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 written by 하진
<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이며 그 무대는 사후세계의 재판 현장이다. 프랑스식 유머와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한다.
오랜 흡연으로 폐암을 얻어 결국 사망한 아나톨 피숑이 사후세계 재판의 피고인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이승에서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멋졌다'고 생각한다. 피숑의 수호천사이자 사후세계 재판의 변호사 카롤린은 피숑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이다. 베르트랑은 검사이며 피숑의 인생 중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재판장 가브리엘은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며 그의 대사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감각을 새삼 생경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심판>을 읽으며 사후 법정에 관한 판타지를 실감나게 다룬 <신과 함께>가 떠올랐다. <신과 함께> 속 주인공 ‘자홍’은 의롭게 죽은 귀인이지만 여러 관문과 재판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 묻는 죄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으로 총 7번의 재판을 통과해야 환생이 가능하다. 전생에 이 중 한가지 죄라도 저질렀다면 가차없이 지옥으로 떨어진다. <신과 함께>라는 웹툰과 영화가 워낙 유명해 “사후세계”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들이지만 이는 동양의 대표적인 사후 세계인 윤회 사상과도 차이를 보인다.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윤회 자체가 형벌이며 굴레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사후 법정이 이러한 동양적인 사상을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삶은 25%의 유전자와 25%의 카르마, 50%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다. 카르마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에 해당한다. 전생의 행동이 현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 피숑의 죄는 50%의 자유의지를 유전자와 카르마가 가리키는 반대 방향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는 환생하여 다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법정에 계속 남아있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판장 가브리엘은 환생을 멈추려면 한 번쯤은 영웅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피숑은 천국의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환생을 거부한다. 그 대신 재판장 가브리엘이 대신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브리엘은 인간의 삶에 대해 길게 묘사한다. 고동치는 심장과, 송글송글 맻히는 땀, 입 안의 침, 머리카락, 선들선들한 바람과 태양, 젊음과 노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그리워했음을 말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찬가로 읽혀졌다.
희곡 속에서 “잘 산 삶”, “좋은 인생”에 대한 시각이 대립된다. 인간은 보통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 큰 죄를 짓지 않았는지,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양심적으로 살았는지를 두고 좋은 삶이라고 판단하지만 베르트랑은 피숑의 순응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피숑은 운명의 상대를 두고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였으며, 전생의 그가 정한 다음 생의 직업인 ‘배우’가 되지않고 판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베르트랑은 피숑이 평온하고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재능을 실현시키지 않은 점을 비판하며 운명적 사랑에 실패하고도 외도를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통념과 다른 조금은 극단적인 이상주의, 쾌락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알고 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다양한 사상들, 특히나 새로운 육신과 정신을 가지고 환생하는 것을 믿는 사상과 다르게 인간은 “한 번 사는 인생” 을 믿는다. 100년이 안되는 한 생에 동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선택지들 중 가장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베르트랑의 입장은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느껴진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인간 마다 다르며 누군가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은 채 살기도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천생연분을 몰라보고 재능을 실현시키지 않았으니 벌을 받으라 한다면 나 역시 피숑과 같이 “항소”하고자 할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한 생애를 <멋졌다>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대사 “우리의 상상력이 모든 것을 대단하게 만들어버린다” 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어떤 사후 세계를 상상하고 믿는가에 따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운명이라 믿는 것을 따를 것인지 현실을 따를 것인지도 이에 달려있다. <심판>의 사후 법정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결국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들의 입장을 비교하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덨던 가벼운 희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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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