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피뢰침>에는 벼락을 맞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과거 벼락을 맞았던 경험에 끌려 모임에 가입하지만, 벼락을 다시 맞고 싶은 것도 아니라며 모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주인공은 끊이지 않는 의구심에 벼락을 찾으러 떠나는 탐뢰 여행에 동참하고, 끝내 벼락을 다시 맞고 쓰러진 회원 옆에서 평온함이란 감정을 맞닥트리게 된다. 소설은 당시 여행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젖어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주인공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기에 처음에는 주인공이 왜 그런 평온함을 느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취미를 떠올리며 이 감정이 나에게도 낯설지 않음을 깨닫고 나서부터 주인공의 감정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취미는 벼락 맞기와 닮아 있다. 컴퓨터 앞 타자를 치는 모습은 외적으로 고상하고 차분해 보여 단번에 닮은 점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한 번의 강렬한 고통은 아닐지라도, 글쓰기는 벼락이 몸을 관통하듯 평범한 일상 뒤로 무뎌진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는다. 소재를 찾기 위해 관찰의 채반 아래 기억을 되짚으며 삶에 대한 다시 쓰기를 진행한다. 무의식으로부터 쏟아낸 진심은 단순히 내뱉는 대로 글이 되지 않는다. 적확한 단어를 찾고 문장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 독자가 인내심 있게 끝 문장까지 읽게끔 달랠 수 있는 매력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마치 한약을 달이듯 긴 시간을 두고 세심하게 살피며 속을 태우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와 벼락 맞기는 그 동기조차 불분명한 것도 비슷하다. 글쓰기 모임에서 쓰는 글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이 아니다. 사적인 글을 적기도 하고 좋은 글을 좇아 몇 번을 뒤엎어 쓰기도 한다. 서로의 글에 합평을 할 때도 깐깐한 시선이 적용된다. 좋은 글에는 예찬하지만 아쉬운 글은 침묵하거나 글쓴이가 원하는 경우 거센 비판까지 나올 수 있다. 자기만족의 형태로 쓰는 글이라지만 재는 게 많다. 등단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님에도 작법서까지 읽는 열정은 덤이다. 돈도 벌리지 않고 힘들기만 한 글쓰기인데 이들은 왜 이리 열성적일까. 단순한 자기만족을 넘어 이들이 계속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순간은 존재할 것이다. 내면의 공허를 마주하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갈망이 그 시발점이다. 삶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흔적으로 기록되지만 내가 직접 만든 흔적은 나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흔적은 나의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증명한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은 벼락을 맞지는 않았지만 벼락을 맞은 이 옆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이는 살아있음을 치열하게 투영한 글 한 편과 다르지 않다. 소설 <피뢰침> 속 주인공의 감정은 스스로 강인한 생존을 증명했다는 희열의 ‘흔적’ 그 자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