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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로카 Jan 26. 2022

분노의 오픈런 - 나이키 조던1 골프

왜 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할 수밖에 없었나.

1월 14일 금요일 오후 한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이 업로드되었고, 그 동영상은 '나이키 오픈런. 위험천만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이라는 제목으로 각 방송사의 저녁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근처에서 촬영된 이 동영상에는 여러 사람이 필사적으로 달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중 상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서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해당 기사와 뉴스의 댓글란에는 그들을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왜 이런 위험한 레이스를 펼칠 수밖에 없었을까?


뭘 사려고 그리 뛰어?


이 날 발매한 제품은 나이키 조던1 로우 골프이다. 조던1 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스니커즈 열풍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조던1 농구화의 디자인과 색감을 그대로 재현한 골프화이다. 


시카고,  울프그레이,  쉐도우 컬러


이름만 골프화이지 인기 제품인 조던1 로우 모델과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출시 전부터 스니커즈 매니아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제품이다. 이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시카고 컬러는 유일하게 온라인 선착순 발매이고, 울프 그레이, 쉐도우 그리고 트리플 화이트 세 가지 컬러는 1월 14일 오전 10시 오프라인 선착순 발매가 확정되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국의 나이키 골프 매장과 백화점 앞에서 전날부터 대기를 하며 캠핑을 하게 되었고, 이런 모습이 SNS를 통해 퍼져 나가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 백화점의 정문이 열렸고, 금요일 뉴스를 장식한 '나이키 오픈런'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픈런은 매장 앞에서 대기하다가 개장과 동시에 달려가서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날 공개된 동영상속의 인물들은 모두 나이키 조던1 골프를 사기 위해 매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 과정에서 매장의 위치를 착각한 사람들은 급히 내려오느라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기도 하고 위험한 쟁탈전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백화점 입구 앞에서 오랜 시간 추위에 떨며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다. 당연히 서로의 순서에 대해서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을 테니 백화점 입구가 열렸을 때 그 줄을 유지한 채 그대로 매장까지 가면 될 일이 아닌가? 밖에서는 질서를 잘 지켜놓고, 왜 갑자기 무질서하게 달려갔을까?


내가 1번인데 쟤들은 뭐야?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이 스니커즈 씬의 오픈런과 관련된 논란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의 한정판 발매일에는 항상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이 오픈런은 거의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단독 매장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단독 매장은 입구 바로 옆에서 줄을 서지만 백화점은 매장 입구가 아닌 백화점 입구 앞에 줄을 서기 때문이다. 백화점 입구에서 매장까지의 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화점 입구에서 매장 입구까지 밖에서 선 줄 그대로 천천히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에 들어서는 순간 줄이 무시되고 오픈런이 일어나고 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목동 현대백화점 정문과 닫혀 있는 옆문(해당 사건과 관련없는 백화점임.)


일단 백화점에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 

보통 정문에서 줄을 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다른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 언쟁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 보통 줄 서는 위치는 사전에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공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보통 실착 하려는 사람과 리셀 목적으로 온 사람 간의 갈등이 대부분이다. 이런 업자들 중 일부는 자신이 줄 뒤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커뮤니티에서 암묵적으로 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며 달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졸지에 선두를 빼앗긴 사람들은 같이 달릴 수밖에 없게 되고 질서가 무너진다. 하지만 오프라인 발매가 뜸해진 요즘 이런 경우는 별로 없고 논란이 되는 경우는 따로 있다.


바로 직원 출입구를 통해 몰래 들어오는 경우이다.

이번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직원들은 전용 출입구로 보통 오픈 시간 30분 전에 출근을 한다. 백화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오픈 시간 전에 열려있는 셈이다. 일반인이 직원 인척 출입구로 몰래 들어와서 화장실이나 계단 쪽에 숨어있다가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재빨리 나이키 골프 매장으로 가면 밖에서 줄을 서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들보다 먼저 대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전부터 논란이 있던 방식인데, 직원 출입구를 통과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보니 시도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왔고, 이번에도 몇몇 사람들이 시도하였다. 당연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목동 현대백화점 직원용 출입구(해당 사건과 관련없는 백화점임.)


또한, 타 매장 직원들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경우가 있다. 

백화점은 오픈 5분 전에 플로어 매니저가 각 매장 점호를 하고 10시 30분 정각에 영업이 시작된다. 점호를 마치면 각 매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데, 동료에게 매장을 잠시 맡겨놓고 줄을 서서 구입한 후 다시 돌아오는 방식이다. 직원 출입구로 들어온 일반인은 물건만 사고 신속하게 사라지는데, 직원들은 브랜드 쇼핑백을 들고 자신의 매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되고, 적극적인 사람은 이런 새치기 구매를 백화점 CS팀에 항의하여 환불 조치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그날 밖에 대기하던 사람들은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오던 도중에 직원 출입구를 통해 먼저 들어온 사람들과 타 매장 직원들이 줄을 서려고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새치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백화점 입구 밖에서의 약속과 합의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판단력을 잃고 똑같이 분노의 질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 것이 그들이 무질서하게 달려갔던 영상의 전말이다. 이슈가 안되었을 뿐이지 이 날 전국의 조던 골프 발매 매장이 있는 백화점에서는 유사한 불상사가 많이 일어났다. 


 현재 정가 17만 9천 원인 조던1 골프는 리셀 사이트 Kream에서 20만 원에서 49만 원까지 프리미엄이 붙어있는 상태이다. 나이키의 한정판 스니커즈의 시세가 이러니 리셀을 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런 위험한 레이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리셀이 아니라구요.


스니커즈 씬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브랜드 측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발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접하는 사람이 일찍 와서 물건을 모두 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인 1족으로 판매량을 제한하기도 하였고,  최대한 실착 하려는 사람이 구매할 수 있도록 특정 제품을 착용해야 구매할 수 있는 드레스 코드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열심히 노력해온 나이키이지만, 이번 오픈런 사태에서는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굳이 코로나 시국에 오프라인 선착순 발매를 했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있다. 만약 줄을 섰던 사람 중 확진자가 발생했다면 백화점도 손해이고 개인들도 코로나 검사 때문에 시간적 비용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나이키도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키 측의 사전 안내도 미흡한 점이 있었다. 조던1 골프가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을 것을 예상했을 것이고, 이렇게 사람이 몰릴 것 또한 예상했을 텐데, 아무런 매뉴얼 없이 각 매장에 관리를 일임해버린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나이키 골프 매장은 이런 식의 캠핑, 오픈런을 경험하지 못한 직원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 본사 측에서 발매일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사전에 안내를 하고 각 지점마다 서비스를 통일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새치기해서 줄을 선 사람에게도 판매를 해서 비난을 받은 매장이 많지만, 직원이 미리 나와서 매장밖에 줄을 정렬시키고 번호표를 나눠주어서 질서 있게 쇼핑할 수 있도록 조치한 매장도 있었다. 이렇게 고객을 배려한 좋은 사례는 모든 매장이 공유하여 다음 발매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백화점 측과의 협조가 미흡한 면도 있었다. 오픈런이 예전에도 있던 일인 만큼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동선을 통제하고 줄을 서는 공간을 안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날처럼 추운 겨울날은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철 이동 통로 쪽 입구에 줄 설 곳을 마련하여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대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것은 매장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 미리 백화점 측과 협조하여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매장이 많았다.


오픈런에서 오픈워크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영상에는 지금도 그들을 향한 비난, 조롱 댓글이 달리고 있다. 그들은 명백하게 위험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비난은 피할 수 없고, 이 것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들이 왜 달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개인, 브랜드, 백화점 모두가 과실과 책임이 있는데, 이 것을 단순히 개인의 욕심으로 인한 과실로 판단해버리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은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때는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한정판 신발을 줄 서서 구매하는 행위는 이미 너무나 자연스러운 소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이 것을 '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브랜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고객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서 한정판이라는 가치를 만든 것이다. 브랜드는 이들을 존중하면서 안전하게 대기하고 순서에 따라 공정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체와 안전과 관련하여 협조해 나간다면 최소한 스니커즈 씬에서는 오픈런이라는 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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