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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비 Mar 13. 2022

[서평] 베르나르베르베르 <심판>의 의도된 허술함

사후 심판의 한계 Written by  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심판>




 드라마 <서른, 아홉> 속 시한부 ‘찬영’을 보며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요즈음이었다. 그녀처럼 언제든 시한부 선고를 받을 수 있는 인생에서, 남은 생은 무얼 지향하며 살아야 할까 생각해보곤 했다. 스터디를 통해 만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 또한 삶과 죽음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극은 이전 생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는 사후 법정을 배경으로 한다. 폐암으로 사망한 피고인 아나톨 피숑, 판사 가브리엘, 변호사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이 등장한다. 셋은 아나톨이 과연 윤회하지 않을 만큼 결백한 삶을 살아왔는지 여러 근거를 토대로 설전을 벌인다. <서른, 아홉>을 보며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작가가 설정한 올바른 삶의 ‘기준’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jtbc 드라마 <서른, 아홉> 스틸컷

 


 기대했던 바와 달리 작가는 명확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나톨의 삶을 판단했던 재능, 가정, 직업 등의 근거들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아내가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 벗어나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혼외정사를 옹호하고, 가브리엘은 이에 동의하며 천국은 지상의 도덕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세의 윤리를 무시한 채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베르트랑은 아나톨이 배우라는 운명을 따르지 않은 채 판사가 되었고, 결국 돈과 명예를 누리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나톨은 판사가 될 가정적 환경을 따랐을 뿐이고, 배우라는 운명이 있음을 인지조차 못했다. 베르트랑이 부와 명예의 결핍을 하나의 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향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아나톨이 윤회라는 벌을 받게 된 근거가 현세의 보편적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허술함이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판단의 기준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특성에도 약간의 결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판사인 가브리엘은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사람치고는 그만큼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베르트랑과 카롤린의 언변에 끌려다니기도 하고, 아나톨의 유혹에 잠시 넘어가기도 한다. 베르트랑과 카롤린 또한 전통적인 남녀관에 갇혀 변론을 펼치고 때로는 전생의 연에 근거해 서로를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극의 결말 또한 급작스러운 느낌이 있다. 마지막 장에서 인간인 아나톨과 천국의 재판장인 가브리엘의 역할이 뒤바뀐다. 이는 인간도 언제든 운명을 다루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내포하며 재판장의 위엄을 낮춘다. 극에 따르면 인간은 운명과 자유의지를 절반씩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운명을 주지하는 천국의 법조인들을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설정한 것이 어쩌면 작가가 운명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극을 통해 삶의 방향성에 대한 해답을 얻기 보다는 천국에서 주어진 운명이 무의미한 것일 수 있으며 오히려 현세에서의 자유 의지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교훈을 원했던 나로서는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애초에 누군가의 삶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수많은 맥락을 뒤로한 채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다. <심판> 또한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재판을 묘사하며 사후세계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고 삶에 대한 객관적 판단의 한계를 말하는 듯하다. (물론 일부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불가능할 수 있겠지만) 삶의 방향성은 최소한의 객관적인 도덕과 법의 기준을 지키며 온전히 나의 가치관에 따라 설정해보는 것이 어떤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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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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