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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1. 2024

할 말이라는 게

-359

며칠새 급작스레 날씨가 추워졌다. 가을 옷이라고는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겨울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12월 오기 전에는 웬만하면 패딩은 안 꺼내고 싶어서, 어떻게든 플리스 재질의 아우터 정도로 버텨보고 있다. 물론 이건 내가 날마다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똥고집이긴 할 것이다.


아우터가 얇으니 그 속에도 좀 따뜻한 것을 입어야 해서 기모가 붙은 스웨터를 입고 아우터를 걸치게 되는데, 문제는 플리스라는 재질도 그렇고 기모도 그렇고 둘 다 정전기에 아주 취약한 직물들이라는 것이다.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나 한 번에 잘 입혀지거나 벗어지지 않고, 찐득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전기에 스웨터 소매가 아우터 소매 안쪽 어느 지점에 들러붙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온갖 용을 다 쓰면서 그 소매를 잡아당기다 보면 절감한다. 아, 나 견갑골이 정말 많이 뭉쳐있구나 하고.


비슷한 증상은 또 있다. 버스를 탔는데 자리가 없어서 서 있어야 할 때다. 머리 위에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버스가 갑자기 멈춘다든가 갑자기 출발한다든가 혹은 커브를 튼다든가 해서 몸이 확 기울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오른손이면 날개뼈 아래쪽이 뭔가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 움찔 놀라게 된다. 그래서 도대체 내 몸의 가장 큰 문제는 목이라는 건지 승모근이라는 건지 견갑골이라는 건지 혹은 대흉근 소흉근이라는 건지, 심증은 통증을 못 이기고 인터넷을 검색해 볼 때마다 달라진다. 어쩌면 그 모든 부위가 몽땅 다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뭐 이런 글을 쓰려고 했었다.


요즘 쓰는 글이 도시당체 뭐 먹은 얘기 아니면 몸 아픈 이야기밖에 없네.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회사에 나가서 날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지도 않고, 글감을 던져줄 만한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지도 않으며 특정한 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썰'을 풀 수 있을 만큼 잘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양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뭐 먹은 이야기, 몸 아픈 이야기, 이번에 새로 산 꽃 이야기, 날씨 이야기, 그의 봉안당에 다녀온 이야기, 유통기한을 넘겼든 덤벙대다 물건을 잘못 샀든 여하튼 실수한 이야기 등 몇 가지의 소재로 이리저리 돌려 막기를 할 수밖에는 없다. 속에 없는 이야기는 글로 쓰지 못할뿐더러, 최소한 이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 중에는 일어나지 않았는데 대충 꾸며내서 쓴 이야기가 단 한 편도 없기 때문에 말이다.


내가 못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모양이라는 게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의 시구대로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 결국은 그게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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