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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0. 2024

나 하나 먹여 살리기

-358

아침에 일어나면 꽃병에 물을 갈아주고 간단한 청소 및 정리를 마친 후 홈트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포탈 사이트에 가서 뉴스 몇 가지 읽고, 잘 들르는 카페에 가서 밤새 무슨 글이 올라왔나 주루룩 보느라 30분 정도를 쓴다. 그러고 나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주로 오전에 한다. 뭘 좀 들고 앉아서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금세 점심 먹을 시간이 되고, 밥 차리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등등의 일을 하고 나면 일하던 리듬이 뚝 끊겨버려서 오후에 집중력이 훅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점심 먹기 전까지 마치거나 최소한 일단락을 지어놓을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오전에 하고, 좀 긴 시간이 필요한 일들은 점심 먹고 난 이후부터 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 이건 어디까지나 내 계획이 그렇다는 말이고, 주변의 일정은 내 일상이 늘 이런 루틴으로 평온하게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오전 내로 빨리 처리해서 넘겨줘야 할 일거리가 있었다. 내가 일을 끝낸다고 거기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받아서 다른 작업을 해야 하는 분들이 뒤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의 순위는 단연코 이 일이 1번이었다. 만사 제쳐놓고 그 일을 마무리 지은 후 메일로 결과물을 보내놓고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에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슬슬 쌀을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나면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원래라면 오전 중에 다 날려버렸어야 할 자잘한 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부터 처리를 해야 할 테고, 그러고 나면 오후 시간은 엉망으로 토막이 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냥 후딱 해치우고 밥 먹자.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 혼자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는 급한 일에 치여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꾸역꾸역 하기 시작했다. 대충 마무리해 놓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런 날 밥솥에 식은 밥이라도 한 끼 남아 있으면 그냥 후다닥 라면이나 끓여서 대충 밥 말아먹고 치울 텐데, 깨알같이 새 밥과 새 반찬을 해서 뭐라도 밥을 먹어야 하는 날이었다. 도대체 언제 쌀 씻어 언제 밥하고 언제 반찬 해서 언제 밥 먹고 언제 치우나. 그런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오전 내내 죽어라 일만 했는데도 내가 먹을 밥까지도 나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아마 어렸을 때였다면 뻗치는 소갈머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루쯤 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한 끼 안 먹으면 눈이 땡기고 하루 잠 못 자면 다음날 내내 빌빌거리는 서글픈 중년이 된 나는 누가 그러란 사람도 없는데 혼자 괜히 부글부글 끓는 속을 한숨 몇 번으로 달래고, 꾸역꾸역 쌀 씻고 밥을 해서, 냉동실에 들어있는 오뎅 한 봉지를 꺼내 오뎅국까지 끓여서 그럭저럭 먹는 것으로 어제의 식사를 때웠다.


혼자 된다는 건 대략 이렇다. 논 것도 아니고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더라도 그러고 나서 고픈 배를 달랠 밥까지도 결국 내 손으로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를 축하해 주는 것도, 나를 야단치는 것도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물론 세상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으니 이런 것을 꼭 나쁘기만 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제 한시름 돌려놓고 이제부터 나 먹을 밥을 내가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하던 그 순간에는 꽤 서글펐었다. 다른 사람 아닌 나를 먹여 살리는 건 결국 나라는 사실은, 가끔 이럴 때 쓸쓸하다. 아마 혼자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이리저리 날뛰고 있으면 밥 먹을 준비를 다 해놓고도 밥을 차리지 않고 기다려주던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린 탓이 가장 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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