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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7. 2024

핸드폰은 기억한다

-142

아침에 일어나 이런저런 정리를 하고 홈트를 하는 시간 동안 내 핸드폰은 나보다 더 바쁘다. 밤새 잠잠했던 온갖 채널에서 보내는 광고 및 알림들을 연거푸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카톡들 때문에 가끔 일 관련한 카톡이 묻힐 때가 있어서 조금 짜증스럽다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어제였다. 빨리 오늘 할 홈트까지 다 해놓고 제사를 지내러 나가야 한다고 혼자 서두르던 중에, 또 뭔가 핸드폰으로 알림이 왔다. 시간도 얼마 안 됐는데 어디서 또 이렇게 아침부터 서두르나,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내 할 일을 다 하고 난 후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달아오른 땀을 식히다가 나는 아까 그 알림이 뭔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그 알림을 보낸 것은 언제 뭘 사느라 채널등록을 했던지 기억도 안나는 숱한 제품 판매처들이 아니라, 내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에 비슷한 사진들끼리 카테고리를 지어 놓는 '스토리'라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사용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2년 전 이맘때 생성된 스토리가 있으니 한번 보라는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썸네일로 뜬 사진이 너무나 익숙해서 나는 잠깐 망연해지고 말았다. 그 사진은 집 근처 한 아파트 단지의 담장 너머로 핀 벚꽃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엄습해 오던 시기가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날도 아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쫓아오는 뭔가를 피해 도망이라도 치듯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왔지만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어 한참을 배회했다. 발길이 닿는 대로 한참을 걷다 보니 그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때마침 한참 핀 벚꽃들이 참 서럽도록 예뻤던 기억이 난다. 다분히 청승맞은 기분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던 기억도 난다. 찍어봐야 이젠 보여줄 사람도 없다는 기분에 울컥 더 서러워졌던 것도. 난 어떡하라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당시에 나는 가벼운 공황발작 증상이 있긴 했지만 아주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 큰 어른이 사람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울면 안 된다는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으니까. 그러나 정말로 무사히 잘 울지 않고, 그냥 집 근처나 몇 바퀴 빙빙 돌다 무사히 돌아갔던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그러지 못했던 듯도 싶다. 워낙에 그러던 시기였으니까.


2년 전 이맘때엔 한참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이미 벚꽃의 절정은 지나가버린 느낌이고 그나마도 남은 꽃들도 며칠 전 내린 비에 죄다 쓸려가 불그스름한 잎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또 실감하게 된다. 시간이 이런 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래도, 좀 서글프면서도 다행인 것은 2년 전의 그 힘든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 핸드폰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그땐 이렇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오늘까지 살아내줘서 고맙다고, 이 손바닥만 한 기계가 내게 치하 아닌 치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나오던 어떤 영화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대필 작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영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어제의 나는 내 핸드폰이 퍽 고맙고 대견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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