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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0. 2024

뭘 몰라서 하는 말

-145

'급속사망'이라는 말이 뭔지 아냐고, 자주 가는 카페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 일단 그게 뭔지, 무슨 뜻인지 채 알아보기도 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봐도 저 단어는 '빨리, 그것도 매우 급작스레 사망한다'는 이외의 다른 뜻일 수가 없어 보였다. 괜히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설마, 정말로 보이는 대로의 그런 뜻이라면 이렇게 신기하다는 듯 글씩이나 올라올 리가 없으니까.


조금 진정하고 읽어본 바, 역시 그랬다. 요즘 은근히 여기저기서 많이 쓴다는 '급속사망'이라는 말은 '저속노화'라는 말을 좀 자극적으로 풀어쓴 것에 가까운 개념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노화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는 단계를 최대한 늦추고 압축해서, 늙어서 병드는 고통을 최대한 단시간만 겪고 편안하게 사망하는 것. 그게 저속노화 혹은 급속사망이라는 개념이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보험광고에서 흔히 나오는 '유병장수'의 반대되는 개념이라고나 보면 맞을까.


뜻을 알고 보니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를 떠나보내고 한참이나 마음을 잡지 못해 혼자 발버둥 치다가 받으러 다녔던 상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그 끝을 바꿀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그는 가장 고통 없이, 주변에 최소한의 상처만 남기고 떠났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전날 저녁 1시가 좀 못된 시간까지 도넛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왔던 119 구조사님의 말로는 그의 심장은 이미 새벽 무렵에 정지했을 거라고 했다. 마치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듯이, 그렇게. 남들은 백 살을 사느니 마느니 하는 시대에 그 반절도 채 다 살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지만 이왕 그 끝을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그는 대단히 짧은 순간의 고통만을 겪고 저 쪽 세계로 떠난 셈이긴 하다. 이런 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그런 것도 대단히 큰 복이고 행운이라고, 많은 노인 분들이 말하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 생의 마지막 순간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게끔 딱 일주일만 입원해 있다가 떠나는 거라고 상담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같은 말을 굳이 이런 자극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심보가 고약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저속노화' 정도만 돼도 충분히 알아듣기 쉬운 말인데. 그걸 굳이 '급속사망'이라는 자극적인 말로 포장해서 보는 사람을 이렇게 뜨끔 놀라게 만들 필요가 과연 있을까. 안 겪어봐서 그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니 내 곁에 잠들었던 사람이 영영 내게서 떠나가 버린 그런 경험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정말이다. 다들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다. 그게 어떤 건지를 알고는 저런 말을 속편하지 만들어내지는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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