분명 많다. 잘 돌보아야 한다.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천천히 부지런히 내딛자. 올해는 그 누구가 아니라 온전한 나의 안녕을 바란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 나의 안녕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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