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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선 Oct 15. 2023

조선 궁궐의 집사 이야기

숙종이 사랑했던 고양이 금덕이와 금손이


여러분도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우리는 언제부터 고양이를 키웠나?

전형적인 농경민족인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고양이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는 반려동물보다는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는 용도로 고양이를 기르는 경우가 많았죠. 고려시대의 대문호, 이규보는 쥐를 잡기 위해 얻어온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묘사한 시를 통해 고양이를 길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을 통해 고양이는 10세기 이전 중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궁중에서도 고양이를 키웠는가?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키웠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의 숙종이 바로 조선시대 왕들 가운데 최고의 애묘가 즉 왕가의 집사로 정평이 자자했습니다.


숙종이 기르던 금덕(金德)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숙종이 아버지 현종의 묘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해 궁궐로 데려온 길냥이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퍼스트 캣이 탄생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예뻐했는지 이름도 금덕(金德)이라고 지었죠. 이 금처럼 값진 덕을 지닌 고양이라는 뜻이고 숙종이 직접 지어졌다고 하죠. 그리고 데려온 지 얼마 안 돼서 금덕이는 새끼 한 마리를 낳게 되는데요,


숙종은 이 새끼 고양이에게 직접 고기를 먹여주고,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 많은 시간을 고양이와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들조차 고양이를 질투했을 정도였죠. 환심을 끌기 위해 왕실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 금덕이의 새끼 이름은 무려 금손(金孫)이라고 불렸죠.


고양이를 얼마나 이뻐했나요?

정말 이뻐했죠. 일단 금덕이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금손이를 남겨두고 일찍 죽습니다. 그러자 그 죽음을 너무 슬퍼한 숙종이 시를 씁니다. 매사묘(埋死描·죽은 고양이를 묻다)라는 제목인데, '고양이가 비록 사람에게 도움은 없으나 짐승일지라도 주인을 따를 줄 안다'라고 썼지요.


그리고 금덕이의 새끼인 금손이는 아예 장례까지 치러줍니다.


궁중에서 고양이 장례까지 치러줬다고요?

네 바로 금손이가 의리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인데요. 숙종은 금덕의 새끼인 금손이를 더욱 애지중지했어요. 금손이는 궁 안에서 언제나 숙종 곁을 맴돌며 왕과 일상을 공유하는 고양이였습니다. 추운 밤이면 용상 곁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정도로 숙종 역시 고양이를 끔찍이 아꼈다고 하죠.


그런데 어느 날, 숙종에게 올라갈 고기를 금손이가 훔쳐 먹었다는 죄로 쫓겨났다고 해요. 이후 숙종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금손이는 어찌 알았는지 궁궐 방향을 보며 밥도 먹지 않고 울었다고 해요. 이를 가엾게 여긴 대비가 금손이를 다시 궁궐로 데리고 왔는데 들어가자마자 경희궁 자정전으로 뛰어갑니다. 이 경희궁 자정전은 바로 숙종의 빈소였던 것이죠.


금손이는 수십 일 동안 숙종의 시신이 있는 건물 근처를 돌며 물 뿐만 아니라 궁녀들이 갖다 준 물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늘만 보고 애처로이 울다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주인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감동한 대비는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는 스스로 굶어 죽은 '금손'에게 비단옷을 지어 입히고 숙종의 묘인 명릉 옆에 묻으라고 명했습니다.


공주님도 고양이를 키웠나?

조선왕실에도 이름난 고양이 애묘가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바로 숙명공주인데요 재미있는 점은(1640~1699). 숙명공주과 숙종 공교롭게도 이 두 고양이 집사들은 이름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실제 고모와 조카 사이였습니다. 숙명공주는 현종(1641~1674)의 누님이고 숙종이 바로 현종의 아들입니다. 대를 이은 황실의 동물사랑이 계속 이어졌었던 건데요,


숙명공주는 효종(1619~1659)과 인선왕후(1618~1674)의 셋째 딸로 태어나 1649년 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공주로 진봉 되었죠. 효종의 딸 사랑은 지극했다고 합니다. 숙명공주를 위해 인왕산 아래에 짓고 있는 집이 지나치게 크고 사치스러우니 절검(節儉)을 실천하라는 지적을 사헌부 신하들로로부터 받을 정도였는데요,


숙명공주가 애묘가였다는 사실은 효종이 보낸 한 장 짜리 한글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국립청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편지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공주가 혼인한 1652년에서 효종이 승하한 1659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후기 벽상백 화백이 그린 고양이 그림인 국정추묘
편지의 내용은?

아버지 효종이 어찌하여 고양이를 품고 있느냐며 사랑하는 딸의 철없는 행동을 꾸짖는 내용의 편지인데요. 재밌는 것은 이 편지가 공주가 혼인한 직후에 쓰였다는 것입니다.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공주의 취미생활을 두고 궁궐의 친정아버지까지 걱정하여 편지를 보낼 정도였던 건데요, 숙명공주의 지나친 고양이 사랑에 대해 시댁 안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와서 이를 듣고 효종이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시집을 간 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효종이 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너는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는 하거니와 어찌 고양이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


사대부가에 시집와서 고양이 따위나 품에 안고 노는 며느리의 모습이 집안 어른들 눈에 예뻐 보일 리 없었을 것이었겠죠?. 그렇다 하여 시어머니가 지엄한 신분인 공주를 불러 면전에서 나무랄 수도 없었을 텐데요, 이에 소식을 접한 효종이 직접 나서서 딸에게 짧지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죠.


조선시대 고양이의 흔적이 또 있다면?

바로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극사실주의 반려동물 화가 변상벽 화백님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어떤 분?

고양이와 닭을 사랑한 조선의 화가 변상벽 화백인데요, 영조 때 활약한 도화서 출신 화원으로 현감의 벼슬에까지 오르신 분이죠. 반려동물 그림으로 당대 최고의 위치에 오른 분이죠.


이야기 나무 아래에 앉아 고개를 뒤로 돌려 위를 쳐다보는 검은 고양이와 나무를 오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줄무늬 고양이의 시선이 맞닿으며 긴장감과 생동감을 전하는 그림 [묘작도]는 한 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이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입니다.


묘작도


어떤 고양이 그림?

아마 제목을 잘 모르셔도 묘작도 그림을 찾아보시면 청취자분들도 아~ 이 그림~ 하실 거예요. 국보 묘작도를 그린 변상벽은 초상화를 잘 그려 국가대표의 국수(國手)라고 불렸고, 고양이와 닭을 특히 잘 그려 ‘변괴양’, ‘변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변상벽의 고양이 그림을 본 개는 컹컹 짖고, 쥐들은 깊이 숨어 굴에서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극사실주의의 동물 그림을 영모화라고 하는데요 ‘영’은 새의 날개, ‘모’는 짐승의 털을 뜻합니다. 곧 영모화란 새나 짐승의 깃이나 털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꼼꼼하게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데요 바로 변상백 화백이 영모화의 대가였던 거죠. 동물까지도 놀라게 만드는 영모화의 대가, 변상벽은 인물 초상화는 물론 고양이 그림에 뛰어나 이름을 날렸는데요, 당시 서울에는 변상벽의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려는 사람이 매일 백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변상벽은 고양이를 이처럼 완벽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요?


극사실주의 변상벽 화백의 작품. 왼쪽부터 견도, 자웅계장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처음에 산수화를 배운 변상벽은 자신이 다른 화가보다 더 잘 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사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축을 매일 관찰하고, 그들의 생리를 파악하고, 모습을 기억하여 마음에 담은 후 그림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내었습니다. 치밀한 관찰을 통해 대상의 심리와 성질, 행동 양식을 완전하게 파악해 내고자 한 노력이 있었기에, 변상벽은 감히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속되기가 어려웠을 듯합니다.


<관련 방송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ilK1iiLb1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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