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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0. 2024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226

겹백합과 그냥 백합은 사람이 편리하게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 사실은 꽤 다른 꽃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뒤늦게야 하게 된다. 일반적인 백합은 아주 단출하게 한 겹으로 핀다. 그러나 겹백합은 봉오리가 벌어지면 그 속에 층층이 들어있던 꽃잎들이 차례차례 펼쳐져서 멀리서 보면 크고 작은 여러 송이의 백합이 한꺼번에 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백합 모양 마트료시카라고나 하면 비슷할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꽃이 지는 모양이 사뭇 다르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백합 또한 꽤나 오래 나의 꽃쇼핑 기피 리스트에 올라 있었는데 그 이유인 즉 지는 모습이 작약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제법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백합은 '목이 부러지면서' 시든다. 꽃줄기가 활짝 핀 꽃의 무개를 감당하지 못해 슬슬 버거워하는 낌새를 보이다가 기어이 목이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떨어진 백합꽃 그 자체는 꽤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이건 또 추하게 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 녀석 나름의 마지막 자존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전에 사다 꽂았던 핑크색 겹백합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사다 놓은 흰색 겹백합은 그 지는 모양이 사뭇 그냥 백합과는 좀 다르다. 일단 이번에 온 겹백합은 일주일 넘게 꽤 생생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아 이제 슬슬 보내줄 때가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제 아침이었다. 꽃병애 물을 가느라고 꽃을 잠시 빼놓았다가 줄기를 다듬으려고 드는 순간 한 송이가 그야말로 봄날 지는 벚꽃처럼 꽃잎을 분분이 떨군 채 지는 걸 보고서다. 꽃이 지는 건 마치 눈치게임과 같다. 다 같이 싱싱할 때는 곧잘 버티는 듯하다가도 한 송이가 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확연히 시드는 속도가 빨라진다. 어쨌든 떨어진 꽃만 솎아내고 다시 줄기를 다듬에 꽃병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어제 하루, 나는 하루종일 그의 책상 옆을 지날 때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얀 백합 꽃잎을 한 주먹씩 주워다가 버려야 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그 기세 좋던 백합이 하나 둘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주운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잎 자체가 시들어서 떨어진다기보다는 꽃잎과 줄기가 붙는 부분이 누렇게 말라 있었고 그 부분에서 힘을 받지 못해 하나씩 둘씩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물론 아직도 3분의 2 이상의 꽃이 든든하게 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긴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지기 시작한 꽃은 2, 3일을 버티지 못한다. 아마 이번 주말까지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이제 또 다른 꽃을 알아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사람도 꽃처럼, 떠날 때가 되면 무슨 기척이라도 좀 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방바닥에 분분이 떨어진 하얀 꽃잎을 줍다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입 꼭 다물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떠나는 그런 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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