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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8. 2024

뭐 이렇게 아프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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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치료'라는 말이 있다. 대개 두 가지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첫 번째는 특히 온라인에서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소를 해서 금전적인 '치료'를 가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다. 반대로 두 번째는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할 때 맛있는 것을 먹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사거나 하면서 돈을 씀으로써 그 부정적인 기분을 치료한다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다.


나의 금융치료(물론 두 번째) 장소는 대개 마트다.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아주 엉뚱한 것이 아닌 이상 대개 다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물건들이며, 지금이 아니라도 분명 언젠가 쓰게 되는 물건들이라 다소 과한 지출을 하고 난 후에도 큰 죄책감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식으로 산 물건이 의외의 타이밍에 요긴하게 쓰이기라도 하면 거 봐 그때 그거 미리 사놓긴 정말 잘했지 하는 식으로 사후에 효용이 더 높아지는 엉뚱한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 마트 금융치료는 다소 뻔하기도 하고, 큰 '재미'는 없다는 소소한 단점이 있긴 하다.


그럴 때 두 번째로 자주 가는 장소는 생활잡화점이다. 대개 천 원에서 이천 원, 아주 비싸 봐야 오천 원 정도 안에서 어지간한 물건은 다 살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사는 물건은 아쉽게도 마트에서 사는 물건에 비해서는 좀 애매하다. 잘 고르면 정말 값의 몇 배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하는 말과 함께 조용히 서랍 구석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저런 소소한 물건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고 어지간히 폭주해도 그리 큰돈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금융치료 장소로서는 썩 나쁘지 않은 편이다.


몇 주 전 나는 이 가게에 구경을 하러 갔다가 반쯤은 충동적으로 폼롤러 하나를 사 왔다. 사실 사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내가 이걸 사다 놓고 과연 쓸까. 그러나 일단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폼롤러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홀려서, 사다 놓으면 언젠가는 쓰겠지 하는 기분으로 덥석 집어 왔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몇 번 사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 몇 번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 폼롤러는 방 안 구석에 그렇게 세워진 채 잠시 잊혀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오른쪽 어깨가 좀 심하게 아프고(물론 내 어깨는 컴퓨터 만지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양쪽 다 상태가 아주 안 좋긴 하지만, 특히 더) 그 와중에 오른팔 상박 쪽이 뭉친 것 비슷하게 무지근하게 아파서, 이참에 사다 놓은 저 폼롤러나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척 봐도 이 동작을 했다가는 아파서 죽겠구나 하는 것들은 적당히 빼고, 그나마 덜 아플 것 같은 동작 몇 개만 대충 따라 했다. 그 별로 안 아플 것 같은 동작 중에는 옆으로 누워 겨드랑이 아래 폼롤러를 받히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뒤로 젖히는 동작이 있었다. 들입다 폼롤러로 겨드랑이를 미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폼롤러 위에 드러누워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평소 하는 스트레칭 정도의 동작일 뿐인데. 고작 열 번을 채우는 것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팠다. 이게 원래 이런 건가 생각했지만 반대편인 왼쪽 겨드랑이는 또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아서(아주 안 아팠다는 말은 아니다) 내 오른쪽 어깨와 등 부분이 심하게 뭉쳤구나 하는 것만 다시 한번 깨닫고 말았다.


그의 2주기를 치르기 전날에, 나는 오랜만에 친구와 메신저로 좀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느라(실은 잠이 잘 안 오기도 했지만) 겨우 서너 시간 남짓을 겨우 자고 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남은 하루를 내내 빌빌거렸다. 나 이제 진짜 몸이 맛이 갔구나. 그 말을 하루종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입에 밴 엄살이 아니라 진짜 그런 모양이다. 그까짓 운동도 운동 같지 않은 폼롤러 마사지 몇 번에 이렇게 죽는소리를 하다니.


건강해야 될 텐데. 그의 사진을 향해 그렇게 푸념한다. 내가 오래오래 건강해야 당신 밥도 챙겨주고 당신 책상에 꽃도 철철이 바꿔서 꽂아주고 심심하면 당신 보고 싶어 하면서 그렇게 살 텐데. 나 먼저 가면 금방 따라올 거라더니 그 말은 이젠 취소냐고, 그는 웃으며 그렇게 물어볼 것도 같다. 그러게. 분명히 그런 말을 늘 하면서 살았던 거 같은데, 이제 와서는 안 하던 건강 걱정이나 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비겁하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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