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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2. 2024

침대 한가운데에서 자기

-228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up'은 좋은 영화를 한 10개쯤 뽑으라면 그 안에 들어갈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다. 풍선에 매달린 조그만 집이 하늘을 날고 있는 포스터 정도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이 영화는, 정말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고 꼭 한 번 보시라는 추천의 말을 두 번  번 해드릴 수 있을 정도의 '명작'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픽사라는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화가 시작된 직후 영화는 5분여에 걸쳐 주인공인 칼과 엘리가 어떻게 만나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결혼해 어떤 과정을 거쳐 평생을 함께 살아왔는지와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칼이 혼자 남는 과정까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칼은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를 상처하고 혼자 남은 독거노인인 상태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그 조그마한 집은 칼과 엘리가 평생을 함께 살아왔던 집으로, 도시의 재개발 과정에서 시에서는 독거노인인 칼을 요양원 같은 곳으로 보내 버리고 그 집을 철거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집을 버릴 수 없었던 칼은 전공을 살려서(칼은 일평생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불어서 파는 일을 했다) 수많은 풍선을 만들어 집에 매달아서는 풍선의 부력을 이용해 집을 통째로 공중에 띄워서 엘리의 오랜 소원이었던 남미의 파라다이스 폭포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네모진 얼굴에 사각 뿔테 안경까지 쓴 칼은 그야말로 완고한 고집쟁이 할아버지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도 다분히 융통성 없고 우직한 성격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떠난 후 더욱더 깊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그 자리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보기에 따라서는 무모한 생떼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디테일은 작품 여기저기서 드러나는데, 칼은 영화의 모든 스토리가 마무리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침대의 복판에 누워 자지 않는다. 마치 옆에 다른 사람이 있기라도 한 듯 절반만을 사용해서 잔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2년 이상 그러고 있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좀 웃기는 이야기다. 이미 다른 내 생활은 1인분 기준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만은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있던 그 시절과 똑같이 침대의 오른쪽 반만을 사용해서 잔다.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뒤척여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대의 왼편으로 넘어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마치 금이라도 그어놓은 것처럼.


슬슬 더워지는 날을 맞아 어제는 좀 더 얇은 홑이블과 냉감 패드를 꺼냈다. 그렇게 새로 세팅한 침대에 누울 때도 내 자리는 언제나 오른쪽 절반뿐이다. 이제 와서 그깟 침대 쯤, 가운데 누워서 편하게 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있지도 않을 텐데도 나는 늘 그렇게 잠들고, 그렇게 깬다.


칼은 아내와 함께 가려고 평생을 꿈꿨으나 결국은 가보지 못했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서 일생일대의 모험을 겪고 난 후에야 침대 한가운데에서 편안하게 잠들게 된다. 언제가 될지는 요원하지만 나도 그 파라다이스 폭포에 다녀오면 침대의 한가운데 누워서 잘 수 있게 될까.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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