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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9. 2024

과일모찌는 가급적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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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건강이 그렇게까지 나빠지기 전에, 우리는 주말에 당일치기 비슷하게 제법 먼 곳까지 여행을 갔었다. 목적지는 주로 군산이나 대전, 가끔은 대구나 부산일 때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다녀온 곳 중에 전주 한옥마을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당일치기로 떠나는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은 물론 '바람 쐬는 것'이었지만 그다음이 그 지방에서만 살 수 있는 빵이나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옥마을 곳곳을 돌며 그 일대에서 유명한 간식들을 잔뜩 사다 날랐다. 그중에 '과일모찌'가 있었다.  찹쌀떡 안에 생과일이 통으로 들어간 것으로, 요즘은 꽤나 여기저기서 많이들 파는 모양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게까지 흔한 물건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거짓말 좀 보태 주먹만 한 딸기가 든 딸기모찌 등 과일모찌를 몇 개 사 와서 며칠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에게 올리는 제사상에는 그가 좋아하던 빵을 한 종류씩 꼭 올리고 있다. 이건 그러니까, 명색이 제사상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봉안당에서 봐주시는 상으로 편하게 제사를 지내는 내 양심이 찔린 흔적 비슷한 것이다. 49제 때는 춘천에 있는 빵집의 버터크림빵을 올렸고 작년 1주기 때는 집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의 소금빵과 슈크림빵을 올렸다. 올해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불쑥 그 과일모찌 생각이 났다. 물론 전주 그 집의 과일모찌를 여기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다행히 집 근처에도 거의 비슷한 과일모찌를 파는 가게 한 군데가 오픈을 했고 그와도 한 번인가 사다 먹어보고 꽤 괜찮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요즘 생기는 가게들답게 동그란 플라스틱 팩 안에 하나씩 따로 정갈하게 포장해서 봉긋한 종이박스에 담아주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나는 여기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가야 하고, 그 거리 동안 무사히 버텨줄 빵을 구하는 것도 꽤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기 전날 여섯 개 들이 한 박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중 그가 좋아하던 딸기모찌 하나와 크림치즈 모찌 하나를 가져가서 제사상에 올렸다. 서투르나마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면서, 올해도 남이 다 차려주는 제사상에 수저만 올려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그 모찌 두 개를 먹고 왔다. 남은 네 개의 모찌는 냉장고 속에 넣어두었다가 오며 가며 하나씩 집어먹고 마지막으로 키위모찌 하나가 남은 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어서 오늘까지도 으레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 남은 키위모찌는 키위의 수분이 배어 나온 찹쌀떡의 옆구리가 터져 팥소가 꽤 많이 흘러나온 상태였다. 이 집의 모찌는 내 입크기 기준 네 번 정도를 베어 먹으면 딱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만 이건 도저히 그렇게 먹을 수가 없어서 무리하게 두 입만에 한 개를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 보니 전화로 문의를 드렸을 때 모찌 가게의 사장님이 가급적 빨리 드시는 것이 좋고 내일까지는 냉장실에 두시면 괜찮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이 모찌는 모르긴 해도 제사 지내던 그날까지는 다 먹었어야 했던 물건인 모양이었다.


그때 전주에 가서 사 왔던 과일모찌들도 이틀 만에 다 먹어 없었던지, 그런 걸 생각해 보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그런 걸 정리 정돈해서 타이밍 맞춰 먹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그가 이렇게 저렇게 정리를 해서, 모찌가 배어 나온 과일의 수분에 물컹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아주 잘 챙겨 먹였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지 2년이나 지나서야, 전주에서 과일모찌를 사다 먹은 지는 몇 년인지 기억도 안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과일모찌는 너무 오래 놔두면 물러지는구나 하는 걸 배운다. 아직도 뭘 얼마나 더 배워야 이럴 때마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까. 아직은 영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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