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상처를 품고 있나요?"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 조우관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직관적입니다. 도대체 예민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은 왜 예민한 걸까요? 예민하다는 것과 무던하다는 것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는 그런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자는 말합니다. 이 책은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쓰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행복하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1. 나는 예민하지만 너는 둔감해
저자는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외출복을 입은 채 남의 집 침대에 눕는 출연자들을 보면 기분이 더러워지곤 했습니다. 강박 장애 때문에 일회용 티슈 하나를 사더라도 씻어서 가방에 넣어야만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던 누군가가 이상하다는 듯 그걸 왜 씻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내 물건을 내가 씻는데도 그걸 설명해줘야 하는 건가, 싶어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마 살면서 남들은 안 하는 행동을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강박적으로 손을 씻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되풀이해서 설명하다 지쳤을 것입니다. 당시 상황은 어땠고 이런 심리 상태가 원인이 되어 하필 그런 습관이 붙었을 거라고 설명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화상 자국, 절단된 손가락, 불편하게 말린 팔다리에 대해서는 함부로 쳐다보지 않으면서 타인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눈살을 찌푸립니다.
2. 내가 예민한 이유를 찾는다면
작가가 되고 난 뒤 그녀는 작가가 글보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성숙한 글을 쓴 작가가 철없는 행동을 하면 독자들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했습니다.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에 대한 격차를 줄이려고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한 적도 많았습니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요? 만약 있다면 그 모습을 누가 좋아해 줄까요?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내가 정말로 일치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늘 한결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받고 싶은 사람처럼. 아니 늘 늘 한결같은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이처럼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내가 불일치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3. 내게 무던해져야 한다는 세상에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하나를 증명하려고 우리는 얼마나 애를 썼나요. 나를 못나 보이게 하는 사연을 잊고, 나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을 갖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발버둥 쳐왔습니다.
하나의 성취가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후광 효과를 벗겨낸 후 무엇이 남는지 본 후에야 진짜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를 이룬 것이지 인생을 이룬 게 아닙니다.
하나를 가진 것이지, 전부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를 못 가진 것이지 열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는 성공의 기준을 정해 놓았습니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 돈, 명예, 미래, 이것들의 가치는 영원하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4. 내가 나로 살지, 누가 나로 살까
친한 동생이 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동생은 미리 계획을 짜며 행복해하고 그걸 실행에 옮겨야 만족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뭔가를 결정하는 스타일이었고 여행지까지 와서 시간과 계획에 쫓겨 허덕이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상대의 여행 스타일을 알지 못한 채 서로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여행지로 떠난 둘은 여행하는 내내 싸웠습니다.
돌아오는 길 동생은 두 번 다시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음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던가요
취향과 사고방식이 맞지 않는데도 이루어지는 우정이 처음부터 가능하기는 했던 걸까요?
잘 맞을 거라 믿었던 마음이 결국 맞지 않는 퍼즐임을 확인했던 순간을 경험해 보셨나요? 길고도 장황한 역사에서 깨진 우정과 짧은 만남은 얼마나 많이 반복되었을까요?
물론 둘의 차이점을 여행지에서만 확인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에 성실했던 동생과 자유분방하고 느긋한 성격의 친구는 일상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서로 동경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서로의 다른 점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지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기다리다 지쳤고 한 사람은 상대의 기다림 때문에 지쳤습니다.
한 사람의 일부만을 보고 어울리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전부를 껴안고 함께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절대적인 간절함이 있을 때조차도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관계가 깨질까 봐 서로에게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태에서는 스트레스만 쌓여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게 되고 맙니다.
5. 나의 영역, 너의 영역, 우리의 경계
사람과의 관계는 합의와 조율을 통해 평화를 얻습니다.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사람은 상대방이 정한 선을 넘을 확률이 높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서로의 속도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교성이란 건 상대방이 싫어하는 부분을 건들지 않는 민감함, 상대의 의사를 물어보는 배려, 보폭과 속도를 맞추는 동행의 능력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거리를 존중해주는 것이 존재감을 확인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타인을 존중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각자의 능력과 이상이 다르기에 상대방이 나와 다른 태도를 취할 때마다 우리는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운해집니다.
사람과 마찰이 잦은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면 누군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대입합니다. 한 마디로 오해가 많습니다. 말에 담긴 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자기식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저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기 때문이고 저 행동을 하는 이유는 저렇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는 식이죠.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그게 진실인지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습니다. 혼자서 갖은 상상과 추측을 하면서 상대의 진심에 대한 결론을 내고 사실을 왜곡하고 맙니다.
6. 나의 경계 밖으로 한 발 나아가는 용기
우리의 기억은 과연 얼마나 안전할까요? 우리는 과거는 진실이라고 믿으며 우리가 기억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내 기억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입양된 친구가 있습니다.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부모와 무척 잘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그는 불행해졌습니다. 급기야 가출을 하더니 그때 아버지가 왜 자신을 그런 식으로 대했는지 알겠다는 둥 입양된 자신에게 나쁘게 대했던 부모의 태도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지금 불행한 감정에 적합한 기억을 억지로 꺼내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기억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행복했던 아이가 한순간에 불행한 아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기억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후 그를 전혀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기억하는 것처럼, 감정이 얽혀 있는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얼마든지 조작됩니다. 현시점의 자기 상황에 따라 출력되는 기억도 달라집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때 그 기억일까요? 아니면 과거를 되새기며 떠올리는 현재의 감정일까요?
7.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법
성취에 중독되어 도전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잘하고 있는데도 한 번의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나 하나 만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은 노력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추게 될까 봐 더 빨리 뛰려고 합니다. 그러다 더 이상 노력할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 어떤 사람은 제 한 몸 붙들고 낙하하고 맙니다.
저자는 이 시대에 경쟁의 고리를 끝내 달라고 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술에서조차 줄을 세우는 문화나 각종 강연 및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 아무리 활기찬 삶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곤두박질치는 순간이 옵니다. 모든 원인과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노력 드립', '의지력 드립'에 힘을 보태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희망도 좌절도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변도, 우리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가끔은 멈추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화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투가 다소 공격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그녀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왔길래 이토록 예민하게 세상을 경계하는 걸까요?
저자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하고 나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그녀는 전쟁고아와 같은 애정결핍을 겪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부유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해 죽기로 작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타인을 위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아성찰과 노력을 했을지 상상해봅니다.
잠이 오지 않던 날들, 터져 흐르는 감정을 재우기 위해 안간힘 썼던 마음들. 경계에 선 채 어디로 기울지 망설이던 순간들을 겪으며 저자는 태어나기 이전으로, 내가 나이기 이전으로 돌아가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한 번 부서져야 했습니다.
삶에는 언제나 정반대의 것들이 동시에 있습니다. 상처와 회복,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침묵과 발설, 내려다보는 것과 올려다보는 것. 삶이 무엇을 말하든 우리 각자의 마음에는 자신만의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으며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살아 있기 위해, 살고 싶어 지기 위해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이해받고자 세상을 뒤적거립니다.
그런 당신의 세계가 오늘도 온기 있는 곳이기를. 그렇게 나와, 상처와, 인간의 불완전함과, 화해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예스 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