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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1. 2024

이젠 꼼짝없이 아저씨네

-146

그의 생일은 양력으로 4월 5일, 식목일 겸 청명이다. 나무 심는 날이 생일이라니 혹시 사람이 아니라 나무 같은 거냐는 말은 그와 나 사이에 통하는 일종의 농담 같은 거였다. 절기를 그렇게 탄 탓인지 그의 생일은 대개 매년 날씨가 좋은, 좀 너무하다 싶을 만큼 설레는 좋은 봄날이었다. 심지어 양력이 아닌 음력 생일조차도 대개 그랬다. 그 또한 자신의 생일이 그런 무렵이라는 것을 내심 퍽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그럼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랬던 것치고 올해 4월은 영 날씨가 별로다. 이번 달은 거의 1주일에 한 번 꼴로 그를 보러 봉안당에 가고 있는데 날씨가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당장 지난주 그의 2주기 제삿날에도 전날까지 꽤 호된 비가 내렸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덜 그친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물론 버스에서 내려 봉안당으로 올라가는 등성을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볕이 나기 시작해서 아 드디어 날씨 값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오늘은 그의 음력 생일이다. 즉 그가 진짜로 자신의 생일로 생각하고 미역국을 먹던 날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오늘도 그의 생일에는 그리 흔치 않은 일로 어제 내내 비가 왔고 이 시간까지도 날이 흐리다. 핸드폰 어플에 의하면 비 오는 것은 면하고 다만 하루 종일 흐리는 정도로 그칠 거라고는 하는데, 그의 생일에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았던 것이 내 기억에는 별로 없다. 뭐 언짢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지난주엔 장을 보면서 미리 미역국도 한 팩 사다 놓아서 오늘은 봉안당에 다녀와 밥만 해서 밥이 다 되는 대로 그 국을 끓여서 먹으면 된다. 어제는 나름 없는 솜씨를 부려서 크림치즈와 생크림을 가지고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한 번 구워봤다. 오랜만에 하는 베이킹인 데다 계량이 어딘가 잘못됐던지 영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고 한 김 식으면서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해서 이걸 케이크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납작해져 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걸로 그의 생일 케이크 대신 한쪽 잘라다 그의 책상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뭐 그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늘 먹던 그 크래커 말고 없는 솜씨나마 진짜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먹어 보겠고.


벌써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이제는 조금 덜 울고 담담하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눈물은 요행히 그친 것 같지만 아직도 나는 그 사실을 덥석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거나 다른 말로 말을 돌린다.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건 그렇게 떼를 좀 써 볼 작정이다.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라고. 별로 안 그래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 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제는 만 나이로 나이를 세는데, 당신은 그 만 나이까지 동원해도 꼼짝없이 50대니까 이젠 진짜 아저씨인데 어떡하면 좋으냐고.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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