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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09. 2024

덜 매워진 걸까?

-225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월요일 점심 메뉴가 라면인 건 가끔은 좀 고맙게 여겨지기까지 할 때가 있다. 미리 끓여둔 찌개나 국만 끓여서 먹으면 되더라도, 쌀 씻어서 밥을 안치고 뭔가를 데우고 그릇에 담고 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좀 그런 정신없는 월요일이었고, 때마침 밥통 속에는 식은 밥 1인분이 마침맞게 남아 있으니 라면이나 하나 뚝딱 끓여서 후루룩 먹고 치우면 될 일이었다.


어제 끓여 먹은 라면은 가히 국민라면으로 불러도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제품이다. 이름에서부터 '맵다'는 말이 위풍당당하게 들어간 이 라면은, 실은 그래서 그가 있던 시절부터도 그리 자주 사 먹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사다가 끓여 먹어 보면 역시나 다른 라면에는 없는 특유의 맛이 있어서 역시나 수십 년째 매출 1위 할 만한 라면이구나 하는 이야기를 그와 나눴던 적이 있었다.


이미 몇 번을 말한 바 나는 맵찔이고, 그래서 이 라면은 내가 그냥 먹기에는 맵다. 그래서 치즈를 풀든 계란을 풀든 그것도 아니면 다른 뭔가를 넣든 해서 매운맛을 죽여야 눈물콧물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어제는 계란이나 하나 풀까 생각하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쯤에서 가끔 발동하는 객기가 발동했다. 맨날 그런 식으로 다른 걸 넣어서 먹어버릇하니 이 라면 본연의 맛이 기억이 안 난다는 핑계로 그냥 날 것 그대로 끓여 먹어 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끓이는 과정부터 그리 범상치는 않았다. 끓는 물에 스프를 풀자마자 매운 냄새가 사방으로 확 퍼져 코의 점막을 자극했고 대충  번쯤 재채기를 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얌전히 늘 넣던 뭔가를 넣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여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니 썩은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아무도 바라지 않은 핑계를 대며 나는 라면 하나를 아무것도 넣지 않은 상태로 끓여 가지고 왔다. 손 닿는 곳에 물티슈까지 갖다 놓고 첫 젓가락을 뜨는 손길은 다소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웬걸, 생각보다는 먹을 만했다. 맵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이 라면의 국물은 내가 평화롭게 먹기에는 매웠다. 그러나 그래도 아 맵다 하고 인중에 땀이나 조금 송글송글 맺히는 정도에서 끝났다. 너무 매워서 연거푸 물을 마시고 물티슈로 이마를 움치고 코를 훌쩍거려야 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다소 싱겁게, 임전무퇴의 각오로 임했던 라면 한 그릇을 무사히 먹고 상을 치웠다.


출시된 지 오래되면서 이 라면의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간혹 듣긴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에 매운 것을 좋아하고, 그러니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건 대개가 예전만큼 맵지 않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같은 라인으로 아주 맵다는 다른 라면이 나온 것 같던데 차별화를 위해서 조금 덜 맵게 만든 것일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고 그랬음직도 하다. 그러나 아무튼, 이제 굳이 치즈나 달걀을 따로 넣지 않아도 나는 이 라면을 그냥 먹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게 난 원래부터 이렇게까지 맵찔이는 아니었는데 워낙에 매운 것 싫어하는 사람 손에 밥을 얻어먹다 보니 이렇게 입맛이 변한 거였다니까. 이제 와서 이 라면 한 그릇 잘 먹게 된다고 해서 뭔가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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