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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06. 2024

노른자가 살아있는 계란프라이

-222

무슨 점령군처럼 집을 점거하고 있던 지인의 박스들도 전부 빠졌고, 어제는 며칠 전부터 삼삼하니 먹고 싶던 김치볶음밥을 해 먹기로 했다.


종류 불문 볶음밥이 좋은 이유는 레시피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냥 재료를 적당하게 썰어서 기름 두르고 볶아서 밥을 넣고 한 번 더 볶으면 그걸로 끝이다. 물론 중간에 간장을 살짝 끓여서 불맛을 낸다던가 굴소스를 넣는다든가 계란을 푼다든가 하는 등의 디테일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디테일 차이여서 그걸 잊어버리거나 귀찮아서 안 한다고 못 먹을 볶음밥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나 김치볶음밥의 경우는 김치라는 식재료가 워낙에 치트키여서 간을 보거나 맛을 따로 낼 필요조차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메리트가 있다.


다만 김치볶음밥의 경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계란이다. 다른 볶음밥의 경우는 게란 푼 물에 숫제 식은 밥을 담가 놓거나 밥을 볶는 중간에 풀어서 넣어 같이 휘저어버리는 식으로 조리하는 편이지만 김치볶음밥에 들어가는 계란만큼은 각 잡은 계란프라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계란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요리인 이 계란프라이 또한 보기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는 계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덜 익은' 계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 덜 익은 게란을 잘못 먹고 크게 체한 일이 있거나 뭔 수가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반숙 계란 종류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가끔 일본식 라멘을 먹으러 가면 곁들여 나오는 온센 다마고조차도 먹지 않고 고스란히 덜어 내게 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계란은 완숙이라는 말로도 모자라 노른자 표면에 약간의 푸르스름한 기가 감돌도록 푹 삶은 채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건 프라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계란 프라이를 힐 때 한 번 뒤집어서, 양쪽을 다 바싹 익혀서 거의 프라이라기보다는 계란 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올리곤 했다. 네 것은 노른자 살리는 게 좋으면 그렇게 해준다고 했었지만 괜히 혼자 유난을 부리기도 싫고 그가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니 나도 괜히 그렇게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바싹 익은 프라이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그 식으로 양면을 다 바싹 익힌 프라이를 먹곤 했다. 그렇게 양 면을 다 바싹 익힌 프라이는 흘러내리는 노른자의 농밀한 맛이 없어서 그야말로 스크램블 에그나 풀려버린 계란말이 비슷한 맛을 내곤 했다.


요즘은 물론 그런 프라이는 하지 않는다. 적당하게 흰자의 가장자리가 익고 노른자는 살아있는 정도의 프라이를 부쳐서 김치볶음밥에 올리면 그것으로 꽤 쓸만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톡 터트린 게란 노른자에 볶음밥을 비벼서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걸 맛도 한 번 안 보고 가 버리다니 참 음식 먹을 줄 모른다고 옆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무단히 타박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노른자 살아있는 계란프라이 같은 거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으니 그냥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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