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해외여행 계획
나는 프로여행러버다. 가끔은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해외여행을 물론 좋아하지만, 국내여행도 틈만 나면 간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에는 더더욱 그랬다. 멀리 가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자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국내여행으로 여행욕구를 근근이 채워가며 연명해나가고 있었는데, 조만간 휴가를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 같아 그간 잠재워왔던 해외여행 욕구를 슬슬 풀어볼까 한다. 그동안 고이고이 아껴두어 왔던 나의 버킷리스트 속 여행지를 하나하나 들춰보려는 기대감에 부풀고 있었는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여행 좋아하는데. 그렇지만 엄마와 여행을 함께 간다고 상상해보자 선뜻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면, 많이 못 돌아다닐 텐데…….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 음식 먹는 데에도 제한이 많을 텐데…….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면, 모든 힘든 건 내가 다 해야 할 텐데…….
엄마와의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더 망설여졌는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나 당시에는 상당히 힘들었다. 여행 코스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길도 찾고, 짐도 들어드리고 등등. 게다가 한식을 원체 좋아하시는 분이라 현지 음식도 잘 안 맞아하셨다.
엄마와 여행을 가있는 동안, 그리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 엄마는 해외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우리 엄마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글로벌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다 경험의 차이일 것이다. 내가 외국에 나가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동안, 엄마는 우리나라에서 내가 그 기회를 누리는 데에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을 것이다. 내가 20대 때부터 쌓아온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사람이 되는 동안, 엄마는 20대는커녕 아빠가 퇴직을 하시고서야 패키지여행으로 유럽 땅을 처음 밟아보신 것이리라. 사람은 당연히도 나이가 젊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유연하기 마련이다. 젊을 때 해보지 못한 것을 나이가 들어 처음 접하면 누구 나가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종종 가족들과 함께하는 외식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건 처음 맛보는 거네. 나를 종종 이런 곳에 데려오란 말이야. 그래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보지."
당연한 말씀이다. 먹어본 음식이어야 그 존재를 알고 요리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는 않으셨다. 그 시대의 전업주부 어머니들은 다 그러하였을 것이다. 어떨지 모르는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자발적으로 시도해보지는 않지만, 남편이나 자식들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셨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쩌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으시기도 하고.
나는 특히 결혼 직전에 종종 부모님을 낯선 음식을 파는 식당에 모시고 갔었다. 결혼이 예정돼 있어 이런 시간을 갖기가 앞으로는 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부모님과 더 애틋했던 것 같다. 시카고 피자, 멕시코 음식, 양고기 같은 음식이었는데, 출장차 해외 경험이 많으셨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어떠한 음식도 입맛에 맞아하지는 않으셨다. 기껏 모시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그로부터도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패키지여행만 해본, 외국 문화가 낯선 엄마에게 시간에 쫓기고, 주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유여행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제멋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이동하는. 누군가가 데려가는 곳에 가서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지나가다 마음을 잡아끄는 음식점에 들러 현지 음식을 맛보는. 나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가 여행에 지칠 때쯤 눈길을 사로잡는 카페에 들러 여유 있게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사실 여행 그 자체가 아니라도, 긴 시간을 결혼한 딸과 온전히 둘이서만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로서도 마찬가지이고.
여행 의사를 물어오자 당연하게도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 어디가 제일 가고 싶냐며 집요하게 선택지를 제시하는 딸에게, 다 안 가본 곳이라 어디라도 좋다고, 네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하신다. 일전의 엄마와의 해외여행은 아시아권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엔 좀더 길고 먼 여행이 가능할 것 같아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