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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비한다는 것

07.Friday3:13_썸머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비’하는 것을 피해 갈 수 없다. 가장 필수 불가결한 돈을 소비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에너지나 감정 같은 것도 매일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글 주제를 소비로 정했을 때 바로 머릿속을 스쳐 간 건 돈을 소비하는 생활이다. 나는 물욕이 많은 자칭 소비 요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을 글로 어떻게 적어나갈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돈이 아닌 에너지 소비와 감정소비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평소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나는 에너지가 작은 사람이고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 때는 예민한 기질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단체생활을 통해 내 예민함을 감추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간혹 예민함이 불쑥 튀어나와 자학적으로 변할 때가 있다. 어떤 포인트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휩쓸어서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그 감정에 허우적거리며 끝없이 추락하는 자아를 느낄 때면 나 자신이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감정소비를 크게 한다고 느낀다.

한때 부정적인 기운이 클 때는 활력이 넘치고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을 동경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 다수가 좋아하는 장점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했고 닮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를 한 꺼풀 덧대서 타인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 메이킹을 했고 그것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건 현재 진행 중이지만 강박 때문이라기보다는 모두가 다 같이 즐겁게 잘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평생을 스스로를 영업하며 살아야 하므로.


현재,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건 타인을 위해 내 온 감정을 쏟고 에너지를 다 쏟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너무 크게 소비하는 행동이었고 그럴수록 공허함도 비례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긍정적으로 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내가 가진 것들로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소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지난날들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예전처럼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 못 드는 밤을 보내지 않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 밤에 물꼬가 터지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과 더불어 위험한 건 제일 가깝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예민함을 당연하게 표출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할 때나 누구의 생각이 맞는지 잘잘못을 따지다가 감정이 상했을 때인데 그때는 밤뿐만이 아니라 다음 날 오전에도 내 안을 부유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결국 하루를 망치게 만든다.  

분명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의 안테나가 한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내 안의 중요한 것이 그 안테나를 통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고 해결되기 전까지는 계속 신경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며 결국 자신을 지치게 할 것을 잘 알지만 그땐 스스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왜 나쁜 건 빠르게 습득하고 편하고 좋은 건 습득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꾸준히 지키는 것도 힘들까?

마음의 중점을 긍정적으로 뒀다고 해서 쉽게 기질이 바뀌진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하는 요즘이다.

에너지나 감정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소유욕을 채웠다는 충만함으로 인한 좋은 기분은 느끼지 못한다. 그럼 보이지 않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슬기롭게 나를 소비하는 생활은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물음에 대한 많은 의견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들이 시중에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내 안까지 닿은 답을 못 찾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까지는 그 답을 완전한 타인에게서 찾고 싶은 마음이 없다. 더 부딪히고 더 넘어져도 일어날 힘은 아직 있으므로 일단은 온몸으로 더 온전히 느끼며 찾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주변엔 나를 변화시켜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감정과 달리 나의 소유욕을 채워주는 나의 사람들이 있기에 충만함을 느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나고 더 채워질 충만함이라고 믿고 그 안에 나를 던져 그 사람들을 위해 나를 소비해보고자 한다.

아직 삐그덕거리는 어른 아이지만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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