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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25. 2024

와사비 먹을 줄도 모르면서

-150

매운 걸 잘 먹는 분들에게야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을 문제지만 나 같은 맵찔이들에게는 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알기 쉽게 통틀어서 '맵다'고 해도, 고추의 매운맛과 마늘의 매운맛과 파나 양파의 매운맛은 제각기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은 실제 이상으로 맵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래도 조금 덜 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분류법에 의거한 바, 내가 가장 못 견디는 '매운맛'은 와사비의 매운맛이다.


물론 와사비는 통상적으로 '맵다'기보다는 '톡 쏜다' 쪽이 강하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가도 마찬가지다. 와사비의 톡 쏘는 느낌과 겨자의 톡 쏘는 느낌, 머스터드의 톡 쏘는 느낌은 제각각 다르고, 나는 그중에서도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을 제일 못 견뎌 하는 편이다. 매운 것은 그래도 울며 불며 억지로라도 어찌어찌 먹을 수 있지만 이 톡 쏘는 맛은 미친 듯한 재채기를 동반한 눈물 콧물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와사비를 긁어내는 극약 처방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것에 비해서는 초밥을 그렇게까지 자주 먹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런 내가, '와사비 맛' 감자칩 과자를 사 온 것은 어찌 보면 자해 비슷한 행동이었다.


오후쯤이었다. 잠깐 뭘 좀 사러 집 근처 잡화점에 다녀와 하던 일을 계속하던 중에, 갑자기 뭔가 바삭바삭한 것이 몹시 먹고 싶어졌다. 딱 떠오르는 것이 아주 얇은 감자칩 과자 종류였다. 소금맛, 혹은 양파맛으로. 괜히 억지로 참다가 더 늦은 시간에 아무래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나가지 말고, 그냥 해 있을 때 한 봉지 사다 먹고 치우자 하는 생각에 집 앞 편의점에 갔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와사비 소금맛'이라는 말이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는 감자 칩을 고르고 말았던 것이다. 누가 옆에서 사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그래봤자 감자칩이고 그래봤자 과자지, 라고 좀 우습게 봤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웬걸. 과자를 정확히 세 개째 집어먹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재채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혀부터 입 속까지가 통째로 얼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와사비의 매운 성분은 숨을 '내쉴' 때 점막을 자극하기 때문에 거꾸로 숨을 들이쉬면 덜 맵다던 말이 생각나 숨을 들이쉬어 봤다. 효과가 좀 있는 듯은 했지만 그걸로는 중과부적이었다. 60 그램 될까 말까 한 그 작은 봉지 하나를 먹으면서 나는 수태 재채기를 하고 눈물 콧물을 짰다. 아, 다신 안 먹어. 그 중얼거림과 함께 나의 감자칩 타임은 끝났다. 누가 사 먹으란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와사비 못 먹는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 왜 같은 돈을 주고 그런 걸 사 오느냐는 그의 목소리가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다. 가만 보면 겁도 많고 입도 짧은 주제에 가끔 이상한 데서 용감해진다고. 아니 이렇게까지 매울 줄 몰랐다고, 그렇게 귀먹은 항변을 해 본다. 겁도 많고 입도 짧은 주제에 가끔 이상한 데서 용감해지는 인간인 거 모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혼자 놔두고 냉큼 도망가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화도 내 본다.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나 이러고 살 줄 정말 몰랐냐고.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이 이미지는 제가 사 먹은 제품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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