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상의 간극을 중심으로_wirtten by 채은
<레이디버드>는 열일곱 소녀의 투쟁적인 성장기를 잔잔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 흐릿한 십자가를 등지고 한 쪽을 응시하는 빨간 머리의 소녀는 어딘가 신비로워 보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곧 이 소녀의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나의 청소년기와 그녀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여러 가지 고민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평범하지만단순하지는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려냈다.
소녀는 가톨릭계 고등학교 졸업반인 크리스틴 맥피어슨이다. 크리스틴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꾀하는 인물이다. 미국 서부 새크라 멘토에 사는 것에 항상 불만을 가지며 문화의 도시인 동부 지역을 동경한다. 이에 넉넉지 못 한 집안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비싼 등록금이 필요한동부 대학에 지원서를 낸다. 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줄리가 자신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연극부에서 더 좋은 배역을 얻자 질투심을 느끼고 점차 선을 긋는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소위 잘 나간다고 알려진 제나와 친해 지고, 제나의 무리에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카일과 사귀게 된다. 새크라멘토와 줄리, 미국 동부와 제나무리는 크리스틴의 삶에서 각각 현실과 이상으로 그려진다. 크리스틴은 그 둘의 간극을 간곡히 메우고 싶어한다.
이 같은 목표가 형성된 동기는 일종의 반항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틴은 특히 이상향을 좇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돈’에 있어 엄마 마리온과 심히 갈등하고 부딪힌다. 잦은 야근을 통해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 마리온은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으로, 크리스틴에게 집안의 상황을 분명히 인지시키고 검소함을 요구한다. 이는 크리스틴에게 자신의 현실을 확실히 자각시킴과 동시에 오히려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마리온의 잔소리에 청소년기라는 시기적 특성이 더해져 크리스틴이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반항심이 작동했던 것 같다.
크리스틴은 자기 스스로를 ‘크리스틴’이 아닌 “레이디 버드”라 칭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르기를 원하는 모습을 통해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이 설정한 자신의 자아상임을 알수 있다. 영화에서 이름의 뜻은 등장하지 않으나 자신의 상반신과 새의 하반신, 새의 상반신과 자신의 하반신을 결합한 모습의 선거 포스터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흔히 새가 가진 날개가 상징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투영된 것 같다. 보수적인 가톨릭 종교 전통에서 비롯된 이름인 ‘크리스틴’과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그러나 이 때의 ‘자유’는 ‘사회적 이상향에 완벽하게 도달하여 더 이룰 게 없는 자유로운 상태’라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좇을 수 있는 상황적 자유’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난 네가 늘 네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 라는 마리온의 말에 크리스틴은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이라고 답한다. 크리스틴에게 있어 ‘최고의 모습’인 ‘레이디 버드’는 사회에서 흔히 우월하다고 알려 진 기준들 또는 마리온이 원하는 기준들의 완전체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저 그녀의 관점에서 기준지은 이상향과 현실 사이 간극을 마음껏 메울 수 있는 주체라 볼 수 있다.
크리스틴은 아빠의 도움으로 미국 동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고 기숙사에 도착해 마리온이 쓴 편지를 읽게 된다. “레이디 버드라는 네 예명 참 예뻐.” 크리스틴과 대립 관계에 있던 마리온이 처음으로 ‘레이디 버드’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그 날 밤, 크리스틴은 술집에서 만난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으로 소개한다. 그동안 ‘크리스틴’ 이라는 자아와 ‘레이디 버드’라는 자아상이 분리되어 있었다면, 위 사건을 기점으로 크리스틴 이 자아와 자아상을 일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로서의 자아상을 인정받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크리스틴’에 투영한 그 자체의 자아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크리스틴이 자신만의 자아상을 설정하고 인정받음으로써 도리어 그 자아상에서 탈피하는 삶의 방식이 굉장히 신선하게 와 닿았다. 단순히 청소년기 소녀의 성장 서사라기에는 굉장히 복잡한 사고와 관계들이 크리스틴을 거쳐 간 것 같다. 그 복잡함을 너무 진지하지만은 않게 그려내 오히려 수월하게 감정이입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를 겪어온 어른들, 어른으로 성장하였음에도 여전히 현실과 이상의 간극으로 인해 자아상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아트비 문화예술 글쓰기 모임
글쓴이 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