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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0분 정도 시간을 내 펜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이 병원에 있던 서너 달을 빼도 2년 정도가 되었다. 이 펜글씨 쓰기는 의외로 끈기 없고 뭘 오래 진득하게 잘 못하는 내 성격을 감안한다면 아침에 하는 홈트와 더불어 2년 이상 나의 일상을 지탱해 주고 있는 대단히 고마운 루틴이다.
다만 그렇게 2년이나 하루에 30분씩을 들여 펜글씨를 쓰고 있는 것에 비하면 내 글씨는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물론 개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형편없이 휘갈겨 쓸 때와 각을 잡고 또박또박 쓸 때의 폭이 좀 줄어든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평소에 기본으로 쓰는 글씨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평준화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고작 이 정도를 개선하려고 2년이나 하루에 30분씩 시간을 들인 거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좀 궁하긴 하다. 처음 만년필에도 익숙하지 않고 손글씨에는 더 익숙하지 않아서 종이 한 장을 치우는 데만도 손아귀가 아프도록 힘을 주던 초반에 비해 요즘은 글씨 쓰는 데 적당히 타성이 붙어서 그다지 '열심히' 쓰고 있지 않은 탓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할 것이다.
펜글씨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글씨를 망가뜨리는 이유 중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음 'ㄹ'이라는 것이다. ㄹ은 자음 하나를 쓰는 데만 정석대로라면 다섯 획을 그어야 하는 대단히 귀찮은 녀석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첫 두 획을 붙여서 한 번에 긋고 네 번째 다섯 번째 획도 붙여서 한 번에 그어서 3획으로 만들어 버리다가, 급기야는 무슨 한붓그리기 하듯이 일필휘지로 다섯 획을 다 그어버리게도 된다. 그 과정에서 글자의 모양은 대개 망가지며, 반듯하지 않게 적힌다. 같은 ㄹ들끼리도 제각기 모양이 달라서 글자의 통일성을 망치고, 그렇게 적힌 글자들은 자연히 똑같은 방법으로 가지런하게 쓴 글자들에 비해 못나 보이고 악필로 보인다. 물론 내 악필의 원인 전부를 ㄹ에게 돌리는 건 좀 무리수가 있겠지만 상당한 부분을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알면 마땅히 고쳐야 하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처음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니 ㄹ 한 글자를 쓸 때 꼬박꼬박 다섯 획씩을 들여서 단정하게 쓰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쓰는 글씨의 양이 늘어날수록 처음의 각오는 점차 느슨해지고, ㄹ은 그 느슨해진 각오를 가장 먼저 반영해 제멋대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ㄹ 쓰는 방법만 잘 잡아도 글씨가 반 정도는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껏 2년이나 펜글씨를 써도 고쳐질 낌새가 요원하니 이거 가능하긴 한 건지 모르겠다. 누구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쓰는 펜글씨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지만.
2년 써서 이 정도밖에 안 나아졌으면 앞으로 2년 정도 더 쓰면 좀 더 좋아지려나.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한다. 최소한 ㄹ쓰는 법이라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물론 그때쯤이 되면 사실은 ㄹ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뭔가가 문제였다는 식으로, 또 다른 문제점이 발견될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