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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마시러 가자

06.Friday3:13_채채

“술이나 마시러 가자~”

 

 거의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어쩌면 이보다 완벽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문장이다.


#1 행복

 일이 끝나갈 때쯤 누군가 소리친 한마디가 이렇게 달콤할 수 없다. 분명 이번 주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어!라고 아침부터 다짐했지만 어느새 마치 이 술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일한 사람처럼 흠뻑 빠져들곤 한다. 이미 아는 맛인데도 왜 항상 새로운지.. 일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첫 한입의 유혹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래 이맛이지!! 오늘도 참 고생했고 잘살았다! 우리!' 서로를 다독여주는 그 순간에 우린 이야기한다. “행복 별거 없다 야~”


#2 위로

 카페에서 만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들여다보면 누군가에 의한, 나 스스로로 인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스트레스에 관한 것들이다.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보통은 거의 비슷한 맥락을 가진 스토리의 끝에 이렇게 말한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이때 부딪치는 술잔에 우리는 그 어떤 말보다 진한 위로를 담는다. '다 그런 거지~! 그럴 수 있지! 잘될 거야.’


#3 용기

 어렸을 때, 부모님과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제대로 된 주도를 배우려면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취한 부모님의 모습이 싫었던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 딸의 모습으로 위장을 한 채 10년을 살았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술을 드실 수밖에 없었는지 저절로 이해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이해를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님에도)  그래서 이제야 부모님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부담이 아닌 인생의 배움터가 되고 조금 더 부모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사실은 엄마가 딸과 술 마시는 걸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전혀 몰랐기에 술자리의 끝에 엄마의 행복한 웃음을 보면 왈칵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그동안은 부모님과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지만 이번 주말,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엄마 비 온다는데 막걸리 한 잔 할까~?”


[이나] :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 또는 최소한 허용되어야 할 선택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때로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마치 그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선택인 것처럼 표현하는 데 쓰기도 한다.


 결코 술을 강요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술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되는 그때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술에 완전히 취해 버리기 전, 적당한 취기에 적당한 용기가 생겨 제법 진지해지는 순간. 그렇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하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흘러버리는 그 순간.


 어쩌면 술 한잔에 나누는 행복 위로 감사 따위의 모든 감정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해도 좋을 것 같다. 서른 살의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밤새 술잔을 기울일 만큼 어리석지 않고 그만큼 성장했다.(아, 불편한 사람들과 하는 회식자리 등의 어쩔 수 없는 술자리는 빼고) 물론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친구와 보리차를 마시며 밤새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어차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저 술이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또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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