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이미 몇 번 브런치에서 언급한 바 나는 어딘가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여러 가지 협의 때문에 나갔다 와야 할 일은 종종 생긴다. 얼마 전부터는 숫제 매주 월요일에 정례적으로 미팅이 잡혀서 매주 월요일마다 나간다. 그리고 거기에 갔다가 더러 돌아서 오는 길이지만 그의 봉안당에 들러서 새 꽃을 꽂아놓고 온다.
집에서 미팅 장소까지의 거리는 대략 버스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좀 빙 둘러가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내려서 갈아타면 시간을 좀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등등을 따지면 결국 그게 그거인 것 같아서, 그냥 다소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그리고 미팅을 마치고 거기서 그의 봉안당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래서 요즘은 본의 아니게 월요일마다 바깥에서 밥을 먹게 된다. 어제는 이미 이 브런치에도 몇 번이나 쓴, 집 근처 복합 쇼핑몰의 식당가에 있는 일식 돈가스 가게에 갔다. 작년 발렌타인데이에 새로 산 오트밀색 스웨터를 입고 갔다가 떡볶이를 떨어뜨려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바로 그 집이다.
이 가게는 엄밀히 말해 돈가스 가게는 아니고 '일본식 가정식'을 파는 집이다. 즉 이 가게에서 파는 많은 메뉴 중에 그냥 돈가스가 있을 뿐이다. 이 가게의 메뉴판에는 많은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교토식 스테이크 덮밥이라든가 일식 카레라든가 김치가츠나베 등등. 매번 이 집에 올 때마다 습관처럼 돈가스를 시켜놓고, 아 맨날 올 때마다 돈가스만 시켜 먹으니 더러 다른 것도 좀 먹어보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한 박자 늦게야 한다. 이왕 시켰으니 오늘은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다음에 올 때는 그게 뭐든 다른 걸 먹어보자고. 그러나 그래놓고도 다음번 방문에서 나는 또 기어이 돈가스를 주문한다. 잊어버려서도 아니고, 그냥 선뜻 다른 메뉴에 용감하게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집 돈가스 세트에 따라 나오는 우동의 맛과 떡볶이의 맛과 샐러드의 맛은 이미 내가 다 알고 있으며 그래서 새로 '적응'할 필요가 없다. 그에 비해 다른 메뉴를 시키는 것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메뉴가 기대만큼 맛있지 않으면 그에 따른 실망과 그냥 돈가스나 먹을 걸 그랬다는 후회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월요일의 나는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두 시 안에는 대개 밥을 먹을 수가 없고, 배가 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위장과 상대하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그냥 늘 시키던 돈가스나 시킨다. 어제도 그랬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일생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