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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로카 Jan 18. 2022

옷을 왜 줄서서 사?

한정판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평온한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에 잠깐 눈이 떠졌다. 평소같은 주말이었다면 바로 다시 잠들었을 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 카페 앱을 잠시 열었다. 많은 '팝니다' 글 사이에 하나의 글이 눈에 띄었다.

'지금 4등입니다.'


7시 6분에 쓰여진 글의 내용을 확인한 시간은 8시였다. 나는 평일 아침처럼 서둘렀고, 도산대로 골목에 위치한 후즈서울 매장에 9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장의 오픈 시간이 11시인 것을 감안하면 일찍 도착했다고 할 수 있으나, 매장 앞에는 이미 2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날은 2019년 3월 9일 토요일, 더블탭스 모듈라 자켓이 발매하는 날이었다.


더블탭스는 일본의 의류 디렉터 니시야마 테츠가 1996년 런칭한 브랜드이다. 밀리터리와 스케이트보드 컨셉의 의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스트릿 브랜드 중 하나로 국내에서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모듈라 자켓은 밀리터리 브랜드인 더블탭스에서 17년도에 처음 출시되었던 자켓이다. 밀리터리 자켓과 피싱 자켓의 디테일이 혼합된 디자인의 자켓으로 여러개의 주머니가 눈에 띄는 형태이다. 17년도에 출시된 자켓은 금방 품절되어 뒤늦게 구하려는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 사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2년만에 다시 출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더블탭스 커뮤니티인 네이버카페 베리후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며 발매일을 기다렸다.


국내 정식 매장이 압구정 후즈서울 매장 한 곳 뿐이고, 전 사이즈 통틀어서 50벌이 안된다는 정보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런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 때문에 매장 앞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어, 결국은 매장 오픈 시작 전에 30명 정도가 줄을 서서 대기하게 되었다.


조던과 같은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샘을 하며 대기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여러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를 보면서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맛집 같은 경우는 가게에서 자체적으로 번호표를 부여하니까 그 번호에 맞춰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의류 매장은 번호표가 없을 뿐더러 대기자들이 임의로 만든 번호표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서로 순서 때문에 얼굴 붉힐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걱졍은 기우였다. 내가 매장 앞에 갔을 때 대기하고 있던 한 명이 내게 와서

"19번째로 오셨네요. 번호 잘 기억해 주시고  그냥 이 근처에서 계시면 될 것 같아요. 뒤에 오시는 분 계시면 20번이라고 알려주시고, 화장실이나 편의점 가실 때 말씀드리고 잠깐 다녀오시면 되요."

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일단 번호를 알게 되니 뭔가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기하는 사람들은 20여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렬종대로 줄을 서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롭게 여기저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미니스톱과 커피빈에서 사 온 간식을 먹기도 했다. 이들은 원래부터 알던 사람도 있고, 친화력이 좋아서 이 자리에서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그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모두가 최소 하나 이상의 더블탭스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드레스코드가 필요한 모임도 아닌데, 모두가 해당 브랜드의 아이템으로 나름 멋을 낸 패션을 보니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모두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니 대화를 하기도 휠씬 편안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닌데도, 이 날 여러 명과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사람들 옷 입은 모습도 구경하고 대화도 하다보니 어느덧 11시가 거의 다 되었다. 10분전에는 이제 비로소 모두가 제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매장에는 3명씩 들어가서 차례대로 옷을 구매하고, 나는 30분정도 더 있다가 옷을 구매하고 매장을 나왔다. 새로운 옷을 입고 서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때 당시 아직은 그런 것들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여, 참여하지 않고 집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의 여운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한정판 제품을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구매하는 쇼핑의 역사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조던과 이지부스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본격적으로 일명 캠핑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뭐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면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얼핏 무질서해보이지만 그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을 모두 존중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우려했던 대기자들간의 갈등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정모를 하는 분위기도 느껴졌고, 주차할 때 차를 봐주는 등 훈훈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재미도 있어서 몇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현재 코로나19상황이라 많은 브랜드들이 오프라인에서 줄을 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온라인 라플로 판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풍경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부디 이런 쇼핑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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