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블리 Jun 26. 2023

이혼은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겁니다

내가 이혼할 팔자라고?(불안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내 n년차 직장인이다. 지극히 아주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다가 2020년 33살 친오빠의 결혼소식을 듣고 옆구리가 시리다가 못해 아플 지경이 오니 나 좋다는 남자만 있다면 좋다고 만날 것만 같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허구한 날 누구 집 딸은 부잣집에 시집갔네, 시부모와 같이 골프를 친다네 하며 나를 다그쳤다. 사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사이가 안 좋았는데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부모님의 다툼이 잦다. 언젠가부터 그 모습을 이 나이 되도록 보는 나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캥거루족같이 방한칸 마련해 나가는 것도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했기에 싸우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땐 상처가 더 깊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우울한 감정과 언젠가부터 결혼을 못했다는 나 혼자만의 낙인이 생겨 주말에 집에만 있었는데, 부모님은  ‘너는 주말인데 왜 그러고 있냐’는 핀잔을 주며 더 숨을 막히게 했다. 한 번은 문 밑으로 오만 원짜리 지폐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답답한 나머지 이 돈 갖고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라며 용돈을 주시는 거다.


그러던 어느 쓸쓸한 11월 가을,  퇴근 후 길거리 사주노점상을 지나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 무심코 들어간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생년월일을 말했다. 내사주를 보던 역술가는  ‘아이고 사주가 남자팔자여~ 결혼을 해도 이혼할 팔지인디.. 그냥 혼자 살지 그래??’ 하며 천척병력 같은 소리를 하였다. 안 그래도 외롭고 불안해 죽겠는데 혼자 살아야 한다니 나는 이런 내사주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임이든 소개팅이든 가리지 않고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지금의 전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알게 된 지 3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고 바로 임신까지 속전속결로 하게 되었다. 단 세줄만에 설명이 가능하니 내가 얼마나 철이 없이 결정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어디에 홀린 듯 결혼을 밀어붙이니 부모님 친구들은 다들 얼이 빠진 상태로 나의 속전속결 선택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놈의 미친 사랑이 뭔지 그것에 취해 앞뒤 안가리고 돈 한 푼 없는 전남편과 프러포즈도 생략하며 정신승리모드에 빠지기 시작했다. 스드메, 신혼여행 그리고 각종 신혼살림과 신혼집을 내 돈과 부모님 돈 대출로 감당하며 천년의 사랑을 이루기로 한 것이다.


지나고 보니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내 눈앞에 나타난 그를 평생의 반려자로 마치 운명이라고 여기며 밀어붙였던 나를 원망한다. 그도 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나를 원망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유치하지만 더 많이 사랑한 죄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쩌면 정말 좋아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그냥 미친 X 같다.

작가의 이전글 산타를 믿나요?? 도대체 언제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