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인해 생긴 사고,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까지
0. 너를 마주한다는 것
내가 너를 글로 쓸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만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감정을 담아서 노래로, 인스타에 글로, 너를 마주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해왔다.
그럼에도 그때 있었던 일을 깊게 들여다볼 용기는 없었다.
그저 덮어두었다. 언젠간 마주하겠지 하며 모른척했다.
이따금 미뤄놓은 내 감정에 잠식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 전혀 괜찮지 않구나 깨달았다.
사고 직후에는 영상에 반복구간이 설정된 것처럼,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웃고 떠드는 10명의 고등학생, 물살이 빠른 계곡, 떠내려가는 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그 꿈에 더이상 시달리지 않게 된 건, 사고가 있고나서 1년 정도 후 쯤의 일이다.
꿈에서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찮아진건 아니었다. 내게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너를 마주하지 못했다. 너와 겪은 그 사고를 떠올리기 무서웠다.
다짐하고 펜을 잡아도 “잘 지내?” 로 문장이 끝났다. 문장을 더 쓸 수 없었다.
너가 죽은 뒤로 7년이 지났다.
더 늦게 마주 했다가는, 내가 모르는 게 나올까봐 무서웠다.
너가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답답했을 너에게, 또 내 주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1. 8월 12일
위화감에 눈을 떴다.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생각을 정리하다가 잠에 든 탓에, 4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몸은 무척 가벼웠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대로 일기를 쓰고, 요가를 했다. 노래는 듣지 않았다.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에만 입는, 흰 셔츠와 정장바지를 입었다.
평소에 발이 아파 잘 신지 않는 구두도 신었다. 오늘은 유독 옷을 갖춰 입는 이 행위가 잘 이해된다.
흰색과 검은색. 가장 단정한 색을 내 몸에 두르다 보면, 나 역시 정돈되는 느낌이다.
차분해진 상태로 편지지를 꺼낸다. 널 보러가기 전에 항상 도전하는 일이다.
할 말을 정리하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펜을 잡지만, “잘지냈어?“ 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또 아깝게 편지지만 버렸다. 역시 너에게 말을 거는 건 참 어렵다 궁시렁대며 집을 나왔다.
2. 첫 만남
내가 널 처음 만난건 중학교 3학년때다. 과학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위해 와이즈만 특강에 등록했다.
단 한번도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너는 그 걱정을 참 제대로 실현시켜줬다. 면접 준비를 같이 하면서, 조금은 동경했다.
그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선생님께 너에 대해 물어보니, 전교회장이라 몸에 베어있는 것 같다며 너를 많이 칭찬하셨다.
무리의 중심이라는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과학고등학교 면접 당일이 되었다. 서로 인사할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알고 있으니 인사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너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면접은 오전, 오후로 나뉘어있었고 나는 오전 면접이었다. 대기장소에서는 취식이 금지라는 말에, 아침 8시부터 미리사온 커피를 들이켰다. 내 면접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어서, 나는 4시간을 각성한 상태로 면접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 모든 긴장을 다 해버린 덕분인지, 막상 면접에서는 긴장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합격을 확신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난건, 와이즈만 과학고등학교 입학 준비반에서였다. 너 역시 합격했구나 생각했다.
너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장난기 가득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왔다. 내 생일이 언제인지 대뜸 물어봤고, 5월 30일이라 답했다.
"역시 생일이었네. 오전 오후 면접 나뉜 거 생일 기준인 거 같아. 수철 너 면접 거의 마지막이었지?"
그게 너와의 첫 대화였다. 이걸 왜 알아낼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나보다. 점심시간에 너는 내게 편의점에 가자고 했다.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을 먹어 봤냐며, 꼭 먹어보라고 추천해줬다. 덕분에 오모리 김치찌개라면은 내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견뎌준 애착라면이 되었다.
우리는 입학하기 전까지 학원을 계속 같이 다녔다. 작은 방에서 매일 같이 공부했고, 나는 너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참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나는 널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3. 널 만나러 가는 길
태풍이 지난 후라 그런지 날씨가 선선했다. 더울 각오를 하고 긴바지를 입었는데, 딱 날씨에 맞게 입은 느낌이다.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지하철은 네 번을 갈아타야 하지만 40분 정도 빨리 도착한다. 평소라면 지하철을 탔을텐데, 오늘은 그만큼 부지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9100번 버스를 탔다. 자리가 무척 여유로웠다. 차분하게 가라앉힌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는데, 운이 좋았다.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그렇지만 노래는 틀지 않았다. 버스 엔진 소리를 조금 작게 듣고 싶었다.
비가 올 듯 오지 않는 우중충한 날씨. 오후 1시의 적당히 나른한 분위기. 낮잠에 취해있는 사람들. 낮잠을 무심히 옮기는 버스.
나는 그 속에서 작은 긴장감을 손에 붙들고, 창밖을 봤다.
너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이 오늘은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4. 나의 생일
1학년 때 나는 너와 다른반이었다. 나는 4반이었고, 너는 3반이었다.
반이 달라도 우리는 같은 학원을 다녔다.
여전히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을 먹었고, 여전히 작은 방에서 같이 공부를 했고, 여전히 너는 장난이 심했다.
한창 1학기 기말고사가 가까워지고 있는 시기였다.
원래 학원은 주말에만 가는데, 시험이 가까워지자 금요일에도 학원에 가야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학원 선생님이 신고가 들어온다며 커튼을 치셨다. 뉴스에서 보던 장면에 내가 들어와 있어서 신기했다. 커튼을 급히 치는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공부를 치열하게 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가며 수학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불이 꺼졌다. 조금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봤다. 너가 환한 얼굴로 케잌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수철 생일 축하해"
12시 넘었지. 나 오늘 생일이네.
시험 공부에 집중한 나머지 나도 내 생일을 잊고 있었는데, 시험 기간이라 너도 여유가 없었을텐데 너는 내 생일을 챙겨줬다. 처음 받아보는 서프라이즈였고, 처음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보낸 생일이었다.
케잌은 망고맛이었다. 거짓말이어도 좋다. 내가 먹어본 케잌 중에 가장 맛있었다.
생일이면 생일빵을 피해 도망다니기 바빴었는데, 이렇게 축하받는건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그 감동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그날 찍은 사진은 아직 가지고 있다. 조금 이상한 필터가 씌워져 있기는 해도, 내게 몇 안되는 소중한 고등학교 추억이다. 이런 추억을 만들어준 너에게 아직도 많이 고맙다.
5. 혼자
혼자서 가족공원에 오는 건 나에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너를 혼자서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너의 기일이 가까워지면 나는 몇 친구에게 연락을 돌렸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너를 찾지 않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사람들이 너를 점점 잊어간다는게 나에게는 무척 속상한 일이었다.
세상에서 너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친구들에게 화도 냈다.
그렇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매년 잊지않고 너를 찾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내 기준을 강요하는 건 서로 힘들어지는 길이라는 걸. 회사를 다니면서 배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굳이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이 왔다 하더라도 혼자 가겠다고 대답했을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가족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가족공원 앞에는 꽃집이 5개 있다. 갈 때마다 가게 사장님들이 정말 애타게 손짓을 하신다. 처음에는 어떤 가게에 들어가야 할 지 무척 난감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난감해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년에도 올거니까 공평하게 순서대로.
꽃집이 5개가 있는데, 처음 2년차까지는 어리버리 해버렸다. 그래서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지막 꽃집의 차례가 왔다. 보라색 꽃을 골랐다. 작년에는 무슨 색 꽃을 골랐나 기억해봤는데 그때도 보라색 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거나, 너가 좋아하는 색이거나. 둘 중에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너는 무슨 색을 가장 좋아했니. 건낼 말이 하나 늘었다.
꽃집이 보이면 10분 정도 더 걸어야 하는데, 너와 나눌 말을 정리하다보면 벌써 너가 있는 곳이다. 납골당에는 모든 영혼에 번호가 붙어있다. 너가 무슨 번호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어디 있는지는 안다. 너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너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두 분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너에게 꽃을 달았다. 너의 얼굴이 가려지지 않게 바깥쪽으로 신경써서 달았다. 내 앞에 벌써 사람들이 다녀갔나보다. 꽃이 두개나 붙어있다. 나 말고도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는다.
너를 추억하고 슬퍼할 수 있는 날이 있어서 다행이야. 너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6. 마지막 생일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미국을 갔다. 수학여행에서 너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때 우리가 얼마나 신나있는지, 들떠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이상한 필터가 씌워져 있지만.
우리의 추억을 미국에 남겨둔 채 한국에 돌아오는 동안, 너의 생일은 사라졌다. 너는 비행기에서도 인천공항에서도 “내 생일이 비행기에서 사라졌어!!” 라는 말로 속상함을 표현했다. 생일을 정말 특별하게 여기는 너가 참 신기했다.
몇일 뒤 너는 나한테 찾아왔다. 나는 너 생일을 그렇게 챙겨줬는데, 실망이라며 장난기 섞인 말로 툴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유쾌하게, 솔직하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너가 참 너답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유쾌한 서운함은 너만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주말에 케잌을 사왔고, 학원에서 수업시간 중간에 서프라이즈를 해줬다. 비록 엎드려 절받기 선물처럼 느껴졌겠지만, 너는 정말 많이 기뻐해줬다. 그때 배웠다. 선물은 받는 사람도 기쁘지만, 주는 사람도 기쁜 일이라는 걸.
너의 다음 생일은 그 누구보다 잘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너의 다음 생일은 오지 않았다.
7. 말을 건낸다.
꽃을 달고나면 몇 발자국 뒤로 가서 너의 사진을 본다. 여전히 에어팟에는 노래가 없다. 그저 소음을 줄여줄 뿐이다. 조금 조용해진 이 곳에, 너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작은 방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너에게 말을 건낸다.
내가 너에게 말을 건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너와 함께 즐겼던 추억들을 하나 하나 잊지 않게 들여다 본다. 그런 추억들을 떠올리다보면, 다시 1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동안은 좋았던 추억만 들여다봤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용기를내서 그때 있었던 모든 일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기로 했다. 필요한만큼 더 슬퍼하고, 울기로 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때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8. 첫 여행
함께 계곡에 놀러 가자며 여행 계획을 설명해줬다.
우리 추억이 수학여행 하나 뿐이면 너무 아쉽지 않냐고, 친한 친구 10명에서 추억을 만들러 가자는 이야기였다.
진우 아버지께서 숙소도 이미 잡아주셔서, 우리는 편히 놀고오면 되는 상황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계곡 여행을 가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계곡으로 향했다. 처음 우리가 간 곳은 물이 너무 얕았다.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얕은 물을 거슬러 가다보니, 허리까지 오는 곳을 만났다. 그곳에는 근처 교회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놀고있었다.
너에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고 했다. 우리 어디까지 안전한지 확인하고 오자고.
다른 8명의 친구들은 이제 막 도착해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물고기를 만났다.
잠수를 해서 그 물고기를 잡았다. 같이 매운탕을 끓여먹자며 신난 목소리로 너에게 외쳤다.
너도 잠수를 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듣고 물고기를 잡는 중일거라고 생각했다.
너가 새로 샀다며 자랑한 파란색 아디다스 슬리퍼가 떠올랐다.
칠칠맞게 슬리퍼나 흘리고 있냐며 슬리퍼 쪽으로 향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너는 물을 거칠게 내려쳤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반쯤 잠긴 상태로 소리쳐서 발음이 물에 뭉개졌다. 허리까지 밖에 안오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슬리퍼를 잡으려고 한 발 더 내딛었고, 나 역시 가라앉았다. 발이 닿지 않았다.
수영을 할 수 있고 없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비 때문에 불어난 계곡의 물살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 발자국 앞은 내가 있던 안전한 영역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내딛는 순간, 빨려들어갔다. 나는 최선을 다해 발버둥치며 주변에 있던 바위를 간신히 잡았다.
너를 찾아야 했다. 물에 잠겨있는 너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초조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다행히 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머리카락 같은 게 보였고, 바위를 잡고있던 팔을 조금 풀어 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아슬아슬하게 놓치는 장면은 순 거짓말이다. 나는 너의 팔을 잡았지만, 물살이 너무 강해서 1초만에 놓쳤다.
떠내려가는 너를 보며 나는 패닉에 빠졌다. 멀리있는 친구들에게 119에 전화해달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장난치지 말라며 안믿는 눈치였고, 나는 그게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진짜라고.
너가 흘러간 쪽에 교회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 좀 건져달라고 소리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너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헤엄쳐서 갔는지, 걸어서 갔는지는 모르겠다.
너는 얼굴이 새파랬다. 좀비로 변한 사람의 피부색 같았다. 내가 가슴을 누를 때마다 얼굴 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너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물을 토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팔이 아파도 가슴을 누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수업시간에 배운 심폐소생술을 따라하는 것 뿐이었다. 이걸 멈추면 정말 너가 죽을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하나씩 내 주변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9도 도착했다.
구급대원 분께서 나와 자리를 바꾸셨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도와 속도로 가슴을 압박했다.
너의 입에서는 피가 나왔다. 거품도 나왔다. 구급대원 분께서는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했던 응급처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고 지문이 지워질만큼 빌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9. 비극
그때 벌어진 사고는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사고 사례들을 찾아봤다. 대부분 살아나는 사례들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괜찮을거라며 서로를 위로하다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짐을 정리한 우리는 너가 옮겨진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담임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래서 보호자라고 표현하나보다. 그들을 보는 것 만으로 무척 안심이 되었다. 뭐든 해결해 주실 것 같았다.
너가 있는 중환자실에는 두 명씩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너를 보러 중환자실에 들어가는데, 휘찬이네 어머님께서 그러셨다.
친척분들이 너네한테 화내더라도 놀라지 말고 이해드리라고. 절대 울지 말라고. 친척분들 앞에서 울면 안된다고.
그곳에서 나는 너네 어머님을 처음 뵈었다. 너가 어머니를 정말 많이 닮았다는 걸 알았다. 어머님은 바닥에 앉아서 가슴을 치시면서 울고 계셨다.
너의 동생도 그때 처음 만났다. 동생은 이 상황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처럼 보였다. 멀뚱히 서 있었다. 그게 더 속상했다. 이 모든 상황이 나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나 때문이 맞다. 그래서 나도 울었다. 손으로 울음을 막았지만, 막아지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10. 죄인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평소와 같이 학교생활을 했다.
학년 담당 선생님께서는 사고가 있어서 너가 당분간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말만 하셨다.
아무도 나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심리상담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한 번이었던 거 같았는데, 나만 여러번 상담을 받았다.
그날 나와 너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선생님들도 모두 아시는걸까.
심리상담 선생님과 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너가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가장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래서 기숙사를 나오자마자 편지지를 샀고, 집에 돌아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때 마침 휘찬이한테 전화가 왔다. 너가 깨어났다는 소식일거라 확신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에게 너가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놀라지말고 들어. 뇌사판정 받았대"
뇌사의 뜻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분명 아직 뇌사의 뜻을 모르는데, 눈물은 나기 시작했다.
휘찬이가 전해온 그 소식이, 너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엄마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그 약간의 시간 격차에는, 너의 죽음을 온 힘을 다해 부정하는 내가 담겨있었던 거 같다.
엄마를 안고 펑펑 울었다. 엄마도 나를 안고 같이 울어주셨다.
내 스스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 된 날이다.
11. 장례식
잘 모르는 어른들의 장례식 몇 번. 친한 동생의 어머니 장례식 한 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장례식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친한 동생의 어머니 장례식에서는, 남겨진 동생이 안쓰러워서 울었다. 어머님의 죽음 자체 크게 슬프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의 장례식은 지난 장례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짓눌렀다.
휘찬이네 어머님이 나에게 울지 말라고, 울면 너가 편히 못떠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다가 제일 먼저 정효진을 만났다. 정효진이 울먹이면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은 나한테 괜찮은지 물어봐준 게 아니라게 아니라, 괜찮다고. 그저 괜찮다고 나에게 괜찮음을 강요했다. 그래서 나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내 스스로에게 강요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정효진이 건낸 괜찮냐는 말에 눈물이 터졌다.
"나 하나도 안괜찮아. 눈물에 잠겨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안 괜찮아."
모두가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킬 때,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봐줘서 참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 나를 달래며 너의 웃는 사진으로 향했다. 너한테 절을 했고, 아버님께 목례를 했다.
너한테 절을 하는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너가 수철이냐며 다가오셨다. 나는 이제서야 내게 책임을 물으시려나보다 잔뜩 긴장했다.
아무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는 이 상황이 되려 날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생각하며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아버님이 내게 오셔서 손을 잡아주셨다. 너무 긴장했던 탓에 무슨말을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따뜻한 목소리였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날 용서할 수 있도록 배려의 말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게 나는 더 죄송해서 또 울었다. 나만큼은 나를 탓해야 한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전해주신 온기에 큰 위로를 받았다.
9명이 구석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이 참 많이 오간다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울음은 더 이상 막지 않았다. 처음에는 참으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울음 참기를 완전히 포기할 때 쯤 너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
12. 발인
9명의 소년이 흰 장갑을 끼고, 관을 들고 있는 모습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순간만큼은 정말 많이 울었다.
너를 버스에 태우고 우리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있었다.
너는 참 사랑을 많이 받아온 존재라서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는구나 생각했다.
평소에 과묵해 보였던 선생님들도, 너와 사이가 안좋았던 친구들도 예외는 없었다.
그 시간 만큼은 모두가 슬퍼했다. 나도 또 울었다. 인간이 이렇게 많이 울 수 있구나,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울 수 있을까.
화장하고, 납골당으로 옮겨지면서 너의 장례는 마무리 되었다. 보통 무언가가 마무리 되면 끝났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이건 도무지 무슨 느낌인지 표현 할 수가 없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단 하나도 없어서, 마치 이 3일을 다른 세상에서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게 있던 우리는 너네 아버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다들 고생 많았다."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울었다. 아버님 본인이 누구보다 힘드실텐데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한 말을 해주셨다. 너의 아버지는 정말 존경할만한 아버지셨다.
13. 빈자리
장례식을 마치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학교에 너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면학실 책상도, 서랍도, 사물함도 다 비워져 있었다.
그 짐을 정리하시면서 너네 아버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났다. 너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게 조금씩 와닿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휘찬이가 대뜸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너는 걔랑 무슨 사이였어?”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내 슬픔을 주변 사람에게 나누기 시작했던 건. 휘찬이가 걸어준 그 말 덕분이었다. 그 대화를 기점으로 우리는 조금씩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너가 없는 학교에서 조금씩 슬픔을 나눴다.
14. 제우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의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9명에서 제우를 만나러 갔다.
제우는 너랑 성격이 똑같았다. 장난 치는 것도, 웃는 것도, 말투도 전부 너와 닮아 있었다. 형을 많이 좋아했던 게 느껴졌다.
우리가 불편해 하지 않도록 계속 웃어줬다. 내 눈에는 노력하는 제우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보였다. 제우를 보면서 너 생각이 너무 많이났다. 밥을 사주고 돌아오면서 또 울었다.
15. 일상
우리는 고 3이 되었고 입시를 했다. 너의 기일에는 다 같이 학원을 쉬고 너를 보러갔다. 제우와는 종종 밥을 먹었다.
어느날은 제우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을 전부 알려달라고 연락이 와서 많이 놀랐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쓴 것처럼, 제우에게도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해줬다.
말하기 힘들었을텐데 말해줘서 고맙다며, 나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내 손을 잡아줬다. 형이 남겨진 9명의 형들을 지켜준거라고 생각 하자며 웃으면서 말을 꺼내줬다.
그날 너가 아니었다면, 우리 중에 한 명은 그 사고를 대신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아마 나였을 거다. 그렇다고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 보고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기로 제우와 약속했다. 나는 너의 가족 덕분에 내 스스로 조금씩 용서해 갈 수 있었다. 너의 가족은 참 따뜻했다.
16. 잘지내
그 동안의 일을 전부 돌아보고 나니 새삼 너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너는 누구보다 뜨겁게 젊음을 태웠을거다. 너는 창업을 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 때 창업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창업을 같이 도전했을 수도 있었겠다.
시계를 보니 50분 정도 흘러 있었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들여다보고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눈물을 많이 흘렸고 덕분에 마음은 가벼웠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있었던 일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너를 보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팟으로 노래를 틀었다. 너를 만나러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하천과 우거진 나무들을 보며. 매미 울음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갔다.
진우야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