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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4. 2024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수국

-230

아, 제목을 보니 이 사람 기어이 수국을 샀고, 또 피를 봤구나 하고 짐작하시는 독자님이 계시다면 하다 못해 무슨 선물이라도 하나 드려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지난번 떨어진 꽃잎에 대한 글을 올린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겹백합은 일시에 그 수명이 다했다. 마치 지들끼리 짜고 이쯤에서 다 같이 시들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다음 꽃을 주문하려고 인터넷을 뒤지려다가, 나는 그나마 몇 종류 나와있던 상품들이 일단 다 들어가고 수국 하나만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러나 뭐 이쯤 되면 그렇게 수국 수국 노래를 부르니 한 번 사 와보라는 그의 뜻인 것 같기도 해서 용감하게 일단 주문을 했다.


수국은 그제 왔다. 일단 수국은, 그 둥그렇게 피어오르는 모양이 그냥 보기만 해도 감탄사를 불러일으킨다. 이번에 우리 집에 온 수국도 그랬다. 수국은 본래 다 같은 종류인데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판매자님이 보내주신 것은 하늘색, 핑크색, 보라색이 사이좋게 한 송이씩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잘 좀 해보겠다고, 재빠르게 잎을 따내고 줄기를 최대한 사선으로 길게 잘라 얼음물을 담은 화병으로 모셨다. 그리고 어제를 지나 오늘 오전가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오늘 오후쯤, 나는 기어이 그중 보라색 수국이 영 시들시들해진 것을 발견하고 머릿속이 대번 새하얗게 질리는 경험을 했다. 원래부터도 어째 줄기가 좀 많이 휘어서, 가뜩이나 큰 얼굴이 휘청거려 잘 꽂아놓기도 어려워서 두 번 세 번 손이 가게 만들던 녀석이었다. 이거 소용없던데,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일단 수국의 줄기 절단면에 배송올 때 꽂혀있던 워터픽을 다시 꽂고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그 속에 수국을 세 시간쯤 담가 놓아 봤다. 이 방법은 앞서 두 번 모두 실패했으며,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 시간이 지나 꺼내 본 보라색 수국은 생생하게 살아나기는커녕 아주 뜨거운 열에 녹다 만 듯한 모양에 물만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실연당한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비 오는 거리를 헤매다닌 여자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맥이 탁 풀려 꽃이고 뭐고 다 집어치울 뻔 했다. 그러나 일단 아직 멀쩡한 수국이 두 송이가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일단 그 녀석들에게도 물을 좀 주자고 생각하고 한 송이씩 차례로 워타픽을 꽂아 세면대에 담가 목욕을 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기분 탓인지 핑크색과 하늘색 수국은 좀 생생해진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보라색 수국만은 혹시나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몇 시간이나 따로 꽃병에 꽂아둬 보았지만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더 문제는 앞서 사 왔던 수국들도 사흘 정도는 버티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멀쩡한 수국들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건 꽃이 아니라 상전을 모셔왔나 하는 생각에 왈칵 성질이 좀 났다가 제풀에 가라앉았다. 이젠 꽃 만지는 솜씨가 그렇게까지 곰손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유독 수국하고는 이렇게 합이 안 좋은지 모르겠다. 이번 마음의 상처는 남은 두 송이의 수국이 일주일 이상 버텨주지 않는다면 꽤 오래갈 듯도 싶다. 사람이든 꽃이든, 아름다울수록 머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쁘긴 정말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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