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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 Feb 07. 2020

뒷 점빵 평상에서 만나요

지난 설에 고향에 갔습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이십칠 년을 살았었습니다. 아주 어릴적에 잠깐 다른 동네에 산 적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돌아왔지요. 우리집은 아주 비좁은 골목 안에 있었습니다. 그 골목은 앞뒤로 길이 있었고, 길 밖에는 점빵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지금은 구멍가게라고 불리는 아주 조그만 가게들입니다.


저는 앞 점빵을 좋아했습니다. 앞 점빵은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가 번갈아 자리에 앉아 계셨고, 어른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가게 안을 구경 하기조차 비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요즘 버스 정류장 근처에 보이는 간이 매점 크기 정도 되려나요? 점빵 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늘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양이를 아주 무서워했어요. 이 점빵의 주력 상품은 과자며 아이스크림 따위의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앞 점빵에 파는 꾀돌이와 아폴로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용돈이 없어서 자주 먹지는 못했습니다. 


뒷 점빵은 심부름을 가던 점빵입니다. 앞 점빵에 비하면 이 곳은 '슈퍼' 마켓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컸습니다. 가게 안에는 우유 냉장고도 따로 있고, 주인 아줌마가 미닫이 문을 닫고 테레비를 보는 방이 있었으니까요. 이 점빵의 주력 상품은 우유나 비누 같은 생필품이었습니다. 술도 팔았지요. 청소년보호법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까지 아버지나 삼촌의 소주 심부름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뒷 점빵 앞에는 너르지도 좁지도 않은 평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항상 앉아서 햇볕을 쬐고 계셨죠. 우리 할머니도 집이 안 계셔서 찾으러 나가면 항상 여기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는 집 앞 삼성컴퓨터게임장 지하 다방이나 육거리 근처 양장점에 가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뒷골목 점빵 평상에 가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그 평상에서 쉬고 계셨거든요.


열여덟에 우리집은 이사를 합니다. 뒷 점빵과 1분 떨어진 곳으로 말이죠. 말하자면 이전 집에서 2분 거리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 그런데 골목이라는 것은 물길처럼 한 곳으로만 흐르는지, 그 후로 나는 영영 뒷 점빵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간 후로는 별다른 일이 없어도 집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여서 예전처럼 심부름을 다니지도 않았고,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커다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오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설에 우연히 십수년 만에 고향집 뒷골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라졌을 줄 알았던 뒷 점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평상은 여전히 동네 할머니들의 놀이터인지,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불이 꺼졌는지 켜졌는지도 모를 점빵 안에는 희미하게 진열된 물건들이 비쳤습니다. 어릴 때 심부름 가서 보았던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똑같은지 내가 다시 아홉 살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다시 아홉살로 돌아간다면 무얼 할까요? 나는 곧장 뒷골목 점빵 평상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할머니는 항상 그 평상에서 쉬고 계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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