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은 비
<전국장애인기능대회(점역부문)에서 고배를 마시고>
비가 퍼붓는 점자지는 뒤로하기로 했다.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고사장을 나섰다. 지금껏 잘 버티던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협회 담당자분의 안내를 받아 차에 올랐다. 인사치레일 잘 보셨냐는 질문에 웃으려고 했지만 입꼬리마저 눅눅해진 모양인지 그러기는 어려웠다. 하필 이 타이밍에 비가 온다던 기상 예보가 들어맞을 건 뭐람.
카니발의 시동이 걸리는 동시에 라디오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스마트폰을 꺼 놓던 두 시간 남짓 나를 찾던 이는 없었던가?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빗속을 달리는 목적지의 연락처를 찾아 안내 보행을 부탁드리는 전화를 드렸다. 그 외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려 봐야 젖어버린 흥미를 끌 것은 없었다. 나는 부슬비가 내리는 창가에 흐린 시선을 두다가 유리창에 손끝을 가져다 대었다. 미세하게나마 전보다 감각이 예민해진 걸까? 차의 떨림과 구분되는 가랑비 떨어지는 느낌이 간지러웠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2년 전 처음 점자를 배울 때 받아쓰기를 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세상 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노래의 박자를 따라 유리창을 두드리다가 차가워진 검지를 입꼬리에 가져다 댄 채 턱을 괴었다. 창을 건너온 물기에 기분이 나아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30분 전에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협회 직원분께서는 대회에 참가해 주어서 고맙다며 터질 듯한 쇼핑백을 내미셨다. '저야말로 이런 선물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쇼핑백을 알뜰살뜰 챙겼다. 1박 2일 동안 경주에서 지낸 만큼 묵직한 가방을 들쳐 매고, 오른쪽 팔뚝에는 쇼핑백을 건 채 흰 지팡이를 들어야 했다. 왼손으로는 신경주역사 직원분의 팔꿈치를 잡았다.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걸음으로 KTX의 내 자리에 당도했다. 복도 쪽이었던 나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빈 좌석에 커다란 백팩과 쇼핑백을 던져둔 뒤 기념품을 하나하나 가방에 욱여넣었다. 짐을 줄여야 했다.
우선 쇼핑백을 접어 넣고 수건과 경주빵, 귤 따위를 순서대로 백팩 속에 담았다. 그러던 도중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부지런히 놀리던 손을 멈췄다. 감귤 맛이 일품이라는 귀띔이 뱃속까지 맴돌았다. 저녁 시간도, 요깃거리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던 귀갓길이었다. 나는 귤을 까기 시작했다. 게눈 감추듯 귤을 삼킨 순간 작년 상반기에 처음 참가했던 지방대회에서 받았던 간식의 상큼함이 혀끝에서 되살아났다. 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디달았지만 당시 나의 경쟁자가 점자 선생님이셨다는 사실에는 좌절했었다. 그분이 나를 꺾었음은 당연하여도 끝내 전국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더욱 열심히 점자를 배우겠노라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지금은 추억이 담긴 과즙이 터지는 귤이나 까먹고 있었다.
귤로도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하여 경주빵을 꺼내 먹다 보니 곧 대전역에 도착하리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한결 든든해진 배를 털어낸 뒤 급히 짐을 추슬렀다. 열차 안에서 잡은 여성 직원분의 팔꿈치에서 대전역 내의 사회복무요원 분의 팔꿈치로 손을 옮기며 걷는 걸음이 축축 처졌다. 긴장이 풀어지고 배가 차니 수마가 기세를 올렸다. 지하철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가방을 품에 안고 꾸벅꾸벅 고개를 흔드는 중에 1년 전의 제 모습과 데자뷔가 일어났다. 점역교정 사를 보던 전날 통 잠에 들지 못하여 수도권의 1호선 지하철에서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던 나의 옆에는 당시 스터디를 함께해 준 친구의 어깨가 있었다. 어쩌면 기댈 곳이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나는 혼자였다. 마음 놓고 졸다가는 목적지를 지나칠 수 있었다.
"다음 역은 현충원역입니다."
다행히 내릴 역의 안내 방송을 놓치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활동 지원 이모가 기다리고 계셨다. 안에만 있어서 몰랐건만 하늘에서는 누가 살수차라도 뿌리듯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무용지물이었다. 역 입구에서 달리는 몇 걸음에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급한 걸음으로 차에 타서 뒷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젖은 몸을 조수석에 던졌다. 올해 지방장애인 기능경기 대회에 재도전하겠느냐는 협회 직원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해당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전국장애인 기능경기 대회 점역 부문에 참여한 기억들이 억수 같은 폭우에 씻겨갔다. 경주까지 가서 시험을 망쳤다.
점자를 배운 지 어언 2년, 처음에는 보지 않고도 글을 읽을 수 있음에 마냥 기뻐했었다. 자격증 모의고사 차 지방대회에 참가하고, 점역교정 사를 취득하던 추억이 아득했다. 서른이 넘어서도 어떤 부분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이의 팔꿈치를 잡았던 왼손에 주먹을 쥐었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읽고 쓸 왼 검지 손끝이 따스해져 왔다. 조수석 깊숙이 몸을 기울였다. 거센 장대비가 나의 오른 편의 젖은 어깨를 차창 너머에서 다독였다. 이모의 차는 비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느려도 좋았다. 내년에는 내가 사는 공주와 보다 가까워진 충북에서 전국 대회가 개최된다는 협회 직원분의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비가 잦아들었다. 이모는 현관 센서 등 아래에서 고생했다는 말보다 훨씬 값진 격려를 건네셨다.
"내년에는 같이 다녀오자고."
집에 들어가 씻고 눕자마자 점자정보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당장이라도 잠에 빠질 듯한 피로감에도 아직 채 그치지 못한 창밖의 빗소리가 아롱아롱 속살거렸다. 나 역시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텅 빈 셀 위에 빗방울을 알알이 새겨갔다. 점자지에는 여전히 가을장마가 기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