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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4. 2024

핸드크림은 꾸덕해야 제맛

-382

나의 겨울 필수품 중에 핸드크림이 있다. 원래는 필수품까지는 아니었고 있으면 바른다는 정도였는데 요 몇 년 새 필수품 자리까지 치고 올라와 버렸다. 요즘은 날이 많이 추워지면  표가 나게 손등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핸드크림을 짜서 바르며 나도 나이 먹었구나 하는 장탄식을 하게 된다.


얼굴에 바르는 세럼에도 큰돈을 쓰지 않는 내가 핸드크림을 따질 리는 별로 없어서, 나는 대개 저가의 생활용품 판매점에 갈 일이 있으면 그곳의 천 원 내지 이천 원짜리 핸드크림을 몇 개 사다 놓고 쓰는 편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핸드크림이 다 핸드크림이고 차이가 있대 봐야 향 정도여서, 딸기 향이냐 장미 향이냐 레몬 향이냐 아니면 잘 모르는 좀 색다른 향이냐 정도의 구분 밖에는 없다. 핸드크림의 입장에서는 좀 섭섭한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쓰던 핸드크림은 무려 '무화과 향'이 난대서 긴히 사 왔는데, 도대체 이게 어째서 무화과 향이라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향이 났다. 물론 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현상의 절반 정도는 내가 무화과 향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를 모른다는 것에 이유가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정도는 내가 맡기에는 아무래도 이 향은 과일 같은 식물의 향이 아니라 무슨 타이어 타는 냄새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이었다면 온갖 핑계를 다 대서라도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손에 바르는 핸드크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향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바를 때 잠시 뿐이고 지나면 또 금세 잊어버리는지라, 나는 그 핸드크림을 바를 때마다 이게 무슨 무화과 향이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쓰기는 무사히 다 썼다.


그리고 드디어 새 핸드크림을 개시했다. 앞서 핸드크림의 향에 단단히 학을 뗀 터라 이번 핸드크림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것으로, 티트리 향으로 골라 왔다. 이거라면 뭐, 내가 아주 잘 아는 향이니 핸드크림을 바를 때마다 잘못 사 왔다고 투덜거릴 일은 없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향은 내가 익히 아는 그 티트리 향이 맞긴 했는데, 이 핸드크림은 제형이 매우 특이했다. 핸드크림 특유의 그 꾸덕하다시피 촉촉한 느낌이 없고 마치 근기 없는 폼 클렌징 같은 것을 손바닥 위에 한 덩어리 짜 놓은 듯한 느낌이 났다. 이건 또 왜 이래, 하고 제품 뒷면의 설명을 읽어보니 이 크림은 또 손소독제 겸용 핸드크림이라는 모양이다. 이쯤에서는 어색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물건 살 때 꼼꼼히 보지 않고 보이는 것만 대충 보고 덥석 사버린 나의 시즌 몇 번째 패배인 셈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돈 주고 산 핸드크림을 버릴 수도 없고, 그리고 뭐 생각하기 따라서는 바르고 나서 피부가 화해지는 기분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기도 해서 꾸역꾸역 사용은 하고 있다. 그러나 기분 탓인지 뭔지, 꾸덕한 핸드크림에 비해 영 보습효과는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괜히 예전 핸드크림을 한 번 바를 때 이 핸드크림은 두 번 세 번 바르게 된다. 역시 핸드크림은 좀 꾸덕한 것이 제맛인데 말이다. 다음번엔 그냥, 너무 자주 사다 써서 조금 식상해져 버린 딸기요거트 향이 나는 무난한 핸드크림을 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그냥 익숙한 게 좋은 것 같다. 그냥 그런 나이가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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