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Jul 11. 2024

좀 있으면 초복이라는데

-227

며칠 전부터 부쩍 핸드폰의 마트 앱에서 '닭을 세일한다'는 알림이 오기 시작했다. 개중엔 좀 혹할 만큼 싼 것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걸 사다 놓고 뭘 해 먹을 건지가 불분명해서 그냥 못 본 체하고 사지 않고 있는 중이다. 오늘만도 각각 다른 앱에서 세 번이나 닭고기 세일한다는 알림이 와서 아니 요즘 나 모르는 사이에 조류 독감이라도 돌았나 하는 소리를 하다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날짜가 복날 근처라 그런 모양이구나, 하고. 그러고 나서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벌써 다음 주 월요일이 초복이다. 그렇게 닭 사가시라고 마트라고 생겨먹은 곳마다 외고치고 할 만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복날 근처가 되면 그는 세 번의 복날마다 각각 어떻게 닭을 먹을 건지를 놓고 한참 전부터 골머리를 앓았다. 가장 무난하기도 하고 그도 나도 좋아하는 닭도리탕을 한 번, 그는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해서 매년 먹던 삼계탕을 한 번 넣는다고 쳐도 나머지 한 번이 남기 때문에 초계국수를 하든 찜닭을 하든 오븐구이를 하든 하는 식으로 제각각 다른 닭요리를 한 달 사이에 세 번을 만들어 내놔야 하니 여사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걸 옆에서 한참 고생하며 챙겨줄 때는 고마운 줄도 몰랐다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점이 가장 씁쓸하긴 하다.


물론 그것도 그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가 떠나가고 난 이후로 내게 복날은 그런 게 있었던가 하고 찾아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날이 돼 버렸다. 아마 지나간 두 번의 복날마다 세 번 다도 아니고 초복 정도에 한 번,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순살 치킨이나 간단하게 가다 먹고 털어버린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챙기는 둥 마는 둥 넘어가도 더위 먹고 크게 고생한 기억은 없어서 결국 복날이라는 것도 그 핑계 대고 맛있는 것 좀 먹자는 사람들의 수작에 불과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싫어도 하게 되기도 한다.


아무려나 몰랐으면 몰라도 이왕 다음 주 월요일이 초복이라는 걸 알게 돼버렸으니 그래도 닭 비슷한 걸 한 번 먹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닭도리탕 먹은 것이 거의 3년 가까이 되어 가는 느낌이라 혹하긴 하지만 그거 한 솥이나 끓여놓을 엄두도 나지 않고 그가 하던 것만큼 맛있게 끓여낼 자신도 없다. 찜닭이고 초계국수고 그가 나 먹으라고 열심히 해주던 그 많은 복달임용 닭요리들은 이제 다 그림의 떡이라 그거 참 맛있었는데 하고 입맛만 다실뿐이다. 결국  이번 초복엔 집 근처 마트에서 파는 삼계탕이나 대충 한 팩 사다 끓여 먹고 치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몇 년쯤 지나면 복날이라고, 이런 청승을 떨지 않고 알아서 닭도리탕도 끓여 먹고 초계국수도 해 먹는 그런 날이 올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난 아직까지 그 정도까지는 철이 들지 않은 모양이라.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