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Apr 24. 2024

알아서 기는 건 머리뿐이다

-149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집안에 앉아서도 손이 시리느니 마느니 하는 투덜거리는 글을 쓴 것이 그리 오래전 같지도 않은데 요즘은 좀 움직이고 나면 콧잔등으로 때 이른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을 때가 있어서 스스로 당황하게 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뭐 유별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뭐 좀 치우느라 약간 움직였을 뿐인데 그 사이 후끈하게 콧잔등으로 땀이 돋아서 나는 좀 당황했다.


대충 묶은 머리칼 다발이 왠지 좀 덥게 느껴져서 핀으로 좀 올려 찌를까 하다가 간만에 비녀나 한번 찔러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11월, 퇴원을 하고 나서 그에게 인사를 하러 봉안당에 가기 전에 기분 전환 겸해서 미용실에 가서 거의 한 뼘 이상 머리를 잘랐고, 그 덕분에 머리가 중단발 비슷한 길이로 짧아져 버려 한동안 비녀를 꽂지 못하고 지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둘 틀어 올려 비녀를 찔려보니 하나도 당기는 느낌 없이 무난하게 잘 꽂혔다. 즉 내 머리칼이 벌써 그만큼 자랐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긴 하다. 작년 11월이라고는 해도 벌써 5개월쯤 전이니,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반년 전에 머리를 자른 셈이다. 사람의 머리는 보통 한 달에 1센티 정도씩 자란다고 하니 5개월이면 5센티가 자랐다는 말이고 한 뼘쯤 자른 머리의 3분의 1 정도는 충분히 원상회복이 되었을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 더 실제적인 이야기로 사람의 머리가 길이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다를 리는 설마 없겠지만 머리는 짧을수록 빨리 자라고 길수록 더디게 자라는 것 같은 그런 체감은 분명히 있는 바,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하던 내 머리는 빨리 자라기에 아주 적절한 길이이기도 했으니 더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 정도 길이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또 죽어도 길지 않을 거고.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에 또 머리를 한 번 잘라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 참, 이 놈의 머리는 비료 안 줘도 알아서 잘도 기는구나. 불어나라는 돈은 안 불어나는데 이놈의 머리는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잘만 긴다고. 듣는 사람도 없는 그런 푸념을 한참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게.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은 알아서 가고, 아무것도 안 해도 머리칼은 길고, 아무것도 안 해도 나이는 알아서 먹어진다. 좀 알아서 늘어났으면 하는 것들은 죄다 제자리에 있거나 그것도 모자라 알아서 줄어드는데 그럴 필요 없는 것들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만 불어나고 늘어나고 길어진다. 이쯤 되면 그냥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밖엔 없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 비슷한 말을 할 때마다 야한 생각 좀 적당히 하라고 웃으며 놀렸었는데. 그게 꼭 그래서 머리가 빨리 자란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마 모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