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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먹는 것에 진심인 편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즐거움 중에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거니와 내 돈 써가면서 사 먹는 거라면 무조건 맛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 아닌 신조였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외출하는 일정이라도 잡힐라치면 그는 목적지 인근의 맛집들 중에서 주차 까다롭지 않고 찾아가기 어렵지 않은 집을 찾느라 전날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반면에 내가 밖에서 사 먹는 메뉴는 대충 정해져 있고 그나마도 그 몇 안 되는 엔트리를 적당히 돌려 막기 하면서 사 먹어도 별로 큰 불만이 없기 때문에, 이러고 살면서도 별 불만 없는 나를 보면 그는 어쩌면 상당히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제 글에도 흘리듯이 썼지만 간만에 돈가스나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돈가스는 집에서 '맛있게' 튀겨서 먹기가 의외로 어렵교, 돈가스만 달랑 튀겨서 케첩에 찍어서 밥에 얹어 먹을 게 아니라면 사이드 메뉴를 만드는 것에도 상당히 손이 가는 바 그냥 적당한 가격에 사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인 것 같다고 그가 실토한 적이 있다. 봉안당에 다녀올 때면 내가 돈가스를 먹으러 가는 집은 대개 정해져 있다. 집 근처 복합 쇼핑몰의 식당가에 있는 돈가스 가게다. 그 언젠가 발렌타인데이랍시고 새로 산 니트를 입고 나갔다가 떡볶이를 떨어뜨려서 개시하는 동시에 떡볶이 국물 세례를 받고 말았던 그 집 말이다. 이 집 돈가스는 런치 시간에 가면 9천9백 원이라 만원이 채 안 되고, 소담하게 튀긴 돈가스에 작은 우동 이 한 그릇, 떡볶이가 한 그릇, 크지는 않으나마 새우튀김에다 샐러드도 나오기 때문에 돈에 비해 매우 실하게 먹고 오는 만족감이 있다.
어제도 원래라면 봉안당에 들렀다가 그 집에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차 안에서 깜빡 졸아버려 내릴 정거장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깼다는 사실이다. 부랴부랴 늦게라도 내리려고 하다가, 나는 그냥 짜증스레 고개를 젓고는 이왕 이렇게 된 것 버스의 회차지점인 번화가까지 가서, 거기서 새 돈가스집을 개척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깟 돈가스집, 설마 한 군데도 없진 않겠지 뭐 그런 기분으로. 그러고 보니 가끔 기분전환 삼아 구경하러 갔다 오는 인테리어 쇼품샵 바로 아래층에 꽤 그럴듯한 돈가스집이 하나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 앞을 지나가며 이 집은 돈가스 잘하나? 하는 의문을 소소하게 가졌던 것도.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방송에서 촬영 나오는 수준의 맛집까진 아니어도 그 근방에서는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을 듣는 집인 것 같아서, 그냥 그 집에 가서 돈가스를 먹고 오기로 했다.
그 집의 돈가스는 내가 늘 사 먹던 것보다 딱 천 원이 비쌌고 사이드 메뉴도 튀긴 치즈떡 두 개와 약간의 우동국물, 그리고 샐러드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돈가스가 원래 먹던 돈가스의 두 배쯤은 되게 크고 두꺼웠다. 그래서 그런지 배부르다는 느낌만으로 따지면 원래 가던 집의 돈가스보다 훨씬 든든한 포만감이 있었다. 요컨대 원래 가던 집에 비해 사이드메뉴는 거의 만들지 않고 오직 돈가스에만 집중한 느낌이라고 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런치타임'에만 파는 메뉴가 아닌 점도 좋긴 했다. 여러 모로, 한 번 다른 집을 찾으러 다녀볼 필요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녀오다가 돈가스가 먹고 싶어지면 이 집으로 오게 되는 걸까. 그러나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천 원이라는 가격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두 종류 만드는 데는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고 다섯 종류 만드는 데는 열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기본에 충실한' 돈가스도 물론 좋지만 떡볶이에 튀김에 우동에 온갖 것을 다 골고루 만들어 내오는 원래 단골집의 정성이라는 것도 단지 돈가스가 좀 작다는 이유로 금방 외면해 버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냥 돈가스가 먹고 싶은데 이것저것 곁들여 먹고 싶은 날은 원래 가던 집으로, 튀긴 고기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은 어제 간 그 집으로 가는 정도로, 요컨대 두 번째 옵션이 생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씁쓸해진다. 그가 내 곁에 아직도 있었다면 아마 나는 우리 집 인근의 돈가스집 중에 맛있다고 소문난 집 치고 안 가 본 곳이 아마 한 곳도 없을 것이다. 참 게으르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나는, 당신이 나를 아낀 만큼 나 자신을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