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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뒤숭숭하고 내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6년 탄핵 정국의 키워드는 '촛불'이었다면 2024년 탄핵 정국의 키워드는 '응원봉'인 것 같다. 2, 30대 여성 위주로,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스포츠팀 등의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인 모양이다. 그런 분위기를 두고 이 중차대한 시국이 너무 가벼워지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없진 않은 거 같지만 서로서로 강 대 강으로 대치하면서 날 선 구호에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던 그 옛날의 '데모'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내가 보기에는 음악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고 놀면서 본인의 의사도 전달하는 시위가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응원봉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은데 이건 뭐며 저건 또 뭔지를 자녀들에게 물어보셨다는 분들도 많으셨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이제는 서먹서먹해져 버려 가끔은 남처럼 느껴졌던 자녀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분들도 계셨다. 마냥 어리고 철없는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 컸더라고요. 그런 훈훈한 글들이 꽤 심심찮게 올라왔다.
다만 그렇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에 '조용필 응원봉을 든 40대 여성' 운운하는 글이 어제 카페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대번 발끈한 것이 나와 동년배인 40대들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40대가 조용필까진 아니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로 항변하는 댓글들이 줄줄 달렸다. 몇 년 전에 방송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딱 지금 40대인데 거기 시원이가 에쵸티 팬이지 조용필 팬은 아니지 않느냐고. 아 물론 40대에도 조용필 좋아해서 응원봉 든 분도 있을 수가 있겠지만 그거 그리 흔하지는 않다고. 우리 부모님 세대면 모를까 40대면 그래도 서태지 에쵸티 젝키지 조용필은 너무 갔지. 그런 항변글이 몇 개나 올라왔다.
그러고 나자 그에 대한 반발로 '조용필이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 질색팔색을 하느냐'는 항의성 글(?)들이 올랐다. 아직도 성량 짱짱하고 노래 잘하고, 요즘 젊은 가수들 한 트럭을 데려와도 조용필 하나만큼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없다는 노여움 섞인 일갈이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 저는 40대지만 조용필 팬이라는 '간증'도 이어졌다. 그냥 오빠가 저보다 많이 일찍 태어나셨을 뿐이라는 그 말에 한참 옥신각신하던 사람들 모두 웃었다. 그리고 이 때아닌 '세대 논쟁'은 한 분의 황희 정승급 발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자, 자, 여러분. 그냥 요즘 애들이 보기에는 다 같은 '틀딱'입니다. 틀딱끼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그러게나. '틀딱'끼리 싸우면 뭘 하겠나. 어차피 요즘 젊은 친구들 눈에는 에쵸티나 젝키나 조용필이나 공일오비나 다 '틀딱'이나 아는 가수일 텐데. 조금 씁쓸하지만 뭐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