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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Nov 10. 2023

똑똑, 오랜만이야.

<스윗소로우 작은방 콘서트를 즐기고>

 안녕? 우리 집에 놀러 와줘서 고마워. 많이 누추하지? 먼지가 좀 쌓였을지 몰라. 나도 이곳에 돌아온 게  달 만인가? 근데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맞댄 지는 4년 만이다? 시간 참 빠르네, 그치? 이 집에 있는 나의 작은 방을 오랜만에 꾸미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그거거든. 이토록 빠른 시간에 우리의 재회마저 스쳐 지나가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어. 눈이 나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너와 다시 만난 이 마음을 남길 공간, 너를 초대할 이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4년 전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시야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을 때, 기다림을 놓고 새로이 시작하려는 너를 찾아갔었어. 머지않아 실명할 나의 미래를 짐작한 채였지. 반짝이는 목소리를 내던 너를 담은 흐린 눈에 물방울이 많이 맺히더라. 주책이라고 생각하지 마. 내 옆자리 친구들은 나보다 더했으니까. 너도 그랬고. 예전에 방송에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서'라는 곡을 부른 적 있잖아? 그때 눈물짓던 관객들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울컥하던 기분과 같을까? 거울뉴런이라도 활성화되었나 봐. 얘기가 딴 길로 새네. 오늘 초대한 건 이번 재회를 이야기하려고 했지. 여하튼 오랜만이야. 이제 와서 말하지만 다시 만나서 반갑다.
 딩동 현관 누르는 소리와 함께 공연을 시작했을 때 약간이나마 낯섦을 느낀 이유는 여태까지와는 달리 노래로 공연을 시작하지 않아서 많은 아닐 거야. 우리가 워낙 오랜만에 만났잖아. 하지만, 잠깐의 수다도 오랜 말이란 말도 필요 없지, 늘 그랬지. 편안한 말투로 긴장을 풀어주는 시간을 지나 어떤 분위기를 잡으려 하지? 근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곡인 거야. 4년 전에는 가장 절정의 시간에 이 노래를 불러줬었지. 솔직히 말해도 될까? 화음이 훨씬 단단해졌더라. 그때의 노래들로 초반부를 채운 건 우리가 진정 재회하메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어. 스윗 소로우 1집 스윗소로우의 2번 트랙 스윗 소로우, 그리고 마지막 트랙 Sanu. 여전히 1집을 앨범째 듣는 내게 이러한 선물이 너무 특별했었어. 어우러짐에 빈 공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지. 누군가는 어려운 교수님 같은 노래라고 했던 그 노래가 내게는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이거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는 그 말 Wanna make a better tomorrow.), 직접 내 앞에서 그 내일을 보여준 것만 같아 너와 재회한 처음부터 벅차올랐어.
 볼 수 없던 내게 즐기기 어려웠을 뻔한 이벤트 순서도 재미있었지. 현장감으로도 충분했을 고양심에 더해, 너와 초면이었던 친구 덕에 악수 시간에는 손도 잡아보았으니까. 목청껏 '우리 다시'를 외쳐보기도 하고, 딱히 쓸 일이 없을 상품이나마 내가 앉은 자리가 호명되길 기다리게 되더라고. 모든 친구들이 같은 마음으로 다른 소리를 내어 간절함으로 화음이 되었어. 예전에도 몇 번인가 관객들이 직접 화음을 내기를 시도했었지?  못지않게 짜릿했어. 게다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 어디선가 시키지도 않은 화음이 들리더라. 사실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그러한 화음이 주는 따뜻함이 나를 한껏 달뜨도록 만들었어. 함께 보낸 시간만큼 우리의 시간이 다채로워지나 봐.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 초대해 준 집에서 발견한 글귀의 제목이었지. 얼마 전에 그 책을 읽었어. 소중한 이가 떠나갔을 때의 슬픔을 그리던 '겨울 여행', 어둠 속에서 항해하는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등대' 뒤에 말 그대로 내게는 어둠뿐인 공간에서 들린 낮디 낮은 목소리가 심장에 닿았어. 이백의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라는 문구 전까지 읽었었지? 1년 중 가장 추운 겨울을 앞두고, 아침과도 같은 초봄의 밤을 추억하는 글귀라니. '나에게 위로해'로 그 순서를 마쳤을 때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던 건 너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 덕일 거야. 그리고 어느덧 우리의 만남은 막바지에 달했지. 원래는 백 개 이상의 목소리 샘플로 들었던 혼성곡 '작은 방'이라는 곡을 오롯이 너의 목소리로 들었음도 좋았어. 콘서트라면 결코 빠지지 않던 "Sunshine"의 시작을 목소리로만 채웠음도, 공연에서는 아마 처음 들었던 진정한 마지막 인사도 좋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내 부족한 어휘력이 밉다. 아마 그 곡이 3시간 동안 공연을 즐긴 관객에게 하고픈 질문이겠지? 앞으로도 '나랑 같이 해줄래?‘
 그 대답으로 다시금 나의 이 방을 꾸려가려 해. 하이파이브로 배웅하는 너와 손바닥을 맞추는 일이 내게는 벅찬 일이었어서 내가 애써 스쳐 지나려 했었잖아. 너는 그러한 나의 등을 다독여주고, 손을 잡아주었지. 네 덕에 실감했어. 자주 만나든, 가끔 만나든 이 작은 방이 나의 집이란 걸. 이제 홀로 있는 이 작은 방에서 너의 음악을 듣고 있어. 내게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란 다시금 재회할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속에 울리는 화음이야.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그리고 혹여나 네게 닿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금 부족한 필력을 이곳에서 가꾸어갈 거야. 이별은 이다지도 달콤한 슬픔이던가(Parting is such sweet sorrow)? 시력과의 이별, 젊었던 너의 예전 모습들과 이별하고 지금 너의 목소리를 마주했듯, 잠시 이별했던 너와 다시 재회할 날에 우리가 어떤 화음을 내고 있을지 기대되네. 그때까지 건강 챙겨라. 나도 예전 같지는 않더라. 잘 지내라, 친구야. 누가 뭐래도 난 네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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