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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 Oct 12. 2016

월세가 오르던 날

셋방살이의 피할 수 없는 순간

월세가 오르던 날


피해갈 수 없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오전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네, OOO입니다."
"아이구 안녕하세요. 주인 아줌마인데요, 출근하셨죠?"


낯익은 목소리는 나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월세를 올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계약기간이 두 달도 남지 않아서 나도 방을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아무리 싼 동네라도 서울 하늘아래 이 월세에 이만한 방을 찾기도 어려웠다. 내년에도 계속 살아야겠다고 막 마음을 정하고 집주인에게 알리기 직전이었다. 그 때 월세인상을 통보받은 것이다.


"아...얼마나요?"

"오만 원 정도 올렸으면 하는데요. 처음에 너무 싸게 내놔서.."

어쩐지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더라니...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은가

요즘 나는 전국팔도로 우리 시스템 사용자 교육을 다닌다. 오전은 내가 직접 교육을 진행하는데, 머릿속에 온통 월세 생각으로 정신없이 보냈다. 오후에 마음을 가다듬고 손익을 계산해보았다.


1. 5만원 인상하여 12개월이면 60만원이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2. 지금 월세+5만원 만큼으로 다른 방으로 이사간다고 해도 여기보다 나은 방을 찾기 어렵다.

3. 이사하면 이사비, 연차 하루, 여러가지 '귀찮음 비용'이 수반된다.

4. 쩐세자금대출로 조그만 방으로 이사할 경우 월 주거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귀찮음 비용이 크고, 무엇보다 옥탑방만큼의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5. 하지만 만약에 이사를 간다면 여자친구 집이랑 가까운 곳으로 :-D


하나, 둘, 셋, 넷...글로 적어보니 장단점이 드러났다. 표로 만들어보니 더욱 명확해졌다.


집에서 잠만 잘 것 아니에요?

함께 출장 간 사람들에게 농담삼아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우리 클라이언트 왈


"어차피 집에서 잠만 잘 것 아니에요? 저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데. 싼 방으로 구해요!"

"저는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낼 겁니다."

"부장님, 냉이씨가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는데요."


직업관이 다른 사람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내 개인적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주객전도다. 그 순간에, 이렇게 대답을 못드리고 허허 하고 넘겨버린 것이 참 아쉽다.


월세 협상

주인 아줌마의 자체 네고

이래저래 고민에 빠져있던 차에 주인 아줌메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5만원이 부담스러우면 3만원만 올리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사실 5만원으로 올려도 여기서 계속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던 터라 덥석 물었다. 사실 주인아줌마(내 생각에는 할머니)

셋방살이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월 몇만 원이라는 돈이 직장생활 하면서 감당못할 만큼 부담스러운 건 아니지만, 마음이 그렇다. 이직 연봉협상에서 어이없게 백만 원 깎는 회사, 월세 3만 원 올려달라는 집주인.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인생에 틈틈히 끼어들어 없는 서러움을 일깨워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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