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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땅콩 Jul 14. 2022

8. 우울이 올 때, 그리고 갈 때

우울은 과거까지 물들인다

“저는 늘 긍정적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하던 말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고, 밝은 것이 나의 장점이었다. 나는 긍정적인 아이 었다.


    그러다가 우울이 내게 찾아왔고, 나는 그 기원을 열심히 찾았었다. 언제 처음 우울이 시작되었는지, 마지막으로 행복하던 시기는 언제였는지 생각해봤다. 초등학생 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못 될 것 같아서 죽고 싶었다. 중학생 때, 영어 시험을 망쳐 특목고에 못 갈 것 같아서 죽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보기 싫어서 죽고 싶었다.

    

    이상했다. 분명 난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우울했던 일만 잔뜩 생각났다. 나는 원래부터 부정적이고 우울한 아이였나? 마지막으로 언제 행복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행복했던 일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좋았던 일 자체는 생각이 나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울이 무서운 것은 지금 당장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 아니다. 좋았던 기억마저 빼앗아 가서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참 무섭고 못됐다. 나의 현재와 미래뿐 아니라 과거마저 검게 칠해버리는 것이 우울증이다. 현재 느끼는 감정, 미래를 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는 건 그렇다 쳐도 이미 지나간 과거까지 물들일 줄은 몰랐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과거를 떠올리면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당시 일어난 힘든 일들만 생각났다. 힘들 때 듣던 노래, 그때 찍은 사진들, 그때 자주 가던 곳, 그날의 기억, 그때의 나와 그들을 마주하는 날에는 참 힘들었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힘들었던 날들이 떠오르며 더 괴롭고, 오늘은 또 다른 힘들었던 날이 되어 내일의 나를 괴롭히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우울증이 완치된다고 해도 내 잃어버린 20대 초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펐다. 다시 좋아질 거란 희망이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었던 시기를 이미 통째로 빼앗겼다는 생각을 했다. 박탈감이 들었고, 억울했으며, 좌절했다.

    

    하지만 우울이 내게서 서서히 떠나가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과거마저 서서히 긍정적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우울증이 심하던 시기에는 좋았던 시기를 떠올려봐도 부정적 일들만  생각났는데 우울증이 가신 후에는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릴 때도 좋았던 일 몇 개가 생각났다.

    몰랐는데, 우울증이 떠나갈 때는 다행히 좋았던 기억도 돌려주고 간다. 그러니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좌절하고 있는 우울증 환자들이 조금의 희망은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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