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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3. 2024

쿠폰에 낚여서

-229

우리 집에서 배달이 가능한 마트는 총 네 군데가 있다. 그중 한 군데는 예의 가끔 꽃을 사러 가곤 하는 동네 마트다. 이곳은 일단 뭐가 필요하다 싶으면 1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배달보다는 내가 직접 가서 뭘 사 오는 용도로 잘 활용하곤 하는 편이다. 특히 지역 축협과 연계되어 있어서 고기 질이 좋고 세일도 자주 한다는 메리트가 있기도 하고.


그러고 나면 세 군데가 남는다. 그는 이 마트들을 특성 별로 파악해서 이번에 장 봐야 할 물건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배송처를 정하는, 나로서는 그거 뭐 어떻게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짓을 곧잘 했다. 이번에는 초복이 들었기 때문에 생닭을 사야 하는데 생닭은 어디가 싸기 때문에 여기 주문하고, 다음번에는 식용유가 떨어져서 하나 사야 하는데 PB 상품 식용유는 저기가 싸고 좋기 때문에 저기 주문한다는 식이다. 내 손으로 장을 보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난 그런 게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뭘 어디까지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경지다.


그중에 내가 한동안 외골수로 이용하던 마트는 그의 그런 여러 가지 조건 중에 가장 해당되는 점이 많은 곳이었다. 이유가 한 가지 더 있기도 했는데 할인 쿠폰이 꽤 쏠쏠하게 나온다는 거였다. 보통 7%, 만 원 남짓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는 그 쿠폰은,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데도 은근히 결제 전 그 쿠폰을 써서 깎인 금액을 보고 있노라면 대단히 알뜰한 쇼핑을 한 것 같은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는 받아놓은 쿠폰이 없어지는 게 아까워서 무리하게 이것저것 끌어다 맞춰가며(내가 늘 주장하는 바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제 써도 쓰게 되기 때문에) 마트에 주문을 한 적도 몇 번이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떠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쿠폰 하나 날리는 것이 아까워서 부득부득 이것저것 챙겨서 마트에 주문을 하고, 스스로 하는 짓에 자괴감을 느껴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도 있으니까. 브런치에도 썼던 이야기지만.


그러나 그러던 마트는 얼마 전 고객 등급을 한 번 갈아엎으면서 쿠폰 제공을 대폭 줄여 버렸다. 그가 있을 땐 2주에 한 번 꼴로 14, 5만 원 정도는 너끈하게 주문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 나 혼자서는 무리다. 자연히 금액도 줄어들고, 필요한 물건을 동네 마트에서 적당히 사다 나르다 보면 횟수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고객 등급은 내려가고 나는 그간 쏠쏠하게 써먹던 쿠폰을 써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빈정이 된통 상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한동안 내외하던 다른 마트에 주로 주문을 하고 있다. 이 마트는 또 전에 주문하던 마트와는 조금 영업방침이 다른 모양인지 온갖 핑계를 다 대서 이런저런 쿠폰을 많이도 준다. 다만 그렇게 주는 쿠폰들은 대개 그날 하루만 쓸 수 있거나 그날로부터 3일 정도가 한계이긴 해서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 살 때 짠 하고 꺼내 쓸 수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일단 쿠폰을 주기는 퍽 잘 준다는 점에서는 전의 마트보다는 플러스 점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이 마트는 같은 라인으로 슈퍼마켓을 같이 운영하는데 이 슈퍼마켓에서 쓸 수 있는 배송비 무료라든가 4, 5천 원 남짓한 할인 쿠폰을 참 자주 뿌린다. 슈퍼마켓은 마트에 비해 구색도 딸리고 가격도 조금 비싸긴 하다. 그러나 최소 주문 금액이 낮고 주문하면 한 시간 안에 즉시로 갖다 주기 때문에 또 그 나름의 메리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본의 아니게 마트 다음 슈퍼마켓, 슈퍼마켓 다음 마트 하는 식으로 이 마트에서만 몇 달째 주문을 하고 있다.


그가 이 꼴을 보면 혀를 찰 것 같다. 아무리 쿠폰이 좋아도 사야 될 물건을 꼼꼼하게 정리해 뒀다가 몰아서 한 번에 주문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이득이라고 그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할 것도 같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맞을 것이다. 마트까지는 그렇다 쳐도 슈퍼마켓에 주문하는 버릇을 들인 이후로 쏠쏠한 충동구매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자각이 내게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할 수 없다. 여기엔 뭐가 싸고, 저기엔 뭐가 좋다는 식으로 마트의 특성까지 파악해 가면서 장을 보는 건 당신이나 그럴 수 있지 나 같은 덜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난 애초에 그런 거 못한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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